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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혐오주의자 - 왜 우리는 서로에게 혐오 꼬리표를 붙이는가
함규진 지음 / 온더페이지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함규진 교수의 <무해한 혐오주의자>를 덮으며, 평생을 ‘상식’과 ‘도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내 노년의 삶을 깊이 되돌아보게 되었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상은 눈부시게 변했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물질이 풍요해진 지금, 세상은 과거보다 더 날카로운 독설과 배타성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라는 괴물의 민낯을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파헤친다.
우리 세대는 거친 격동의 시기를 살아왔다. 가난을 이겨내야 했고, 체제의 대립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다 보니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나와 다른 것을 경계하는 것이 일종의 생존 본능이자 사회적 규범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대놓고 타인을 증오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신 ‘합리적 이유’를 대며 교묘하고 점잖게 타인을 배제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저자가 말하는 ‘무해한 혐오주의자’란 바로 이들을 가르킨다. 스스로는 선량하고 상식적인 시민이라 믿으면서, 법과 질서, 혹은 자신만의 정의를 무기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뜨끔했던 조항은, 내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경험의 지혜’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강요나 혐오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노년이 되면 젊은이들의 가치관이나 행동양식이 눈에 거슬리기 마련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거나 “노력을 안 한다”는 식의 섣부른 진단도, 어쩌면 그들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채 내 기준만을 절대화한 ‘무해한 혐오’의 일종일지 모른다. 악의는 없다. 단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 옳다고 믿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악의 없음’이 오히려 상대방에게는 반박할 수 없는 차가운 벽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저자는 혐오가 단순히 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 불안과 결핍에서 오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짚어낸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소외될지 모른다는 노년의 불안,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청년의 절망이 각자의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혐오 공동체다. 서로가 서로를 피해자로 규정하며 방어벽을 쌓는 형국이다.

책은 우리에게 대단한 성인군자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뱉는 무심한 말 한마디,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선입견이 혹시 타인의 삶을 깎아내리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권한다. 내 안의 편견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무해함’이라는 가면을 벗겨내는 첫걸음이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묵직한 숙제가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귀는 열고 입은 닫으라 했다. 이제는 내 경험을 앞세워 훈수 두기보다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너그러운 노년이 되고 싶다. 내가 무심코 행했을지 모를 ‘무해한 혐오’를 반성하며, 세상 모든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진정한 의미의 ‘무해한 인간’으로 나이 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 책은 내 생각의 굳은살을 깨뜨려 준 고마운 죽비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