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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는 사람들 - AI만 읽는 시대, 퇴화하는 인간 지능에 관한 경고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고 보니 세상의 변화 속도가 아찔할 만큼 빠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원하는 정보가 쏟아지고, 이제는 인공지능이 인간 대신 두꺼운 책을 요약해 주고 글까지 대신 써주는 시대가 되었다. 바쁘고 효율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젊은 세대에게 이는 축복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읽고 쓰는 수고로움을 기계가 대신해 주니, 인간은 그만큼 시간을 벌었다고 좋아할 만하다. 그러나 나오미 배런의 <읽지 않는 사람들>을 읽으며, 나는 그 효율성이라는 달콤한 덫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문명사적 위기를 직시하게 되었다. 저자가 경고하는 ‘텍스트포칼립스’는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당도해 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에게 읽기란 단순히 정보를 얻는 행위 그 이상이었다. 등잔 밑에서, 혹은 거친 종이 질감을 느끼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읽던 그 시간은 온전히 나의 뇌를 깨우고, 타인의 삶에 공감하며, 세상의 이치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던 단련의 시간이었다. 인간이 유일한 ‘읽는 종’으로 진화해 온 지난 5,000년의 역사는 바로 이 깊은 읽기를 통해 지적 문명의 기둥을 세워온 과정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학생, 직장인, 연구자 할 것 없이 이 귀한 읽기의 권리를 기계에게 고스란히 양도하고 있다. 기계가 읽고 요약한 뼈대만 취하는 인간의 삶은 겉보기엔 스마트해 보일지 몰라도, 속은 텅 비어가기 마련이다.

저자는 ‘AI가 읽는 동안, 인간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나에게 ‘생각의 외주화’가 가져올 끔찍한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읽지 않는 인간은 스스로 사유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기계가 골라준 표준화된 언어와 정형화된 생각에 갇혀,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선이나 깊이 있는 성찰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뇌도 근육과 같아서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읽기를 포기하는 것은,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 올린 인지 능력의 핵심이자 지혜의 원천을 스스로 팽개치는 행위와 다름없다. 기계가 인간의 뇌를 대신하는 순간, 인간은 그저 기계가 생성한 텍스트의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하고 만다.

노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책은 단순한 경고장을 넘어,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한 지적 선언문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왜 기계의 편리함에 저항하며 굳이 눈을 침침하게 해가면서까지 직접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명확히 밝혀주기 때문이다. 읽기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자 과정이다.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읽어내는 그 지난한 여정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인내를 배우고, 맥락을 이해하며, 삶을 관조하는 지혜를 얻는다. AI가 아무리 완벽한 요약본을 제공한다 한들, 책장을 넘기며 멈춰 서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감동하던 그 내밀한 정신적 고독과 충만함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본질이 있다. 읽기를 멈춘 사회는 깊이를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스마트폰 화면의 짧은 글귀에 눈을 빼앗기고 AI에게 생각을 맡길 때, 기성세대로서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모습은 명확하다. 서재의 불을 밝히고 묵묵히 책을 읽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깊은 사유와 공감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를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읽지 않는 사람들>은 편리함에 취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가던 우리 모두에게 벼락같은 각성을 촉구한다. 기계가 판치는 세상일수록, 우리는 더욱 철저하게 ‘읽는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 그것이 이 텍스트포칼립스 시대를 주체적으로 살아내기 위한 유일한 저항이자, 인간다운 삶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