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글쓰기 -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몹시 친절한 서평 가이드
나민애 지음 / 서울문화사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고개를 넘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니 세상 보는 눈은 깊어졌을지 몰라도, 막상 그 깊이를 글로 옮기려 하면 펜 끝이 무겁기만 하다. 평생 수많은 책을 읽어왔고, 이제는 시간적 여유도 생겨 읽은 책에 대한 흔적을 남겨보려 하지만, 하얀 종이 앞에서 마주하는 막막함은 젊은 시절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책은 읽었는데, 왜 한 줄도 못 쓸까?’라는 이 책의 문구는 마치 내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 따끔했다. 서울대 나민애 교수가 13년간 학생들의 글을 고쳐주며 쌓은 내공을 담았다는 이 책은, 글쓰기의 문턱에서 서성이던 나 같은 노년의 독자에게 다정한 지팡이가 되어준다.

 

우선 이 책이 가장 먼저 정리해 준 것은 독후감서평의 경계였다. 그동안 내가 써온 글들이 단순히 느꼈다좋았다에 머물렀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저자는 서평을 감상문이 아니라 책에 대한 분석과 판단, 평가를 담은 공부와 글쓰기의 접점으로 규정한다. 돌이켜보면 내 삶 자체가 수많은 선택과 평가의 연속이었는데, 왜 유독 책 앞에서만은 주관적인 감상에 매몰되었던가. 서평은 콘텐츠를 이해한 뒤에 오는 세 번째 단계라는 저자의 말은, 읽기가 단순히 활자를 삼키는 행위가 아니라 비판적 사유를 통해 내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서평의 체급을 나누어 접근하라는 조언이다. 우리는 흔히 글을 쓴다고 하면 대단한 비평가라도 된 듯 거창한 문장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민애 교수는 한 줄 리뷰나 블로그용 짧은 글부터 시작해 보라고 권한다. 욕심을 내려놓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글쓰기의 목적과 길이를 먼저 정하라는 말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글쓰기를 대하던 나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다.

 

70대의 글쓰기가 반드시 장엄한 회고록일 필요는 없다. 오늘 읽은 책 한 권에서 발견한 문장 하나에 내 생각을 덧붙이는 100자 평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한다.

 

책은 읽기, 이해하기, 쓰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다룬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멋진 문장력이 아니라 자기 글쓰기의 목적을 아는 일이다. 나 역시 지역 사회에서 운영위원회 감사나 마을 대표직을 맡으며 공적인 문서를 다룰 일이 종종 있었지만, 정작 나 자신의 사유를 정리하는 법에는 소홀했다.

 

이 책은 복잡한 작법론 대신 가장 쉬운 언어로 서평의 본질을 설명한다. 이는 마치 잘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곁에서 조용히 길을 안내해 주는 친절한 안내자 같다.

 

인생의 후반전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뽐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 시대의 기록인 책을 통해 나는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증명하는 행위다. 저자가 말하는 서평도 다 같은 서평이 아니다라는 현실 감각은, 노년의 독자가 자신의 호흡에 맞춰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비록 눈은 침침해지고 손은 떨릴지언정, 머릿속을 스쳐 가는 수많은 생각의 편린들을 붙잡아 글로 박제하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이 책 덕분에 이제는 책장을 덮고 나서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보다, 짧게라도 내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이 더 길어질 듯하다. 잘 쓰려는 욕심보다 정직하게 평가하려는 마음, 그리고 나만의 체급에 맞는 글쓰기를 시작하는 법.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이제는 두려움 없이 종이 위에 첫 문장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읽는 인간에서 쓰는 인간으로 나아가는 그 길목에서, 이 책은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