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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품위 있게 이혼할 수 있습니다 - 천 번의 이별을 지켜본 변호사가 꼭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박상희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을 넘긴 나이가 되면 주변에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 세대에게 이혼이란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할 거대한 허물이자, 인생 전체의 실패를 뜻하는 낙인이었다. “참는 것이 미덕”이라며 참고 살았던 세월이 미련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머리에 희끗희끗한 서리가 내린 뒤인 경우가 많다.
박상희 저자의 <당신도 품위 있게 이혼할 수 있습니다>를 읽으며, 나는 비로소 우리 세대가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잔인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혼을 부추기는 책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가장 어두운 벼랑 끝에서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과 존엄을 지켜낼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생존 지침서다.

한국 사회, 특히 노년층에게 이혼은 여전히 숨겨야 할 치부다. 자식들 혼사에 해가 될까 봐, 혹은 이 나이에 무슨 유세를 떨겠냐며 불행한 결혼 생활을 억지로 이어가는 동년배들을 자주 본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평생을 일궈온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젊은 날의 이혼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진통이라면, 황혼의 이혼은 생존 그 자체와 직결되는 현실이다. 제대로 된 법률적 대비 없이 감정에 치우쳐 재판장에 서는 것은, 평생을 바쳐 가꾼 가정을 허무하게 연기 속으로 날려버리는 것과 같다. 수천 건의 이별을 목격한 가사 전문 변호사의 조언이 노년의 눈에도 서슬 퍼렇게 와 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위자료와 재산 분할, 양육권이라는 냉혹한 법적 현실을 가감 없이 들추어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평생을 가정주부로 살아온 이들의 가사 노동 가치를 법적으로 증명해내는 지점이다. 우리 세대의 수많은 여성들은 밖에서 돈을 벌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정 내에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주눅 들어 살았다. 책은 그 세월이 결코 무가치한 것이 아니며, 법적으로 엄연히 인정받아야 할 삶의 지분임을 명확히 짚어준다. 이는 단순히 돈 몇 푼을 더 받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한 인간이 살아온 역사와 노동의 가치를 국가의 법 테두리 안에서 당당하게 복원해내는 과정이다.

또한 소송 과정에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전략을 다룬 부분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법정 다툼이 시작되면 오랜 시간 부부였던 이들이 서로를 향해 가장 추악한 칼날을 겨누기 마련이다. 저자는 그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법률적, 심리적 기준점을 제시한다. 평생을 살아오며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싸움이든 끝이 좋아야 그 사람의 인품이 증명된다는 사실이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품격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불행에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은 시간이 적기에 그 불행은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이혼 판결문은 인생 실패의 성적표가 아니라, 남은 삶이라도 온전히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용기 내어 쟁취한 ‘독립 선언서’라는 저자의 말은 마음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겨울이 지나면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봄이 오듯, 불행한 관계의 종말 뒤에는 반드시 자신만의 봄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위로는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책은 단순히 갈라설 결심을 한 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에 내 가정이 과연 건강한지,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기도 하다. 백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 남은 수십 년의 세월을 고통 속에서 방치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직무유기다. 관계의 끝자락에서 홀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동년배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지켜보는 자녀들이 있다면 이 책을 조용히 건네고 싶다. 당당하게 이별을 준비하는 일은, 결국 내 삶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가장 고결한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