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 - 두 번째 까미노, 포르투갈 길을 걷다
이윤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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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평생 한 번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길 위에서 그대를 본다, 또 다른 나를 본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 왔던가. 남은 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산티아고 순례를 결심한다는 의미는 잠시 멈춤이자 내려놓음이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라고 생각했던 역할과 직무·직위로부터의 해방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내 본연의 모습과 마주하며 천년 물든 길을 걷는 거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길을 걷는다는 의미는, ‘라는 진면목을 발견하고 내 안의 빛을 밝히기 위함이다. 단순한 걷기 행위를 넘어 그것과 하나 되는 경지에 이르러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과 명예교수 이윤 저자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후 자신의 까칠함을 내려놓고 세상과 신(), 그리고 자기 자신과 화해해가는 과정을 담은 뜨거운 자기 고백록이다.



 

[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는 제목에서부터 묘한 동질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칠순의 나이에 한 번도 가기 힘든 그 거친 길을 왜 다시찾아갔을까? 저자는 스스로를 까칠한 할매라고 부른다. 이 까칠함은 성격이 모나서라기보다,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내며 자신을 지켜온 방어기제이자 세상을 향한 정직한 태도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70대의 시선에서 볼 때, 저자가 느끼는 육체적 한계와 마음의 번뇌는 남의 일 같지 않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800km를 걷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은, 사실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강한 생의 의지이자, 과거의 상처와 아쉬움을 털어버리려는 거룩한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이미 한 번 다녀온 길을 다시 걷는다는 것은, 결과보다 과정그 자체에 집중하겠다는 결단이다. 첫 번째 여행이 완주라는 목표를 향한 질주였다면, 두 번째 여정은 길가에 핀 야생화의 이름에 귀를 기울이고, 곁에서 걷는 낯선 순례자의 눈빛을 살피는 여유의 시간이다. 저자는 같은 길 위에서도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은혜를 발견한다. 이는 은퇴 후 매일 같은 길을 산책하고 걷기 운동을 하시는 어르신들에게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지혜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순례길은 고통의 길이다. 저자는 삐걱거리는 무릎과 발바닥의 물집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하지만 그 고통은 역설적이게도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신호가 된다. 육체의 통증이 극에 달할 때 비로소 마음의 빗장이 풀리고, 켜켜이 쌓인 원망과 미련이 눈물과 함께 씻겨 내려간다. 저자가 길 위에서 만나는 성당과 노을, 그리고 국적을 초월한 인연들은 모두 하늘이 예비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이 책의 장점은 저자가 길의 끝에서 마주하는 자기 긍정이다. ‘까칠한 할매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던 연약하고도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을 발견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완주를 통해 대단한 성공을 얻었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신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임을 고백한다. 70년의 세월을 묵묵히 걸어온 우리 세대에게 이 고백은 당신도 충분히 잘 살아왔다는 따뜻한 격려가 되어 가슴을 적신다.




 

이 책은 나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느냐고 말이다. 저자는 신발 끈을 다시 묶으며 말한다. 인생이라는 길은 죽는 날까지 계속되는 순례이며,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더 지혜로워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이다.

 

평소 걷기를 좋아하고 신앙 안에서 평안을 찾으려 노력하시는 동년배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길동무가 될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오늘 내가 걷는 이 길 또한 산티아고의 순례길 못지않은 거룩한 길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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