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귀 뚫기
집영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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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이치에 익숙해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제 와서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체념과 타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영어라는 존재는 우리 세대에게 평생을 따라다닌 거대한 숙제이자, 가슴 한구석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부채감 같은 것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시험을 치기 위해 까만 글씨를 빽빽하게 외우고, 문법 공식에 맞춰 문장을 칼로 자르듯 분석하며 배웠던 영어. 그러나 그렇게 수십 년을 공부했음에도 외국인 앞에만 서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길을 물어올까 두려워 슬그머니 눈길을 피했던 기억은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집영 저자의 <영어 귀 뚫기>는 바로 그 지독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라고 권하는 책이다. 저자는 마흔다섯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비로소 영어가 들리는 기적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영어를 계속 공부만 하고 있을까?” 이 한 문장은 수십 년간 텍스트 속에 갇혀 있던 내 영어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깨웠다. 우리는 영어를 학문으로, 점수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대했지, 인간이 태어나 자연스럽게 모국어를 익히는 소리의 영역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단순하지만 명료하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따지는 정교한 노력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영어를 소리 그대로 귀에 흘려보내라는 것이다. 뜻을 억지로 해석하려 들지 말고, 마치 매일 아침 라디오를 틀어놓듯 일상 속에 영어의 파동을 채우라는 조언이다. 70대의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에게 무언가를 새로 암기하고 뇌를 쥐어짜는 공부법은 고역에 가깝다.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리 자체에 귀를 익숙하게 만드는 이 자연스러운 습득 방식은 나이 든 이들에게도 커다란 해방감을 안겨준다.

 

세상을 오래 살아보니 결국 모든 일의 성패는 거창한 비법이 아니라 단순한 반복을 견뎌내는 끈기에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귀 뚫기 역시 대단한 천재성이 필요한 작업이 아니다. 들리지 않던 문장이 어느 순간 선명하게 고막을 울릴 때까지, 조급함을 내려놓고 매일 일정한 시간을 소리에 노출하는 우직함이 핵심이다. 이는 살아오면서 숱한 풍파를 견디며 기다림의 미학을 체득한 노년의 지혜와도 잘 맞닿아 있다. 젊은이들처럼 당장 내일의 시험 점수가 급한 것이 아니니, 오히려 더 느긋하고 담담하게 소리의 바다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게는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영어 학습의 기술을 전하는 지침서가 아니다. 영어라는 장벽 앞에서 평생 작아졌던 이들의 멈춰 선 자존감을 가만히 토닥여주는 회복의 안내서에 가깝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배움의 열망이나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까지 늙는 것은 아니다. 늦은 나이에 넷플릭스를 자막 없이 즐기고 싶다거나, 가끔 떠나는 해외여행에서 낯선 이에게 따뜻한 인사 한마디를 건네고 싶은 소박한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안 돼”, “평생 해도 안 된 걸 이제 와서 어떻게 해라며 지레 포기해버렸던 수많은 이들에게, 이 책은 45세에 시작해 성공한 저자의 생생한 기록을 통해 아주 현실적인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어 귀 뚫기>를 덮으며, 나는 해묵은 영어 책을 다시 펼치는 대신 조용히 귀를 열어 세상의 소리에 집중해보기로 마음먹는다. 문법의 감옥에서 벗어나 소리의 자유를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나이 든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값진 선물이자 새로운 인생의 활력소가 아닐까 싶다. 황혼의 길목에서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모든 동년배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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