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 라이팅
황준연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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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고 보니 세상의 모든 소리가 점점 아득해지는 것을 느낀다. 바깥세상의 소음은 요란한데, 정작 내 귀를 잡아끄는 것은 내 안에서 나직하게 울리는 정체 모를 떨림이다. 살면서 쌓인 무수한 기억과 감정,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회한과 기쁨이 뒤섞여 내면에서 끊임없이 파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셈이다. 이 나이가 되면 그저 지나온 삶을 조용히 정리하며 침묵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준연의 <바이브 라이팅>을 읽으며, 내 안의 그 미세한 떨림이 바로 글쓰기의 시작이자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 책은 기교나 형식을 가르치는 무미건조한 작법서가 아니다. 내면의 고유한 주파수, 바이브를 포착해 그것을 날것 그대로의 문장으로 길어 올리는 정신적 해방의 과정을 담은 아주 다정한 안내서다.

 

흔히 글쓰기라고 하면 머리싸움을 먼저 떠올린다. 앞뒤 문맥이 맞는지, 단어 선택이 고급스러운지, 남들이 읽기에 그럴듯한 형식을 갖추었는지를 따지느라 첫 문장조차 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우리 세대는 격식과 규범을 중시하는 교육을 받아왔기에, 내 생각을 글로 옮길 때 검열관처럼 스스로를 옥죄는 경향이 강하다.

 

저자는 이러한 고정관념의 벽을 단숨에 허문다. 글은 머리로 짜내는 논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내면의 진동을 그대로 받아 적는 행위라는 것이다. 매끄럽지만 영혼이 없는 백 줄의 글보다, 서툴러도 자신의 투박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멋진 포장지를 두르려 하지 말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최초의 감각과 울림에 집중하여 거침없이 써 내려갈 때 비로소 살아있는 글이 탄생한다.

 

이 제안은 나에게 큰 위로로 다가왔다. 맞춤법이 조금 틀리면 어떻고, 문장이 세련되지 못하면 어떠랴. 내 삶의 궤적이 담긴 고유한 주파수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글은 제 몫을 다한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주변의 관계들이 정리되고 홀로 남겨지는 시간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외로움과 고독이 안개처럼 밀려올 때, <바이브라이팅>은 그 고독의 시간을 가장 창조적인 순간으로 전환하는 지혜를 빌려준다. 혼자만의 방에서 깊은 숨을 쉬며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바로 나만의 주파수를 세밀하게 조정하는 일이다.

 

책을 읽으며 내 삶의 바이브는 어떤 모양일지 가만히 더듬어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낸 뒤에 찾아온 잔잔한 호수 같은 평온함일 수도 있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삶의 수수께끼에 대한 나직한 탄식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내 안에 존재하는 고유한 결을 텍스트로 전환하는 작업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온전히 대면하고 치유하는 숭고한 의식과도 같다.

 

이 책의 장점은 단순히 개인의 치유에 머물지 않고, 세대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바이브라는 말 자체가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감각적인 단어 아닌가. 처음에는 그저 철없는 유행어처럼 느껴졌던 이 단어가, 저자의 깊이 있는 사유를 거치며 인간의 근원적인 예술적 충동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격상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책을 덮으며, 책상 위에 놓인 빈 노트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내 손은 이제 거칠고 투박해졌으며, 펜을 쥔 손끝은 미세하게 떨린다. 하지만 그 떨림은 늙음의 징후가 아니라,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생의 에너지가 문장이 되고 싶어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나에게 다시 펜을 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잘 쓰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내 영혼의 울림이 이끄는 대로 손을 움직여보려 한다. 거친 종이 위로 내 삶의 주파수가 문장이 되어 새겨지는 그 경이로운 경험을 향해, 늙은 청년의 마음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문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진동을 그저 정직하게 받아 적는 일. 그것이 이 찬란한 노년을 가장 품격 있게 살아내는 나만의 방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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