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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안지 않는 연습 - 나를 소모하지 않는 마음 수업
마스노 슌묘 지음, 한성례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우리 세대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마도 “참고 견뎌라”,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그리고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말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쉼 없이 달렸다. 그런데 고희(古稀)를 넘기고 보니, 그토록 소중히 지키려 했던 ‘좋은 사람’이라는 껍데기가 사실은 나를 가장 옥죄는 감옥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마스노 슌묘 스님의 《혼자 떠안지 않는 연습》은 바로 그 지점, 즉 ‘나’를 잃어버린 채 완벽을 연기하며 살아온 우리 세대에게 던지는 따뜻한 죽비와 같다.
저자는 불교의 ‘제법무아(諸法無我)’를 핵심 키워드로 제시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 단순한 진리가, 왜 나이가 들수록 더 깊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고, 자식들을 건사하며, 공동체의 규칙을 준수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청하는 것’은 곧 나약함이자 무책임의 증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스님은 말한다. 타인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태도이자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시작이라고 말이다.

특히 ‘좋은 사람이기를 그만두면 인생이 가벼워진다’는 문장은 가슴 깊은 곳을 찌른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 ‘괜찮은 척’하며 살아왔는가. 속으로는 골병이 들어도 겉으로는 인자한 어른, 책임감 있는 리더, 너그러운 배우자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이 보내는 비명 소리는 외면했다. 타인의 평가라는 잣대에 나를 맞추려다 보니, 내 삶의 주권은 늘 외부에 있었다. 이제는 그 굴레를 벗어던져야 할 때다. 내가 조금 부족해도, 때로는 남에게 손을 내밀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 빈틈을 통해 진실한 소통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혼자 떠안지 않는 연습’은 노년의 삶을 설계하는 데 있어 매우 구체적인 지침이 된다. 노후의 존엄은 모든 것을 홀로 완벽하게 해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도움을 기쁘게 요청하고 또 타인의 요청에 기쁘게 응답하는 ‘상호 의존’의 관계망 속에서 완성된다. 시설이나 제도가 주는 서비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완벽하게 버티는 것보다 적절하게 기대는 것이 훨씬 더 단단한 일상을 만든다는 저자의 통찰은, 고집스러운 노년이 아닌 유연한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다.

이 책은 단순히 ‘대충 살자’는 위로가 아니다. 내면의 강박을 직시하고, 그것이 허상임을 깨달아 본연의 나로 돌아가라는 수행의 권유에 가깝다. ‘제법무아’의 관점에서 보면, 나라는 존재는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그러니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고 끙끙대기보다, 마음의 빗장을 풀고 곁에 있는 이들과 짐을 나누어 드는 것이 자연의 섭리에도 맞다.

책장을 덮으며 창밖의 풍경을 본다. 꼿꼿하게 서 있으려 애쓰는 나무보다, 바람에 몸을 맡기며 흔들리는 나무가 더 오래 살아남는 법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재산이 아니라 ‘혼자 떠안지 않겠다’는 용기다.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벗고, 그저 ‘나’로서 가볍게 걷고 싶은 모든 동년배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비로소 인생이 가벼워지는 경이로운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가벼워진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뒷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