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한 게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겁니다
황준연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 고개를 넘어서 만나는 요즘 세상은 가히 정신 산란함의 극치다. 지하철을 타도, 길을 걸어도 젊은이들은 한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세상은 잠시도 가만히 숨 고를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돌아간다. 내 눈에는 그저 진득하게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이리저리 주의력이 흩어지는 요즘 세태가 걱정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결함이자 고쳐야 할 버릇이라고 굳게 믿으며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준연의 <산만한 게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겁니다>를 읽으며, 내가 평생 정의 내려왔던 집중산만의 개념이 얼마나 낡고 일방적인 기준이었는지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은 시종일관 따뜻하고 명쾌한 어조로, 산만함이란 고쳐야 할 질병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는 독창적인 재능일 수 있다고 나지막이 선언한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산만하다고 치부해 버리는 태도를 동시다발적인 몰입이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가만히 앉아서 한 가지 책만 파고드는 것만이 올바른 몰입은 아니라는 뜻이다. 여러 개의 안테나를 동시에 켜두고 세상의 수많은 자극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사람들, 하나의 주제에서 꼬리를 물고 다른 생각으로 뻗어 나가는 사람들은 뇌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역동적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온 시대는 규격화된 공장형 인재를 원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 앉아 묵묵히 맡은 일만 해내는 것이 미덕이었고, 거기서 벗어나 한눈을 팔면 낙오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정보가 넘쳐나고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오늘날에는, 오히려 이 방대한 자극들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능력이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특히 나이 든 이의 입장에서 이 책이 주는 울림이 컸던 이유는, 평생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책하며 살아왔을 수많은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창밖을 내다본다고 꾸중을 듣던 아이, 직장에서 한 가지 프로젝트를 끝내기도 전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라 상사에게 핀잔을 듣던 청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들은 그저 세상을 받아들이는 주파수가 남들보다 넓고 다채로웠을 뿐이다. 책은 그들을 향해 당신의 뇌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나직하게 위로를 건넨다. 산만함이라는 단어에 갇혀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옥죄고 있던 이들에게, 그것은 세상을 넓게 보는 렌즈이자 창의성의 원천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 준다. 시선의 전환이 인간의 자존감을 어떻게 구원해 내는지 똑똑히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늙어간다는 것은 내 안의 고집을 내려놓고 젊은 세대의 삶을 그들의 눈으로 온전히 바라봐주는 지혜를 배우는 과정이다. 젊은이들이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고, 수시로 관심사를 바꾸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차기 전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동시다발적인 에너지의 실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이 흩뿌려놓는 무수한 생각의 파편들은 결코 무가치한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고정관념의 벽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내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산만한 게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겁니다>는 단순히 심리학이나 자기계발의 영역을 넘어, 인간을 바라보는 지평을 넓혀주는 아주 다정한 철학서로 읽힌다. 이 책을 덮으며, 내 삶의 궤적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산만했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을 향해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우물만 고집하지 않고 드넓은 대지를 종횡무진 누비는 그 자유로운 영혼들이야말로, 이 복잡한 시대를 가장 주체적으로 살아내는 진정한 선구자들이 아닐까 싶다. 낡은 잣대로 타인을 재단하려 했던 노년의 오만을 유쾌하게 깨워준,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