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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 오라 뉴질랜드 - 별천지를 따라간 31일간의 인문 기행
유영봉 지음 / 작가와비평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세상은 참으로 숨 가쁘게 변해왔다. 개발과 성장의 시대를 관통하며 우리가 쫓아온 것은 어쩌면 거대한 콘크리트 숲과 숫자로 표시되는 풍요였는지 모른다. 그 속에서 자연은 늘 정복의 대상이거나, 잠시 틈을 내어 구경하는 소비재에 불과했다. 유영봉의 <키아 오라 뉴질랜드: 별천지를 따라간 31일간의 인문 기행>을 읽으며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진 이유는, 바로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았던 ‘공존의 가치’가 그곳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키아 오라(Kia Ora)’라는 마오리족의 인사말이 지닌 울림부터가 남다르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을 넘어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생명력을 축원하는 이 짧은 언어 속에 뉴질랜드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영어와 마오리어를 나란히 공용어로 사용하고, 도시의 이름마다 원주민의 기억을 보존하는 그들의 태도는 신선한 충격이다.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동안 효율과 경쟁을 앞세워 과거의 것, 소수의 것을 얼마나 쉽게 지우고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강한 유럽풍의 근대 문명 위에 마오리의 전통문화와 예술이 겹겹이 쌓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저자의 서술에서, 진정한 성숙이란 단절이 아니라 포용에서 온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이 책은 단순한 유람기가 아니다. 인류가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발견했다는 신대륙의 북섬과 남섬을 한 달간 발로 뛰며 기록한 깊이 있는 인문학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오클랜드에서 시작해 로토루아의 온천지대, 타우포 호수, 그리고 예술의 도시 웰링턴을 거쳐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와 퀸스타운, 마침내 밀포드 사운드에 이르는 여정은 독자를 대자연의 경외감 앞으로 이끈다. 화산 폭발로 태어나 때 묻지 않은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호수와 숲길을 묘사하는 저자의 문장은, 나이 칠십을 넘긴 이의 눈에도 푸른 수풀의 향기와 서늘한 바람의 감촉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자연을 대하는 ‘느긋하고도 넉넉한 시선’이다. 젊은 날의 여행이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빨리 움직이려는 ‘채움’의 여정이었다면, 이 책이 보여주는 한 달간의 여정은 자연의 섭리에 동화되는 ‘비움’의 과정에 가깝다. 박물관과 성당, 대학교를 찾아다니며 그 땅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는 저자의 발길에는 서두름이 없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사소한 에피소드조차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해내는 관조의 태도는, 인생의 사계절 중 겨울을 향해 가는 노년의 조급함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책 속에 담긴 생생한 사진들은 굳이 먼 길을 떠나지 않아도 그 낙원 같은 풍광을 시각적으로 조우하게 만든다. 천혜의 자연 속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키위(뉴질랜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문득 우리가 추구해야 할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그 품에 안겨 사는 삶, 옛것을 존중하며 이웃과 연대하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존엄한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키아 오라 뉴질랜드>는 단순히 이국땅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책이 아니다. 자연과 문화,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남은 생을 어떻게 정리하고, 주변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지 고민하는 동년배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덮으며 나직하게 읊조려 본다. 우리네 남은 인생의 여정에도 평화와 공존의 인사, ‘키아 오라’가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