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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을 긋다, 마음을 잇다
이향숙·강숙아·김상철·이미자·이은정·임해숙·조시원·조숙희·지선령·황경애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고 보니, 세상의 요란한 말들보다는 고요한 행간에 눈이 더 자주 머문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진 이 지점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지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지나온 삶을 가만히 복기하고 남은 길을 다듬기 위함이다. 그러던 차에 <밑줄을 긋다, 마음을 잇다>라는 책을 만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열 명의 작가가 자신의 삶을 일으켜 세운 한 줄의 문장을 붙잡고 써 내려간 이야기다. 책장을 덮고 나니, 내 청춘의 한 자락과 치열했던 중년의 나날, 그리고 지금의 노년이 그들의 고백 위로 겹쳐 흐른다.
이 책은 빅터 프랭클부터 쇼펜하우어, 류시화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거장들의 문장을 길잡이로 삼는다. 열 명의 저자(이향숙, 강숙아, 김상철, 이미자, 이은정, 임해숙, 조시원, 조숙희, 지선령, 황경애)는 그 위대한 문장들을 단순히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신 그 문장이 자신들의 거친 삶의 현장을 어떻게 통과해 갔는지, 부서지고 아팠던 마음을 어떻게 꿰매어 주었는지를 투박하고도 진솔하게 고백한다. 70대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인생의 거센 파도를 함께 헤쳐 온 후배들의 절절한 생존기이자 성장 기록처럼 다가왔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겨울’을 맞이한다. 나 역시 사업의 실패나 건강의 위기, 소중한 이들과의 이별 등 숱한 겨울을 지나왔다. 이 책의 작가들 또한 그랬던 모양이다. 그들은 삶이 흔들릴 때마다 거장들의 문장에 매달렸다고 한다. 빅터 프랭클의 수용소 안에서의 절망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 했던 문장이나, 쇼펜하우어의 냉철한 성찰은 그들에게 단순한 글자가 아닌 ‘밧줄’이었을 것이다. 70년 넘게 살아보니 알겠다. 인간은 완벽해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면서도 붙잡을 문장 하나, 마음 기댈 곳 하나만 있으면 어떻게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붙잡음’에 대한 기록이다.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이 책의 제목처럼 ‘마음을 잇는’ 행위 그 자체다. 책 속에 소개된 거장들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거나 멀리 있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문장은 시공간을 초월해 열 명의 작가들에게 가닿았다. 그리고 이제 그 작가들의 삶이 녹아든 글이 되어 다시 나 같은 독자의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책이 가진 가장 거룩한 힘이 아닐까 싶다. 세대와 환경은 달라도,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슬픔,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시대를 관통해 흐른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70대의 완고해지기 쉬운 내 마음에도 그들의 온기가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열 가지 결의 목소리를 하나씩 음미하다 보니, 문득 내 인생의 밑줄은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젊은 날에는 성공과 성취를 말하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 테고, 중년에는 책임과 버팀에 대한 문장에 손이 갔을 것이다. 이제 노년에 이르러 내가 긋고 싶은 밑줄은 ‘용서’와 ‘감사’, 그리고 ‘남겨진 이들을 향한 위로’의 문장들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드러내어 타인에게 위로를 건넸듯, 나 또한 내 남은 생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한 선 하나를 그어주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밑줄을 긋다, 마음을 잇다>는 단순히 베스트셀러를 요약해 놓은 책이 아니다. 삶의 밑바닥에서 문장 하나로 번뇌를 건너온 이들의 피와 땀이 섞인 서사다. 치열하게 사느라 마음이 닳아버린 젊은이들에게는 나침반이 될 것이고, 삶의 황혼녘에서 지나온 날들을 반추하는 이들에게는 깊은 공감의 친구가 되어줄 책이다. 노년의 고독 속에서 잔잔하지만 강인한 삶의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 저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 역시 오늘 밤,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어 내 마음을 이어줄 새로운 밑줄을 가만히 그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