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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인문 기행 3 - 고전 들고 떠나는 그리스 문명과 사상 유랑기 ㅣ 그리스 인문 기행 3
남기환 지음 / 상상출판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서재 창가에 앉아 책을 펼치는 일은 젊은 시절의 독서와는 그 결이 사뭇 다르다. 청춘의 독서가 앞을 향해 내닫기 위한 지식의 수집이었다면, 인생의 황혼기에 만나는 책은 지나온 길을 반추하고 생의 의미를 조용히 벼리는 일종의 묵상이다. 남기환 저자의 <그리스 인문 기행 3>은 이러한 황혼의 서재에 더없이 그윽한 인문학적 울림을 전해주는 명작이다.

이 책은 단순한 관광 명소 안내서가 아니다. 아테네에서 출발해 헬레스폰토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문명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고전의 문장과 신화, 그리고 역사의 현장을 엮어낸 ‘지적 유랑기’다. 저자는 웅장한 신전의 폐허와 무심하게 굴러다니는 돌덩이 하나에서도 천년 전 숨 쉬던 인간의 고뇌와 철학을 읽어낸다. 돌기둥의 균열 속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보고, 그 너머로 인간이 끊임없이 물었던 삶과 죽음, 정의와 덕에 대한 질문을 되살려낸다.

특히 70대의 눈으로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리스의 영웅들과 철학자들이 나누었던 대화가 결코 멀리 있는 고대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거리에서 던졌던 질문들,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전쟁의 참상, 그리고 비극 작가들이 읊조렸던 운명의 무거움은 우리가 살아온 질곡의 현대사와도 닮아 있다. 격동의 세월을 통과하며 산전수전을 겪어본 이들에게 저자가 짚어주는 그리스 고전의 문장들은 가슴 깊은 곳에서 단단한 공명을 일으킨다.

저자의 문체 또한 대단히 정갈하고 기품이 있다. 현장의 스케치와 고전 텍스트의 인용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독자를 마치 신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지중해 언덕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화려한 수식어로 감정을 자극하기보다는, 깊이 있는 시선과 통찰로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여 독자 스스로 생각할 여백을 듬뿍 남겨준다. 이러한 여백이야말로 깊은 사색을 즐기는 노년의 독서가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선물이다.

젊은 날의 여행이 눈으로 보고 발로 뛰는 탐험이었다면, 나이가 들어 떠나는 여행은 마음으로 읽고 영혼으로 느끼는 기행이어야 할 것이다. 건강이나 여건상 지중해의 붉은 노을을 직접 보러 떠나지 못하더라도, 이 책 한 권을 곁에 두고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정신의 기행이 완성된다.
이 책을 읽다가보니 그리스에 여행 갔던 일이 떠올랐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뒤를 이어 폴리스의 패권을 차지했던 도시의 흥망을 살펴보았으며, 테살로니키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의 사상이 도시 국가의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과정을 들었다.
<그리스 인문 기행 3>은 지식을 채우기 위한 책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인생의 깊이를 더해주는 묵직한 가이더다. 석양빛이 스며드는 서재에서 고요히 자신만의 시간에 몰입하고 싶은 이들에게, 특히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인문학적 깊이를 벼리고자 하는 노년의 동반자들에게 일독을 적극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