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이렇게 책을 읽었더라면
장경철 지음 / 생각지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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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을 넘기고 나면 세상의 속도가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손안의 기계 하나로 세상 모든 지식을 찰나에 불러내고,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두툼한 책 한 권을 단 몇 줄로 요약해주는 시절이다. 나 역시 매주 칼럼을 쓰고 글을 만지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내가 들이는 이 시간이 시대에 뒤떨어진 고집은 아닌지 자문하곤 했다. 그러다 장경철 교수의 <진작 이렇게 책을 읽었더라면>을 만났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오랜만에 안도했고, 동시에 기분 좋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저자는 무작정 많이 읽는 것이 독서의 목표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이는 다독(多讀)을 미덕으로 알고 자란 우리 세대에게는 일종의 죽비소리와 같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책이 내 눈을 스쳐 지나갔던가. 그러나 그중 내 뼈가 되고 살이 되어 남은 문장은 몇이나 될까. 저자는 지식의 수집보다 중요한 것이 보존활용이라 말한다. 클릭 한 번으로 얻은 요약본은 편리하지만, 그것은 남이 씹어 넘긴 음식을 구경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작 내 삶을 지탱할 영양분은 내가 직접 문장을 씹고, 맛보고, 소화하는 과정에서만 만들어진다는 본질을 이 책은 다정하게 일깨워준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 왜 다시 책 읽기인가를 묻는 대목에서 깊은 공감을 표한다. 요즘 사람들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답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와의 대화이자, 동시에 나 자신과의 치열한 문답이다. 기승전결의 흐름을 따라가며 행간에 숨은 의미를 찾는 고통스러운 즐거움, 그 사유의 과정이야말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지적 특권이다. AI가 답을 내놓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 답이 내 가슴을 울리고 삶의 태도를 바꾸기까지는 긴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를 발효라고 표현했는데, 참으로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공부의 목적을 진정한 자신이 되는 과정으로 정의한 대목에서는 잠시 읽기를 멈추고 창밖을 보았다. 평생을 경쟁과 성취를 위해 달려온 우리 세대에게 공부는 때로 고역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공부를 통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지적 주권을 회복하라고 권한다. 이는 나이 칠십이 넘어서도 여전히 유효한 과제다. 아니, 어쩌면 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이야말로 타인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보폭으로 사유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단순히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잃어버린 사유의 즐거움을 되찾아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반복하고 축적하며 내 안에 단단한 생각의 기둥을 세우는 법을 배우다 보면, 100권을 읽고도 공허했던 마음이 한 권의 제대로 된 읽기로 채워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자녀들에게, 혹은 손주들에게 공부해라라는 말 대신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왜 배워야 하는지, 왜 느리게 읽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만큼 큰 선물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 나부터 이 책의 조언대로 다시금 책장을 펼칠 생각이다. 이제는 많이 읽으려 욕심내지 않으련다. 잘근잘근 씹어 내 것으로 소화하며, 내 남은 생이 조금 더 깊게 발효되기를 기다리는 그런 독서를 이어가고 싶다. 진작 이렇게 책을 읽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글을 쓰는 노년의 갈증을 씻어준 이 책은, 지식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자 단단한 지팡이다. 나만의 단단한 생각을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삶의 본질을 놓치고 싶지 않은 동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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