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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만큼은 끝까지 읽어 보겠습니다 - 책의 첫 장만 무한 반복하는 사람을 위한 책
임희영 지음 / 북스고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평생을 살며 수없이 많은 책을 만났다. 젊은 시절에는 지식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중년에는 삶의 정답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책장을 넘겼다. 서재에 꽂힌 수백 권의 책은 때로 나의 긍지였으나, 어떤 날은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덮어버린 ‘숙제’들의 무덤 같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남아돌아 책 속에 파묻혀 살 줄 알았건만, 웬걸. 침침해진 눈과 짧아진 집중력은 책 한 권을 끝까지 완독하는 일을 갈수록 높은 산처럼 느끼게 한다.
그런 와중에 만난 임희영의 <이 책만큼은 끝까지 읽어 보겠습니다>는 제목부터가 도발적이고도 다정하다. “끝까지 읽어 보겠다”는 다짐을 내걸었지만, 정작 속살을 들여다보면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다”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역설적인 위로가 가득하다. 기업 독서 모임을 이끌며 ‘책을 못 읽어 죄송하다’는 고백을 숱하게 들었다는 저자의 이력 덕분인지, 문장마다 독자를 향한 배려와 현장감이 묻어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독서를 ‘고결한 수행’의 영역에서 ‘즐거운 놀이’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는 점이다. 우리는 보통 독서라고 하면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필사 도구를 챙기고, 고전의 심오한 뜻을 파헤치는 우아한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독서 근육이 없는데 너무 무거운 바벨을 들려 하지 말라고. 이는 비단 젊은 세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눈이 피로하고 잡념이 많아진 우리 세대에게도 “단 한 페이지라도 넘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은 가슴 벅찬 해방감을 준다.
저자는 완독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사실 그렇다. 우리 인생도 완벽하게 계획대로 끝맺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책 또한 마찬가지다. 앞부분 몇 장에서 마음을 울리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면, 그 책은 이미 제 소임을 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억지로 마지막 장까지 눈을 비비며 가는 것보다, 그 한 문장을 곱씹으며 산책 한 번 하는 것이 삶에는 더 이롭다. 이 책은 책 앞에서 느끼는 ‘부채감’을 ‘자존감’으로 바꾸는 법을 아주 세밀하게 짚어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독서를 ‘프레임’의 문제로 바라본 지점이다. ‘나는 책과 맞지 않아’ 혹은 ‘나는 이제 집중력이 떨어져서 안 돼’라는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서 걸어 나오라고 독려한다. 굳은 결심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마치 동네 친구를 만나러 나가듯 책을 집어 드는 태도. 그것이 지속 가능한 독서의 핵심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서평을 쓰는 지금도 내 곁에는 읽다 만 책들이 수북하다. 예전 같았으면 ‘이것도 못 읽었네’ 하며 혀를 찼겠지만, 이제는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다시 펼치겠지’ 하며 느긋하게 웃어 넘긴다. 임희영 저자가 건네는 언어는 투박하지 않고 정교하며,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곁에서 같이 걷는다. “그냥 같이 읽어요”라는 말 한마디가 백 마디 독서 권장 표어보다 힘이 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불필요한 힘을 빼가는 과정이다. 독서 역시 그래야 한다. 힘을 주고 읽는 독서는 노동이지만, 힘을 빼고 즐기는 독서는 휴식이다. 이 책은 책을 사랑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했던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과 같다.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생각한다. ‘그래, 이번 달엔 이 책 한 권을 기분 좋게 여행하듯 다 읽었구나.’ 하지만 설령 다 읽지 못했더라도 서운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과 조금 더 친해졌다는 사실, 그리고 책 앞에서 조금 더 솔직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니까. 책읽기가 버거워진 동년배들에게, 그리고 일상에 치여 책을 놓아버린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정도면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작은 용기가 당신의 가슴 속에서 피어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