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의 집 정원 구경 - 사적인 정원 16곳에서 배우는 가드닝 노하우
박희영(양평서정이네) 지음, 박원순 감수 / 클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랜 전원생활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평창군 용평면 속사리에 전원주택을 마련했다. 평생 목회생활을 하던 내가 약 200평 규모의 대지에 주택을 짓고 자투리 땅에 정원을 만들었다. 조성된 정원은 단순히 감상하는 정원이 아니라, 직접 나무와 화초를 심고 가꾸고 있다.
이 책은 2012년 양평에 작은 집을 짓고 생긴 마당에 식물을 심기 시작하면서 정원 가꾸기의 매력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흙을 만지고 식물을 돌보는 시간은 삶의 방향을 조용히 바꾸어 놓은 박희영(양평서정이네) 가드닝 크리에이터가 담장 너머의 소박한 풍경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기록이다. 저자가 양평의 전원생활 속에서 만난 이웃들의 정원과 그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우리에게 ‘정원을 가꾼다는 것’이 단순히 꽃과 나무를 심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숭고한 과정임을 깨닫게 한다.

책의 제목인 ‘남의 집 정원구경’은 매우 겸손하다. 내 정원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정성껏 가꾼 공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는 타인의 정원을 구경하며 그 집 주인만의 취향과 고집, 그리고 세월의 흔적을 발견한다. 70년의 세월을 지나오며 수많은 인연을 맺어온 우리 세대에게, 이러한 관찰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태도는, 인생의 완숙기에 접어든 이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품격 있는 시선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원을 돌보면서 정원은 인간의 욕심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씨앗이 발아하기를 기다리고, 가뭄과 장마를 견뎌내며 피어난 꽃들을 보며 ‘순응’의 미학을 배운다. 텃밭을 가꾸거나 자연 속에서 산책을 즐기시는 분들에게, 식물들이 보여주는 기다림의 미학은 큰 위로가 된다. 서두르지 않아도 계절은 오고, 정성을 들인 만큼 대지는 반드시 응답한다는 진리는 조급함을 내려놓게 한다. 인생의 사계절 중 겨울을 준비하며 봄을 꿈꾸는 우리 세대에게, 저자가 전하는 “정원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든든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저자가 구경하는 정원들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담장을 낮추고 꽃향기를 나누며 이웃과 소통하는 창구가 된다. 모종을 나누고, 꽃 이름을 가르쳐주며 쌓아가는 정은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마을의 온기’를 떠올리게 한다.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며 이웃의 안녕을 살피는 분들에게, 정원을 매개로 한 이러한 교류는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고 삶의 활기를 더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다가온다. 남의 집 정원을 구경하다 시작된 대화가 평생의 친구를 만드는 기적이 이 책 속에는 가득하다.

저자는 완벽한 정원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때로는 이름 모를 들풀과 잡초에서도 생명의 경이로움을 발견한다. 걷기 운동을 하며 길가에 핀 흔한 야생화에 눈길을 주는 어르신들에게, 저자의 문장은 “당신이 마주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사실은 잘 가꾸어진 정원과 같다”고 속삭여준다. 화려한 수입 꽃보다 내 땅의 기운을 먹고 자란 소박한 토종 꽃에 더 마음이 가는 저자의 감수성은, 우리 세대가 지닌 소박하고 단단한 삶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나에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꽃이 피어 있느냐”고 말이다. 저자는 정원을 가꾸는 일이 결국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임을 보여준다. 책장을 넘기며 만나는 싱그러운 초록의 풍경들은 지친 심신을 정화하고, 다시금 내일의 해를 맞이할 에너지를 준다.
인생의 후반전을 맑고 향기롭게 가꾸고 싶은 모든 동년배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꼭 넓은 마당이 없어도 괜찮다. 창가의 화분 하나, 혹은 매일 걷는 산책길의 풍경을 정성껏 ‘구경’하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훌륭한 정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