그림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윤서 지음 / 더블:엔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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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윤서의 <그림은 설명되지 않는다>를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오랜 시간 캔버스 앞을 서성였을 한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젊은 시절의 독서가 지식을 얻거나 새로운 이론을 흡수하기 위한 치열한 정복 과정이었다면, 칠십 고개를 넘어선 지금의 독서는 삶의 궤적을 서가의 책들과 겹쳐 보며 조용히 반추하는 일에 가깝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강렬하게 다가왔다. ‘설명되지 않는다는 선언은 단순히 미학적 수사가 아니라,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너머의 영역을 온전히 품어내겠다는 예술가의 겸허한 고백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림이라는 시각적 매체가 지닌 불완전함과 동시에 그 속에 담긴 압도적인 생명력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우리는 미술관에 가면 작품 옆에 붙은 설명문이나 도록의 해설에 의존하곤 한다. 몇 줄의 텍스트로 어떤 작품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림이 건네는 진짜 대화는 닫혀 버린다. 저자는 이러한 관습적인 감상법에 질문을 던지며, 그림은 명료한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나의 삶과 내 곁을 지키는 존재들이 자연스레 겹쳐졌다. 평생 오륙도의 바람이나 간월도의 바다, 소나무의 정기, 그리고 유채꽃밭과 코스모스의 계절을 화폭에 담아온 아내의 붓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곁에서 아내의 작업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본 이로서, 캔버스 위에서 벌어지는 그 수많은 고뇌와 모색은 결코 몇 마디의 완벽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물감이 층층이 쌓이고 붓끝이 스쳐 지나간 자리는 단순한 색채의 조합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며 느낀 경외감과 호흡,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담긴 현장이다.

 

책을 읽으며 설명감상의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설명하려는 태도는 대상을 내 지식의 틀 안에 가두려는 욕망이다. 반면 감상하는 태도는 대상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울림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70년 넘게 세월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진리 중 하나는,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 역시 결코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나온 세월 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환희와 고독, 그리고 자연이 주는 깊은 위로는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윤서 저자의 글은 미학적 분석에 그치지 않고,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의 시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언어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 시각적 여백이야말로 감상자가 자신의 삶을 투영할 수 있는 가장 넓은 공간이다.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자유롭다. 아내가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서서 세상의 풍경을 자신만의 색채로 다시 태어나게 하듯, 저자 역시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림이 가진 비언어적 깊이를 세심하게 조명해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모든 것을 명확하게 규정짓고 판단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흑과 백, 혹은 명확한 논리로 풀리지 않는다. 모호함과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여유, 그것이 인생의 후반부가 주는 선물이라면 미술 감상 역시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림은 설명되지 않는다>는 그림에 대한 책인 동시에,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고 대상 그 자체를 깊이 있게 바라보는 태도를 일깨워주는 책이다. 서재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캔버스 위에 펼쳐질 또 다른 자연의 색채와 내 삶의 여백을 가만히 묵상해 본다. 정답을 찾기보다 문득 멈추어 서서 바라볼 줄 아는 삶, 그 정적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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