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설계자들 - 트랜스휴머니즘에서 바이오해킹까지, 실리콘밸리 영생 프로젝트를 추적하다
알렉스 크로토스키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몸의 이곳저곳에서 세월의 신호가 찾아오는 70대의 길목에 서면, ‘죽음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자연스러운 마무리이자,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잔잔하게 마주하는 삶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실리콘밸리에서는 나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모양이다. 노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젊은이의 혈장을 교환하고, 몸속 장기의 상태를 초 단위로 기록하며, 인공지능을 동원해 생명의 비밀을 해킹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죽음은 순리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오류이자, 기술로 정복할 수 있는 마지막 고지에 불과하다. 알렉스 크로토스키가 쓴 <불멸의 설계자들>은 영생을 꿈꾸는 실리콘밸리의 거물들과 그들이 설계하고 있는 기묘한 신세계의 실체를 냉철하게 파헤친 책이다.

 

샘 올트먼, 피터 틸,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같은 이름들은 이미 세상의 지형을 바꾼 천재들로 익숙하다. 스마트폰을 처음 쥐었을 때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챗GPT가 세상을 뒤흔들었듯, 기술의 진보는 매번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니 10년 뒤에는 인류가 불멸에 가까운 수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그들의 호언장담이 마냥 터무니없는 공상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미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부어 이 거대한 영생 산업의 판을 짜고 있다. 기술이 인간을 신의 영역으로 이끌 것이라는 황홀한 약속이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노년의 눈으로 이 풍경을 바라보면, 경외감보다는 묘한 서글픔과 서늘함이 먼저 밀려온다. 실리콘밸리의 엘리트들이 말하는 불멸의 기저에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혐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쇠락하는 육체를 고장 난 기계 부품처럼 취급하며, 끊임없이 교체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늙어간다는 것이 그토록 저주스럽고 버려야만 하는 패배의 과정일까.

 

주름진 손을 보며 지나온 세월의 훈장을 느끼고, 육체의 속도가 느려진 만큼 주변을 더 깊이 돌아보게 되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노년의 존엄이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끝이 정해져 있기에 매 순간의 만남이 소중하고, 자식과 손주들에게 나의 자리를 기쁘게 내어줄 수 있는 법이다. 만약 기술의 은총을 독점한 소수의 권력자들이 영원히 죽지 않고 지구의 자원을 움켜쥔 채 살아간다면, 과연 그 세상이 인류에게 축복일까, 아니면 또 다른 재앙일까.

 

저자인 알렉스 크로토스키는 실리콘밸리의 화려한 기술적 성취 뒤에 숨은 본질적인 질문들을 날카롭게 끄집어낸다. 이 책은 단순히 과학 기술의 미래를 찬양하는 대중서가 아니다. 오히려 무분별한 테크 자본주의가 인간성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그리고 불멸의 설계자들이 꿈꾸는 미래가 얼마나 독선적이고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엄중한 경고장에 가깝다.

 

아무리 대단한 기술이 찾아와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인간은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점이다. 가을이 오면 단풍이 들고 겨울이 오면 낙엽이 지듯, 생명의 성쇠는 거스를 수 없는 우주의 순리다. 죽음을 지워버린 삶은 밀도 없는 영원에 불과하다. 이 책은 나처럼 인생의 후반전을 지나며 삶의 마무리를 사색하는 노년에게는 지금 누리는 유한한 삶의 가치를 다시금 확신하게 해주는 거울이 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젊은 세대에게는 기술이 가리키는 방향이 진정 인간을 위한 길인지 멈춰 서서 고민하게 만드는 쉼표가 되어줄 것이다. 불멸을 설계하는 천재들의 세상에서, 진짜 지켜야 할 인간의 품격이 무엇인지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