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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인간적인 물리학 - 삶의 궤도를 찾아가는 10번의 시간 여행
팀 폴러트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이 나이에 물리학이라니' 하는 자조 섞인 혼잣말이었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세상의 온갖 풍파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겪어냈지만, 물리학이라는 학문은 언제나 딱딱한 공식과 차가운 법칙의 영역으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팀 폴러트의 <이토록 인간적인 물리학>은 제목부터가 묘한 울림을 주었다. 차갑고 명확한 과학의 언어로 삶과 인간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책을 한 장씩 넘기며 깨달은 것은, 물리학이 거창한 우주의 비밀만을 파헤치는 학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루하루 숨을 쉬고, 타인과 마찰하며, 나이가 들고, 언젠가는 사라져가는 모든 일상의 순간을 관통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였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엔트로피와 열역학 제2법칙에 관한 대목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흐트러지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법칙. 예전 같았으면 그저 우주의 냉혹한 진리 정도로 넘겼을 테지만, 칠십의 눈으로 바라본 엔트로피는 다르게 다가왔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기력이 떨어지고, 기억은 희미해지며, 평생을 가꿔온 일상이 조금씩 흐트러지는 것은 자연의 지극히 당연한 순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쇠퇴와 늙음은 삶의 실패나 비극이 아니라, 이 우주가 작용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이라는 위로를 받았다.

또한 관성의 법칙과 마찰력을 삶의 인과관계와 인간관계에 비유해 풀어내는 저자의 시선은 놀라웠다. 삶에서 오랜 습관을 바꾸기 힘든 이유, 타인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마찰과 오해 역시 물리학적 관점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마찰이 없으면 우리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나를 힘들게 했던 수많은 갈등과 마찰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내가 삶을 지탱하고 조금씩 성장할 수 있게 해준 디딤돌이었음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게 된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관찰자 효과’에 이르러서는 삶을 바라보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오만이다. 우리는 늘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며, 어떠한 시선과 태도로 대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상의 상태가 달라진다. 칠십 년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겸손함이 물리학이라는 단단한 지성 속에서 다시 한 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어렵고 복잡한 수식 대신, 인생의 다양한 비유와 깊은 통찰로 과학의 장벽을 낮춰준다. 세상을 정복하거나 모든 원리를 완벽히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지극히 작고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나를 받아들이고, 타인과의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깨닫게 해준다.
인생의 후반전을 지나며 지나온 길을 반추하고 삶의 순리를 조용히 수용하고자 하는 동년배들에게, 그리고 삶의 무게와 불확실성으로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은 따뜻하고 지적인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물리학이라는 가장 엄밀한 언어로 써 내려간, 참으로 ‘이토록 인간적인’ 삶의 찬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