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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술 - 인간관계를 변화시키고 마음을 읽는 10가지 대화법
정정숙 지음 / 행복플러스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평생을 살면서 참 많은 말을 쏟아내면서 살았다. 자식들을 키울 때는 훈계라는 이름으로, 일터에서는 효율이라는 명목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정(情)이라는 핑계로 수많은 문장을 허공에 뿌렸다. 그런데 고희를 넘긴 지금, 문득 뒤를 돌아보니 정작 내 마음이 상대에게 온전히 닿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말은 넘쳐나는데 마음은 겉도는 시대, 정정숙의 <대화의 기술>은 나처럼 ‘살 만큼 살았다’고 자부하는 노년층에게 오히려 더 매서운 죽비소리로 다가온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 참 성격 좋아, 대화가 잘 통해”라고 말하며 소통을 타고난 성품의 문제로 치부하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말이 안 통하는 건 상대방의 성격이 모나서거나, 내가 부족해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대화를 ‘연마해야 할 생존 기술’로 재정의한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40년간 연구해 검증했다는 10가지 기술은 대화가 단순한 ‘말하기’가 아닌, 고도로 훈련된 ‘공감의 메커니즘’임을 일깨워준다.

70대에게 이 지점은 매우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내가 살아보니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내 경험이 정답이라 믿기에 상대의 말을 가로막고 결론부터 내리려 한다. 하지만 책은 말한다. 진실한 대화는 내 지혜를 뽐내는 자리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여는 기술이라고.

책을 읽으며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던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가족들이 나와 대화하기를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자식들은 명절에 찾아와 안부를 묻지만, 정작 속 깊은 고민은 꺼내지 않는다. 손주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질문에 단답형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나는 그게 세대 차이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내가 그들의 마음을 ‘경청’하기보다는 내 식대로 ‘해석’하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들이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경청, 표현, 갈등 해결의 단계들은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구체적인 이정표가 된다. 특히 ‘공감’이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읽어주고 내 감정을 건강하게 전달하는 과정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10가지 기술 중 노년의 삶에 가장 절실한 것은 ‘표현과 용서’였다. 우리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데 인색한 세대다. “말 안 해도 다 알겠지”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켜켜이 쌓인 오해와 갈등의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어야 한다.
내 주장을 멈추고 상대의 침묵 뒤에 숨은 의도를 듣는 법, “너는 왜 그러니?”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느껴진다”라고 내 마음을 전달하는 법,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재판관이 아니라, 함께 길을 찾는 동반자가 되는 법, 이 기술들은 40년의 연구 결과답게 매우 체계적이다. 막연하게 “착하게 말해라”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날 아내와 자식들에게 던졌던 날 선 말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 이 기술들을 알았더라면, 조금 더 따뜻한 가장이자 아버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생의 황혼기에 무슨 대화를 새로 배우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은 생을 외로운 섬으로 남지 않으려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말이 통하는 어른’으로 남으려면 대화의 기술은 반드시 익혀야 할 마지막 숙제와 같다.
이 책은 단순한 처세술 교본이 아니다. 상처 입은 관계를 치유하고, 메마른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 생명수와 같다. 자식들의 전화를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전화를 걸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법. 그 해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은 나처럼 ‘대화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모든 동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인생의 지침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