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사진 - 사진의 오래된 미래
김경훈 지음 / 북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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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손주 녀석들의 돌잔치나 가족 여행지에서 필름 한 통을 아껴가며 신중히 버튼을 누르던 그 감각은 우리 세대에게 기억을 박제하는경건한 의식과도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참 묘하게 돌아간다. 카메라를 들지도 않고 명령어 몇 줄만 입력하면 실물보다 더 진짜 같은 사진이 툭 튀어나오는 인공지능 시대가 된 것이다.

 

70 평생을 기록으로서의 사진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이제 사람이 찍는 사진이 무슨 소용인가하는 서글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이터 통신의 베테랑 사진기자 김경훈이 쓴 <AI 시대의 사진>은 그런 나의 노파심을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게 다독여주었다.

 

이 책은 19세기 사진의 발명 당시, 화가 폴 들라로슈가 내뱉은 회화는 죽었다라는 유명한 탄식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회화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이 재현을 담당해준 덕분에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 아닌,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그리는 현대 미술의 길을 열었다.

 

저자는 바로 이 대목에서 AI 시대를 살아가는 사진가(혹은 사진을 취미로 하는 우리들)의 희망을 찾는다. AI가 인간보다 더 정교하고 매끈한 이미지를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사진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실 그대로를 담는 것이상의 가치, 즉 인간의 시선과 철학이 담긴 사진의 가치가 더욱 귀해지는 시점이 왔음을 시사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사진 잘 찍는 법을 구도나 조명 같은 기술적 수치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저자는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흔히 상을 받은 사진이나 SNS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는 사진을 좋은 사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진짜 좋은 사진은 사진을 찍는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사진이라고. 70대에 접어들어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가장 소중한 사진은 화보 같은 풍경 사진이 아니다. 초점이 조금 빗나갔더라도 당시 내가 느꼈던 공기와 사랑하는 이의 표정이 고스란히 담긴, ‘나만의 진실이 담긴 사진들이다. AI는 데이터의 통계로 완벽한 이미지를 만들 순 있지만, 내가 그 순간 왜 셔터를 눌렀는지에 대한 이유는 만들지 못한다.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무기를 조명한다. 그것은 바로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 존재의 증명이다. AI는 수백만 장의 사진을 학습해 전쟁터의 비극이나 평화로운 들판을 흉내 낼 수 있지만, 실제로 그 뜨거운 태양 아래서 땀 흘리고 눈물 흘리며 셔터를 누르는 행위의 가치는 흉내 낼 수 없다.

 

이 책은 사진을 단순히 결과물로 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방식으로 정의한다. 20세기의 관점으로 사진을 바라보는 습관을 버리고, 이제는 내가 본 세상과 내가 느낀 무언가를 기록하는 도구로서 사진을 재정의하라는 저자의 조언은 노년의 독자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이 책을 덮으며 내 낡은 스마트폰 카메라와 장롱 속의 구식 카메라를 다시 보게 되었다. AI가 아무리 기막힌 이미지를 쏟아낸들, 내가 손주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떨리는 손으로 남긴 그 한 장의 기록보다 소중할 순 없다.

 

이 책은 단순히 사진 이론서가 아니다. 기술의 파도 속에서 인간의 고유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철학서에 가깝다. “이제 사진은 끝났다고 절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불순물이 제거된 순수한 인간의 시선이 더 빛날 시대가 온 것이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지고 기동력이 떨어져도, 세상을 향한 나만의 따뜻한 시선이 살아있는 한 나의 출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좋은 사진이란 결국 좋은 삶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AI 시대, 사진의 가치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특히 인생의 황혼기에 사진이라는 취미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벗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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