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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다시 이름을 찾다
추성은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평생을 살다 보니 인생은 결국 ‘상실’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을 적엔 무언가를 얻고 채우는 것에 혈안이 되어 살았지만, 이제는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내 몸의 기운도 예전 같지 않음을 매일같이 확인하며 산다. 그런 내게 추성은의 <나오미, 다시 이름을 찾다>는 단순한 성경 해석서를 넘어, 내 지난 세월의 상처를 가만히 어루만져 주는 손길 같았다.
우리는 그동안 룻기를 보아스와 룻의 로맨스, 혹은 다윗 가문의 족보 이야기로만 소비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화려한 결과물 뒤에 가려진 한 여인, ‘나오미’의 심연을 파고든다. 남편과 두 아들을 타지에서 잃고 빈손으로 돌아와 “나를 나오미(기쁨)라 부르지 말고 마라(쓴맛)라 부르라”고 일갈하던 그녀의 외침이 내 가슴을 쳤다.

나 역시 살면서 이름 대신 직함이나 역할로 불리며 살았다.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버지, 혹은 어느 교회의 목사로. 그러다 그 역할들이 하나씩 수명을 다해 떨어져 나갈 때, 나 또한 스스로를 ‘쓴맛’이라 규정하며 골방으로 숨어들고 싶었던 적이 왜 없었겠는가. 자신의 고통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이름을 바꿔 부를 수밖에 없었던 나오미의 처절함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년의 고독과 묘하게 닮아 있다.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의 ‘고엘’ 제도나 ‘수혼’ 제도를 딱딱한 법률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메마른 제도 안에서 어떻게 ‘헤세드(변함없는 사랑)’가 발현되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방 여인 룻의 헌신과 보아스의 책임감은 단순히 도덕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너진 한 인간, 즉 나오미의 존재를 다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세밀한 연출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회복이란 결코 혼자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룻이라는 며느리가 곁을 지켰고, 보아스라는 인물이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듯, 우리 삶에도 보이지 않는 ‘헤세드’가 작동하고 있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 세월 내가 겪은 수많은 상실 속에서도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묵묵한 희생과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이 있었기 때문임을 70이 되어서야 비로소 겸허히 고백하게 된다.

이 책의 중반부에서 저자는 묻는다. “지금 어떤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고 있는가? 아직도 마라인가?” 이 질문은 내게 서늘한 각성을 주었다. 자식들 다 키워 보내고,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병마와 싸우며 우리 노년 세대는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 혹은 ‘잊혀진 사람’으로 규정하기 쉽다. 하지만 성경은 나오미의 실패한 인생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셨다.
나오미가 다시 기쁨을 회복했을 때, 그녀는 단순히 손주를 얻은 할머니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다윗의 계보를 잇는 거대한 구속사의 당당한 주역이 되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의 상황이 당신의 이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포기한 그 ‘마라’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나오미’로 부르고 계신다고 말이다.

이 책은 유려한 문장 뒤에 단단한 용기를 숨기고 있다. 룻기를 여성의 시선으로, 특히 고통받는 단독자의 시선으로 읽어낸 저자의 통찰은 탁월하다. 70대의 눈으로 본 이 책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존재 회복의 보고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마라’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비록 육신은 쇠잔해지고 손에 쥔 것은 줄어들었을지언정, 내 존재의 근원은 여전히 ‘기쁨’ 안에 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과거로 자신을 정의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리고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은 모든 ‘나오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당신은 여전히 귀하고,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