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는 독립의 역사, 영웅
서경덕 지음, 김주용 감수 / 허들링북스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기면서 세상의 소음보다는 고요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남은 날들을 어떻게 단단하게 채워갈지 고민하던 중, 서경덕 교수가 엮은 <손으로 쓰는 독립의 역사, 영웅>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단순히 눈으로 읽고 머리로 외우는 역사서가 아니다.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냈던 이들이 남긴 말과 글, 시와 편지를 손으로 직접 따라 적으며 그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필사집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는 독립운동의 시대를 직접 겪지는 못했으나, 그 암흑 같던 시절을 버텨낸 부모 세대의 헌신과 눈물을 먹고 자랐다. 그렇기에 책장을 넘기며 마주한 이름과 문장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무겁고 뜨겁게 다가왔다. 책은 을미의병부터 3·1운동, 그리고 무장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안중근, 윤봉길, 김구처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영웅들뿐만 아니라 박차정, 김상옥, 남자현 등 그동안 내 무지(無知) 속에 가려져 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까지 고루 담아낸 점이 참으로 귀하고 반가웠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자결로써 저항의 불씨를 지폈던 분들의 기록을 필사했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분노를 목숨으로 증명했던 그 결연함 앞에서, 만년필을 쥔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 뒤이어 2부의 3·1운동 기록을 따라 쓸 때는 뭉클한 감정이 차올랐다. 저항의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독립이라는 단 하나의 염원을 품고 광장으로, 거리로 나섰던 평범한 사람들의 외침이 종이 위로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했다.

 

특히 내 마음을 오랫동안 붙잡았던 것은 3부의 무장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글이다. “비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뿌리째 뽑히지 않았던 그들처럼, 이 필사의 시간이 당신의 삶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문장을 필사하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다. 서경덕 교수의 집필과 김주용 교수의 감수로 다듬어진 역사적 사료들은 현대적인 언어로 재구성되어 있어, 칠십 대인 내가 읽고 쓰기에도 전혀 지루하거나 딱딱하지 않았다. 해설은 친절했고, 문장들은 유려하면서도 단단했다.

 

나이가 들면 삶이 달관의 경지에 이를 줄 알았으나, 여전히 사소한 일에 마음이 흔들리고 몸의 쇠락에 쓸쓸해지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을 펴고 한 자 한 자 영웅들의 글을 필사하는 시간만큼은 나를 둘러싼 모든 불안과 잡념이 사라졌다. 자식들에게, 혹은 조국에 남긴 그들의 마지막 편지를 받아 적으며 과연 나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기록장이 아니다.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영웅들의 고결한 기운을 빌려, 흔들리는 나의 황혼기를 조용히 붙잡아 주는 강력한 성찰의 도구다. 돋보기를 고쳐 쓰고 책상 앞에 앉아 보낸 그 필사의 시간은 내 삶의 지탱점이 되어주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거친 비바람에도 흔들릴지언정 결코 뽑히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졌던 영웅들의 단단한 영혼을 손끝으로 배우며, 나 역시 남은 생을 더 깊고 의연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삶의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동년배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이 묵직한 필사의 여정을 기꺼이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