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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야기 - 개정증보판
정현채 지음 / 보담 / 2025년 4월
평점 :

70년을 훌쩍 넘겨 살아온 이들에게 ‘이승만’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역사 속 활자가 아니다. 그것은 유년 시절의 굶주림, 전란의 포화, 그리고 격동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몸으로 겪어낸 삶의 배경 그 자체다. 우리 세대는 그를 건국의 영웅으로 우러러보기도 했고, 때로는 독재자라는 비판의 칼날 앞에 씁쓸함을 삼키기도 했다. 공과 과가 이토록 뚜렷하게 갈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 그렇기에 정현채의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야기》라는 책 제목을 접했을 때,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일렁였다. 거칠고 투박한 정치의 언어가 아닌, '엄마'의 따스한 목소리로 풀어낸 이승만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과 일말의 염려가 동시에 들었다.
이 책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삶을 자녀에게 이야기하듯 나긋나긋하게 풀어낸다. 격정적인 투쟁이나 복잡한 정치 공학 대신, 한 인간이 가졌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건넜던 고난의 바다를 비춘다. 조선의 몰락을 바라보며 한성감옥에서 청춘을 보냈던 청년 이승만, 태평양을 건너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고 대한민국이라는 기적의 씨앗을 뿌린 외교관 이승만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우리 세대가 교과서나 신문 쪼가리, 혹은 광장의 구호로만 접했던 파편화된 이승만이 아니라, 국가의 기틀을 짜기 위해 고뇌했던 한 인간의 궤적이 정성스럽게 담겨 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가장 깊이 몰입했던 부분은 그가 이뤄낸 ‘기적 같은 선택들’이다. 70대의 눈으로 돌아보건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토대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해방 정국의 그 극심한 혼란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선택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안보의 방파제를 세운 것은 시대를 앞서간 혜안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농지개혁을 통해 소작농들에게 제 땅을 갖게 한 결단은 또 어떠한가. 그것은 신분제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평등한 국민을 길러낸 무혈 혁명이었다. 책은 이러한 굵직한 역사적 순간들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일평생을 살아오며 목도한 역사의 아픔도 함께 떠올랐다. 말년의 장기 집권과 4·16의 비극은 그가 남긴 지울 수 없는 과오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과오를 무조건 덮어두거나 미화하기보다, 그가 세운 ‘대한민국’이라는 집의 주춧돌이 얼마나 단단한 것이었는지에 방점을 찍는다. 70대의 완숙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공을 지우기 위해 과만 부각하거나 반대로 과를 가리기 위해 공만 치켜세우는 것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비록 이 책이 ‘엄마의 마음’으로 그의 긍정적인 면모와 건국의 업적을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그동안 너무 왜곡되고 묻혀 있던 건국의 가치를 바로잡으려는 치열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수긍이 간다.
이 책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과거의 인물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미래 세대’와 연결하려는 태도에 있다. 책장을 덮으며 문득 지금의 젊은 세대, 그리고 나의 손주들이 떠올랐다. 풍요의 시대에 태어나 자유를 공기처럼 마시는 아이들에게 이승만이라는 이름은 그저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의 시작점에 치열했던 한 인간의 고뇌와 헌신이 있었음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건국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지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정체성도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결국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기억의 유산’이다.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향한 해묵은 이념의 갈등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기적의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담담하게 전하는 이 책은 나이 든 이에게는 회한과 감동을, 젊은이에게는 뿌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손주에게 머리맡에서 읽어주고 싶은, 참으로 따뜻하고도 묵직한 건국 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