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졸업학교 교과서
임부돌 외 11인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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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고 나면 주변의 풍경이 이전과는 완연히 달라진다. 오랜 벗들의 희소식보다는 부고가 더 자주 찾아오고, 거울 속 주름 깊은 노인은 이제 인생의 종착지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매일같이 상기시킨다. 초고령사회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편입된 한 노인으로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는 삶의 가장 무거운 화두였다. 그러던 중 마주한 <인생졸업학교 교과서>는 막연한 두려움과 회피로 일관하기 쉬운 죽음이라는 절멸의 사건을, 삶의 가장 품격 있는 마무리를 위한 기획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이 책은 경북 경주 산내면의 숲속에서 2년간 치열하게 진행된 강의의 결과물이다. 의료, 법률, 행정, 종교, 심지어 첨단 AI에 이르기까지 각계 전문가 12인이 머리를 맞대고 노년의 삶과 죽음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기획을 주도한 임부돌 원장의 30년 임상 경험과 해외 선진 호스피스 현장의 통찰이 녹아있어서인지, 책이 제시하는 조언들은 결코 허공에 떠도는 맹목적인 위로나 종교적인 신비주의에 머물지 않는다.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당장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침들로 가득하다.

 

70대의 관점에서 이 책이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것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을 촉구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노년을 인생의 쇠퇴기이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타인에게 의탁해야 하는 시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들은 우리를 준비된 현역 어르신이라 부른다. 인생의 후반기 30년은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유예기간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완성해 나가는 능동적인 시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혹은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내 삶의 입법자이자 집행자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주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준엄한 권고다.

 

책은 의료적 연명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부터 유산의 사회적 환원이나 정리, 법률 및 행정적 절차, 그리고 남겨진 이들을 위한 정신적 유산을 작성하는 법까지 상세히 안내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신변을 정리하는 기술적인 절차가 아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얽힌 관계를 정리하며,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남길 흔적을 스스로 다듬는 고도의 영적·문화적 행위다. 70 평생을 살아오며 쌓아 올린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내 삶의 마침표를 내 손으로 아름답게 찍는 것만큼 고귀한 품격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경주 산내면의 깊은 숲속에서 수많은 떠남의 시간을 지켜본 이들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책의 문장들마다 깊은 생태적 지혜가 묻어난다. 자연의 모든 생명이 봄에 피어나 여름에 무성하고, 가을에 결실을 본 뒤 겨울의 침묵 속으로 돌아가듯, 인간의 죽음 또한 거대한 자연의 섭리이자 당연한 절기임을 깨닫게 한다.

 

인생의 졸업은 학교의 졸업과 같다. 배움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졸업식처럼, 삶의 마무리 또한 슬픔과 통곡만이 아닌, 한 인간의 우주가 완성되었음을 축하하고 기억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이제 나에게 남은 과제는 명확해졌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 막연함을 구체적인 설계로 바꾸는 것이다. ‘쉰세대신세대를 넘어, 품격 있는 인생의 졸업생이 되기를 소망하는 모든 동년배들에게 이 지혜로운 교과서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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