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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부터 다지는 아크릴화 그리기
요네자와 타쿠야 지음, 문성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월이 70년쯤 차오르고 나면,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결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침 햇살에 부서지는 마당의 풀잎 색도 어제와 다르고, 노을이 질 때 산등성이를 덮는 보랏빛 묵직함도 하루하루 그 깊이를 달리한다. 살아온 날들만큼 수많은 풍경과 감정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지만, 정작 이를 세상 밖으로 표현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은 청춘인데 손끝은 무디고, 어떤 도구를 들어야 내 안의 계절들을 온전히 그려낼 수 있을지 막막할 때가 많다. 요네자와 타쿠야의 <기초부터 다지는 아크릴화 그리기>는 바로 그 막막함의 문턱에 서 있는 이들에게 조용히 다가와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 주는 책이다.
처음 미술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유화나 수채화는 뜻밖에 진입장벽이 높다. 유화는 냄새와 기름, 길고 지루한 건조 시간이 부담스럽고, 수채화는 한 번 그은 붓질을 돌이키기 어려운 예민함 때문에 붓을 쥐기도 전에 겁을 먹게 만든다. 반면 아크릴물감은 물로 다룰 수 있어 깔끔하면서도 빠르게 마르고, 얼마든지 그 위에 색을 덧칠해 수정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졌다. 저자는 이 아크릴화라는 매재(媒材)가 지닌 관대함과 매력을 책 전체에 걸쳐 아주 체계적이고 따뜻하게 풀어낸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기초’라는 제목에 충실하면서도 족집게처럼 정교한 설명에 있다. 도구를 고르는 아주 단순한 기준부터 시작해, 물감과 물의 비율, 붓을 잡는 각도, 색을 조제하는 명확한 원리까지 초보자가 겪을 법한 시행착오를 미리 다 들여다본 듯 세심하게 안내한다. 사진과 함께 배치된 시각 자료들은 눈이 다소 어두워진 이들도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고 시원시원하다. 하늘의 그러데이션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법, 나뭇잎의 질감을 섬세하게 살려내는 법 등 실전 기법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저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용기가 솟아오른다.

특히 인생의 후반부를 지나는 이의 관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실기 가이드북을 넘어선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올리고 붓을 움직이는 행위는 잊고 지냈던 몰입의 즐거움을 일깨워 준다. 아크릴화의 가장 큰 특징인 ‘덮어쓰기’는 마치 우리네 삶과도 닮아 있다. 붓질 한 번이 틀렸다고 해서 화폭 전체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물감이 바른 뒤 그 위에 다른 색을 다시 쌓아 올리면 그만이다. 잘못 그린 선조차도 결국 그 위에 올려질 아름다운 색을 받쳐주는 깊이 있는 바탕이 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고쳐 그릴 수 있다는 점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온 삶의 궤적과 교차하며 묘한 위로를 건넨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의 속도와 조금씩 거리를 두고,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돋보기를 고쳐 쓰고 책장을 넘기며 붓 끝에 물감을 묻히는 동안, 잡념은 사라지고 온전히 나와 화폭만이 남는 정적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 지난 여행지에서 만났던 언덕의 풍경, 혹은 내 마음자리를 닮은 정물 하나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일은 내 삶을 스스로 기록하고 축복하는 또 하나의 품격 있는 방식이다.

<기초부터 다지는 아크릴화 그리기>는 그림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책이다. 붓을 들기 머뭇거려졌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길잡이 삼아 물감 냄새 연하게 감도는 캔버스 앞에 앉아보기를 권한다. 손끝에서 다시 피어나는 색채들은 당신의 오늘을 어제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생기 있게 물들여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