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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3국 + 폴란드 자유여행 - 지금, 플릭스버스로 떠나는
박승우 지음 / 덕주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니 이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젊은 날의 여행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 같았다면, 일흔을 넘긴 지금의 여행은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처럼 느긋해야 제맛이다. 남들 다 가는 명소를 도장 찍듯 돌아다니는 패키지여행은 이제 몸도 마음도 버겁다. 버스에 실려 다니며 가이드의 깃발만 쫓다 보면, 내가 그 땅의 흙을 밟은 것인지 아니면 창밖의 풍경만 훔쳐본 것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많다. 그런 나에게 박승우의 <발트 3국+폴란드 자유여행>은 참으로 반가운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이 책은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폴란드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담고 있다. 사실 우리 세대에게 이 지역들은 조금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 낯설음은 이내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아픈 역사를 견뎌낸 단단한 삶의 향기로 바뀐다.

저자가 추천하는 ‘플릭스버스’를 이용한 여행법은 무릎이 예전 같지 않은 노년의 여행자에게도 꽤 솔깃한 제안이다. 복잡한 기차역을 헤매거나 낯선 땅에서 운전대를 잡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면서도, 내가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여행은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준다. 누군가에게는 역사와 지식을 읽으며 정보를 쌓아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도시의 야경보다는 그 땅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폴란드의 아픈 역사와 발트해의 고요한 풍경은 마치 우리네 인생의 굴곡을 닮았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다시 세워진 바르샤바의 거리나 중세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탈린의 골목길을 상상해보라. 그곳에서 나는 젊은 시절 바쁘게 사느라 놓쳐버린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서두를 필요 없이, 다리가 아프면 노천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성당이 있으면 한참을 머물며 기도를 올려도 좋을 일이다.

이 책의 장점은 단순히 ‘어디를 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플릭스버스 터미널이 도심에 위치해 동선이 편리하다는 실용적인 정보부터, 도시마다 가진 고유의 정취를 어떻게 즐길 것인지에 대한 다정한 조언이 담겨 있다. 70대라는 나이는 새로운 도전에 겁이 나기도 하는 나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깊이 있게 세상을 감상할 수 있는 눈을 가진 나이이기도 하다. 이 책은 ‘자유 여행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준다.

책을 덮으며 나는 이미 상상 속에서 초록색 플릭스버스에 몸을 싣고 리가의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발트해의 낙조를 보며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이제는 완벽한 계획보다는 여백이 있는 여행을 꿈꾼다. 모르는 길에서 길을 잃어도 그 또한 여행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그 여유를 실현하게 해줄 좋은 지도를 만난 기분이다.
황혼의 길목에서 아직 가슴속에 작은 설렘이 남아있는 동년배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은 접어두고, 플릭스버스가 선사하는 느릿한 자유를 누려보길 바란다. 발트해의 바람은 우리에게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고, 여행은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