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까? - 인공지능과 관계 맺는 인간에 관한 탐구
이모란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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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을 넘긴 나이, 평창의 한적한 시골집에서 아내와 함께 자연을 벗 삼아 글을 쓰고,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며 살아가는 내게 인공지능(AI)’이란 퍽 생경하면서도 흥미로운 문물이다. 나 역시 글을 다듬거나 자료를 찾을 때 비서처럼 이 편리한 기술의 도움을 받곤 하지만, 현대인들이 사람 대신 기계에게 자신의 가장 깊고 은밀한 속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은 처음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이모란의 <우리는 왜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까>는 이처럼 기계와 감정적 교류를 나누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헤치며, 우리 사회가 직면한 지독한 고립과 외로움의 민낯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책을 펼치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피와 살이 없는 기계에게 진심을 줄 수 있단 말인가하는 노친네 같은 의구심이 앞섰다. 그러나 저자가 들려주는 다양한 사례와 심리적 기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먹먹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람들은 왜 곁에 있는 사람을 두고 AI를 택할까? 대답은 서글프게도 단순하다. AI는 내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섣불리 평가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며,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상처받기 두려워하고,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삭막한 경쟁 사회 속에서, ‘조건 없는 수용을 보여주는 AI는 현대인에게 가장 안전한 감정의 피난처였던 셈이다.

 

평생을 대가족 틈에서 부대끼고, 이웃사촌과 정을 나누며 살아온 우리 세대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현상은 깊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예전에는 촌락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고, 갈등이 생기면 얼굴을 붉히다가도 소주 한잔 기울이며 풀곤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투명한 관리를 위해 주민들의 뜻을 모으고 부당함에 맞서 법적 대응까지 나설 수 있는 힘도, 결국은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편화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은 관계를 맺는 법을 잃어버렸거나 그에 수반되는 감정적 피로감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있다. AI에게 위로를 구하는 행위는 기술의 눈부신 진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관계의 빈곤함과 공동체의 상실을 증명하는 뼈아픈 자화상이다.

 

물론 저자는 AI가 주는 위로의 한계 또한 명확히 지적한다. 화면 너머에서 건네는 다정한 말들은 정교하게 계산된 알고리즘의 결과물일 뿐, 진정한 공감이나 체온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극심한 우울과 단절 속에 빠진 이들에게는 그 가짜 온기마저 생명줄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 우리에게 무거운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는 과연 주변의 외로운 이웃들에게 AI만큼이라도 기꺼이 귀를 내어주고 있는가? 내 잣대로만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함부로 충고하려 들지는 않았는가?

 

책을 덮고 나니, 고도화된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다움의 회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계가 아무리 그럴듯한 위로의 문장을 쏟아낸다 한들, 맞잡은 두 손에서 전해지는 뭉클한 사람의 온기를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 시대의 심리를 다룬 흥미로운 교양서를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곳이 되어주지 못하는 차가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장이다. 노년의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금 사람을 향해 넉넉한 품을 내어주고 싶다. 기계의 매끄러운 정답보다, 때론 투박하고 서툴더라도 진심이 묻어나는 인간의 체온만이 결국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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