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여왕과 공주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Cha Tea 홍차 교실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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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역사는 흔히 왕과 장수들의 거대한 정복 전쟁이나 정치적 결단 위주로 기록된다. 승자의 기록 속에서 왕실의 여성들은 대개 가문의 번영을 위한 정략결혼의 도구나, 왕의 뒤편을 장식하는 화려한 배경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Cha Tea 홍차 교실의 <영국의 여왕과 공주>는 역사의 주 무대에서 살짝 비껴나 있던 로열 패밀리 여성 22명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다. 영국 왕실에 차() 문화를 정착시킨 브라간사의 캐서린부터 시작되는 이 파란만장한 애증극은, 화려한 왕관 뒤에 숨겨진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과 고뇌를 묵직하게 들추어낸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왕실 여성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한다. 출신 성분과 지참금 액수 같은 현실적인 조건부터 시작해서 외모, 패션 감각, 자녀 교육 방침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오늘날의 대중매체와 SNS가 부추기는 관음증적 시선은 수백 년 전 영국 왕실에서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여왕과 공주들은 만인의 부러움을 받는 자리에 있었지만, 동시에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대하고 화려한 감옥에 갇힌 수수께끼 같은 존재들이었다. 브라간사의 캐서린은 포르투갈에서 시집와 영국 court에 홍차 문화를 들여온 문화적 선구자였지만, 이국땅에서 외로움과 왕실의 냉대를 견뎌내야 했던 이면이 존재한다.

 

잔혹한 권력 투쟁: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권력을 휘두른 여성이 있는가 하면, 남편을 증오하며 평생을 감시와 스캔들 속에서 고통받은 여성도 있었다. 지나고 보면 인간의 삶이란 다 비슷하다지만, 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유독 가혹했다. 그것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거대한 제도와 가문의 야망이 얽혀 만든 비극의 무게였기 때문이다.

 

일흔 고개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사가 참 기묘하게도 닮은꼴로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골 작은 마을의 크고 작은 갈등이나, 대영제국을 호령하던 버킹엄궁의 권력 투쟁이나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질투와 야망, 사랑과 배신이라는 감정의 도식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스캔들은 되풀이된다.”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이 한 문장은 역사의 속성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한 시대의 파문을 일으켰던 스캔들은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듯하지만, 다음 세대에 다른 인물의 얼굴을 하고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 왕실 여성들을 둘러싼 끊임없는 소문과 폭로, 권력을 향한 암투는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이 권력이라는 거대한 돋보기와 만났을 때 어떻게 폭발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인류학적 보고서다.

 

주목할 점은 이 책이 왕실 여성들을 단순히 비극의 주인공이나 스캔들의 희생양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녀들은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자신만의 발자취를 역사에 뚜렷이 새겼다. 영국을 대표하는 문화가 된 홍차 관습을 비롯해 건축, 정원, 예술 후원 등 오늘날 영국이 자랑하는 문화적 자산의 상당 부분은 이 22명의 여왕과 공주들의 손끝에서 잉태되었다.

 

치열한 생존 투쟁 속에서도 자신만의 취향과 문화를 가꾸고, 이를 통해 왕실과 국가의 초석을 다져나간 여정은 대단히 흥미롭다. 남성 중심의 거친 정치사 이면에서, 섬세하면서도 강인하게 흐르던 또 하나의 거대한 영국사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이 책을 덮으며 화려함의 이면을 복기해 본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영화를 누린 것처럼 보이지만, 기록 속에 남은 그녀들의 삶은 매 순간이 가시방석이었고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의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내고 그 안에 숨겨진 진짜 알맹이를 묵묵히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을 갖는 일이다. <영국의 여왕과 공주>는 나에게 멀고 먼 나라의 옛이야기를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근원적인 외로움과 권력의 덧없음을 다시금 사색하게 만들었다. 왕관을 썼든 쓰지 않았든, 주어진 운명에 맞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했던 인간의 뒷모습은 언제나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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