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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부터 90세까지, 현명하게 돈 쓰는 법 - 돈 모으다 늙고, 아끼다 죽을 건가요?
오에 히데키 지음, 김진희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의 일곱 번째 십 년을 살아가다 보면 젊은 시절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해지곤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돈’의 유통기한이다. 젊을 때는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든든한 방패막이이자 성공의 척도였다. 하지만 앞날보다 지나온 날이 더 길어진 지금, 숫자로만 존재하는 돈은 아무런 온기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에 히데키의 <60세부터 90세까지, 현명하게 돈 쓰는 법>은 바로 이러한 노년의 사유와 정확히 맞닿아 있는 책이다. 저자는 “돈을 모으다 늙고, 아끼다 죽을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진짜 비결은 ‘불리기’가 아니라 ‘잘 쓰기’에 있다고 단언한다.

이 책은 노후 불안이라는 보이지 않는 유령에 사로잡혀 평생 모은 재산을 묵혀두기만 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많은 이들이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자산을 늘려야 한다는 저주에 걸려 있지만, 저자는 인생의 성적표가 결코 통장 잔고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결국 재산이란 내가 살아생전 써서 누린 것만이 진짜 내 몫이라는 논리다. 70대의 눈으로 주변을 둘러봐도 이 지적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주변의 동년배들을 보면 자식에게 한 푼이라도 더 물려주려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커피 한 잔 마음 편히 사 마시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혹은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재산 때문에 자식들이 반목하는 씁쓸한 풍경도 종종 목격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돈이란 도대체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회의가 들곤 했는데, 이 책은 그 답을 명쾌하게 내려준다. 어리석게 죽고 싶지 않다면, 내가 번 돈은 내가 기분 좋게 쓰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돈으로 사는 최고의 재산은 추억’이라는 대목에서 깊은 공감을 느꼈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 활동 반경은 줄어들지만, 과거에 쌓아둔 아름다운 기억의 영토는 삶을 지탱하는 거대한 힘이 된다.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데 쓰는 돈은 매몰되는 비용이 아니라 ‘추억’이라는 가장 안전하고 가치 있는 자산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아내와 함께 낯선 이국의 거리를 거닐던 순간, 가족들과 함께 웃었던 기억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짙은 향기를 풍긴다. 반면, 통장에 갇혀 있는 숫자는 내가 쓰지 않는 한 그저 종이 조각이나 데이터에 불과할 뿐이다.

저자는 무조건적인 과소비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 있는 곳에 당당하게 돈을 쓰되,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 자신의 행복’을 기준점으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남들이 좋다는 주식이나 유행하는 투자에 휩쓸려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지갑을 열라는 의미다. 나아가 여유가 있다면 주변의 가난한 이웃을 돕거나 사회적 가치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라고 말한다. 돈을 통해 감사를 표하고, 그 돈이 선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은 그 어떤 자산 증식의 쾌감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 책은 단순한 재테크 서적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역산해서 인생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를 묻는 인문학적 지침서에 가깝다. 70대라는 나이는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축적된 지혜를 바탕으로 가장 주체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황금기이기도 하다. 더 이상 통장의 숫자를 늘리는 일에 전전긍긍하며 남은 시간을 불안으로 채우고 싶지 않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오늘 하루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마음을 쓰고 돈을 쓸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노년의 하루는 충분히 활기차고 존엄해질 수 있다. 품위 있게 늙어간다는 것은 결국 돈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것을 도구 삼아 인생을 가치 있는 기억들로 촘촘히 채워 나가는 과정임을 이 책은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