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숨 섬 - 마음을 찾는 사람들
김한수 지음 / 생각정원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서재 창가에 앉아 가만히 들숨과 날숨을 바라보는 일은 인생이 내게 준 커다란 선물이다. 젊은 날의 삶이란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격렬한 경주와도 같았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더 많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던 시절에는 멈추어 서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고개의 능선을 넘어서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삶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것은 치열했던 달려감의 기록이 아니라, 잠시 거름을 멈추고 거두어들이는 고요한 정돈의 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김한수의 에세이 <쉼 숨 섬>은 바로 이 정돈의 가치와 삶의 본질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건네는 차분한 안내서다.

 

이 책은 세 가지 낱말을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펼쳐낸다. 바로 ’, ‘’, 그리고 이다. 세 단어는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며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저자는 끝없는 경쟁과 번아웃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살아온 삶의 여백을 하나씩 찾아 나선다. 일흔의 눈으로 읽어 내려간 이 세 가지 키워드는 단순한 휴식이나 일상적 권유를 넘어, 인생의 후반전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정서적 안식을 가져다준다.

 

첫 번째 키워드인 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까지 쌓아온 욕망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의 자리를 비워내는 자발적인 내려놓음이다. 젊은 시절 우리는 쉬는 것을 도태나 낙오로 여기곤 했다. 하지만 인생의 바닥을 치고 세월의 벼랑을 지나온 지금, 쉼이란 다음 걸음을 위한 거룩한 준비이자 나 자신과의 정직한 화해임을 안다. 저자가 나열하는 쉼의 순간들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산책길에 만난 바람,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 계절 따라 바뀌는 나뭇잎의 색깔처럼 작고 소박하다. 세월이 가르쳐준 지혜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삶의 가장 소중한 풍경은 속도를 줄였을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두 번째 키워드인 에 이르러 나는 깊은 탄식을 뱉었다. 숨이란 우리가 태어나 마시는 첫 들숨부터 세상을 떠날 때 내뱉는 마지막 날숨까지, 삶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요동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살아가면서 단 한 한 순간도 자신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과도한 중압감과 불안에 짓눌려 얕고 가쁜 숨을 쉬며 살아왔던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저자는 정직하게 숨을 쉬는 행위야말로 스스로를 살리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말한다. 의식적으로 깊은 숨을 내쉬며 가슴속 앙금을 털어내는 일, 그것은 노년에 이르러 비로소 배우게 되는 생명의 호흡법이자 내면을 치유하는 가장 정결한 기도다.

 

마지막으로 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고립된 외로움이 아닌, 홀로 서서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는 고독의 공간을 의미한다. 일흔이라는 나이는 가족과 사회, 그리고 수많은 인연으로부터 조금씩 독립하여 나만의 섬으로 돌아가는 시기다. 홀로 있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 아니다. 나만의 섬을 가꾸고 그 안에서 지혜를 갈고닦을 때, 비로소 타인을 향해서도 진정한 온기와 온전한 사랑을 건넬 수 있게 된다. 저자가 그려낸 섬의 풍경은 수많은 관계의 소음에서 벗어나 영혼의 조용함을 되찾는 거룩한 성소와도 같다.

 

이 책의 문장은 거창한 수식이나 위압적인 교훈을 배제하고 대단히 정갈하고 투명하게 흐른다. 저자의 따뜻하고 겸손한 시선은 읽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조율해 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쉼과 숨, 그리고 섬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삼중주는 지친 현대인들뿐만 아니라,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고 남은 날들을 품격 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선명한 이정표가 된다.

 

책을 덮고 창밖을 내다본다.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짐을 짊어진 채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내 마음의 서재에는 차분한 평평함이 감돈다. 이제 나에게 남은 삶은 더 많이 채우는 삶이 아니라, 제대로 쉬고, 깊게 숨 쉬며, 나만의 섬에서 정성스럽게 익어가는 삶이어야 함을 되새긴다. 지친 삶의 여정에서 잠시 머물러 영혼의 호흡을 되찾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묵직하고 정결한 삶의 온기를 더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