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과 4분의 3의 슬픔
폴커 주어만 지음, 김시형 옮김 / 삐삐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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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다 보면 삶이란 거창한 환희나 요란한 비극보다는, 말없이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균열로 채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수많은 이별과 상실, 그리고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한 슬픔들을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었다. 독일 작가 폴커 주어만의 소설 <134분의 3의 슬픔>을 집어 든 것은, 어쩌면 내 지나온 삶의 그늘진 모퉁이 어디쯤을 다시 기웃거려보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목부터가 참 묘하다. 정수로 딱 떨어지지 않는 ‘134분의 3’이라니. 완성되지 못한 채 애매하게 남아 있는 그 숫자만큼이나, 이 책이 다루는 슬픔 또한 어느 깔끔한 단어로도 잘라 말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감정이다. 소설은 단 하나의 커다란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창한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미세한 틈새로 스며드는 쓸쓸함,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거리감, 그리고 다 메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자리들을 야금야금 파고든다.

 

젊은 날의 슬픔은 뜨겁고 격렬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세상이 무너지는 듯 소리쳐 울었고, 억울함과 서러움에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러나 칠십의 눈으로 바라보는 슬픔은 전혀 다른 형태를 띤다. 그것은 가라앉은 찻앙금처럼 조용하고, 낮게 까라 앉은 안개처럼 아늑하면서도 서늘하다. 작가 폴커 주어만은 그 찰나의 침묵과 머뭇거림을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무심한 대화 사이, 혹은 대화가 끊긴 정적 속에 담긴 4분의 3만큼의 슬픔을 문장으로 끌어올리는 솜씨가 정교하다.

 

책을 읽는 내내 지나온 세월 동안 내가 스쳐 지나왔을 수많은 완성되지 못한 마음들이 떠올랐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도 차마 건네지 못했던 말들, 친구의 어깨를 토닥여주지 못하고 돌아섰던 어색한 순간들, 그리고 나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수많은 미련이 바로 그 4분의 3의 슬픔이었을 것이다. 100% 깔끔하게 해결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채 마음 한구석에 짐처럼 얹혀 있던 감정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어정쩡한 슬픔을 불행이나 비극으로 단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부전공 같은 슬픔이야말로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하게 만드는 가장 인간적인 여백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다 채워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타인의 상처에 슬그머니 손을 얹을 수 있는 법이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삶보다는 조금은 모나고 흠집 난 삶이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삶의 가을목에 서서 보니, 슬픔을 모조리 몰아내고 기쁨으로만 채우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 역시 내 삶을 이끌어온 당당한 지분이자, 나라는 존재를 형성해 온 소중한 파편이다. 폴커 주어만의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문체는 내 가슴속 깊이 침전되어 있던 그 미완의 슬픔들을 가만히 쓸어내려 주었다.

 

이 책은 나처럼 세월의 굽이굽이를 지나온 이들에게는 나지막한 위로를, 아직 삶의 서투른 계절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는 슬픔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건넨다. 삶이 항상 비극 아니면 희극이라는 이분법에 갇힐 필요는 없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수점의 감정들, 134분의 3이라는 그 모호한 지점을 다정하게 보듬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비워진 채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씁쓸하면서도 따뜻한 여운이 오래도록 마음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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