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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집에서 죽을 수 있을까? - 정보·선택·용기로 완성하는 마지막 삶의 설계
박동자 지음 / 예미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박동자의 <나는 내 집에서 죽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비단 저자 개인의 의문이 아니라, 칠십 고개를 넘어선 나 자신과 내 또래 모두가 밤잠을 설치며 속으로 삼키던 나지막한 탄식이기도 했다. 평생을 일구어 온 내 집, 내 온기가 묻어난 익숙한 공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싶다는 바람은 정녕 이 시대에는 이룰 수 없는 과욕인가. 책장을 넘기는 내내 지나온 삶의 궤적과 다가올 삶의 마무리가 겹쳐지며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존엄한 죽음의 실상을 차분하면서도 매섭게 파헤친다. 우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정든 집과 가족을 뒤로한 채 소독약 냄새 진동하는 병원 침상이나 요약원의 창백한 벽에 둘러싸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연명 치료라는 이름 아래 차가운 기계 장치에 둘러싸여 임종을 맞이하는 광경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저자는 단순한 제도적 한계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지배(自宅) 임종’이 현실에서는 이토록 힘든 과제가 되었는지 의료, 돌봄, 그리고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다각도로 짚어낸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부모님을 여의고 또래 동창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늘 마음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적어도 내 삶의 끝자락만큼은 내가 주인이 되어 존엄하게 마침표를 찍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현실은 차디찼다. 돌봄의 부담이 가족, 특히 노노(老老) 돌봄 상태에 놓인 배우자나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구조 속에서, 내 집에서 죽고 싶다는 집착은 자칫 남아있는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짐을 안기는 이기심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단순히 암울한 현실만을 자조하진 않는다. 저자는 일본이나 유럽 등 앞서 고령화를 겪은 사회들의 방문 진료와 재택 돌봄 시스템, 그리고 지역사회 통합 돌봄의 모범 사례들을 조명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자기가 살던 곳에서 존엄하게 늙어가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으려면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과 방문 의료,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짊어지는 따뜻한 돌봄의 공동체가 구축되어야만 비로소 ‘내 집에서의 죽음’이 현실 가능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덮으며 깨달은 것은 존엄하게 죽는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죽음은 삶과 단절된 어느 한 순간이 아니라, 삶의 가장 마지막 단계이자 완성이다. 따라서 어디서 죽을 것인가의 문제는 곧 삶의 막바지까지 나의 주권을 가지고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가는 동년배들에게,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노년을 맞이할 젊은 세대들에게 이 책은 피할 수 없는 질문이자 필독서다. 차가운 제도에 밀려 낯선 곳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조용하지만 강렬한 경종을 울려준다. 나 역시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가꾸고, 내 삶의 마지막 장을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그려나갈 것인지 깊이 고민하게 만든 뜻 깊은 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