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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숲 - 세상을 바꾼 인문학 33선
송용구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오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손에 쥐고 있는 성과보다 가슴 속의 허기가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먹고사는 일에 치여 잠시 잊고 살았던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들이 노년의 문턱에서 다시금 고개를 든다.
이 책은 현재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교양과 전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문학적 사고력과 논리적 글쓰기 능력을 배양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송용구 저자가 고전부터 근현대 철학까지 인류가 쌓아온 방대한 지식의 숲을 안내하고 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삶의 통찰을 우리네 일상과 연결한다. 이 책은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벗과 나누는 깊은 대화와 같다. 젊은 시절엔 그저 어렵게만 느껴졌던 철학자들의 고뇌가, 산전수전 다 겪은 지금에야 비로소 “아, 그때 그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는 무릎을 치는 공감으로 다가온다.
이 책에는 괴테, 릴케, 헤르만 헤세 등 우리가 젊은 시절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음 직한 대문호들의 사유가 울창한 숲처럼 펼쳐진다. 70대가 되어 다시 마주하는 그들의 문장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무게로 가슴에 박힌다. 젊은 날엔 그저 화려한 수사로만 보였던 시 구절들이, 이제는 내가 살아낸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을 대변해 주는 거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문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가 겪은 상실과 고독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나직이 소삭인다.
나이가 들고 보니 몸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도 찾아온다.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들을 독립시킨 뒤 찾아오는 빈 둥지 증후군은 70대 삶의 피할 수 없는 손님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문학이 고통을 없애주는 약은 아니지만, 그 고통을 ‘해석하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상실을 ‘비워냄’으로, 고독을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치환하는 인문학적 사고방식은 노년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이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비로소 자기를 완성한다”는 구절을 읽으며, 지난날의 아픔들이 내 인격의 무늬가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은 이 책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70대 노인들은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진정한 소통은 ‘가르침’이 아닌 ‘이해와 공감’에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다양한 인문학적 서사들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내 고집과 경험만을 앞세우기보다, 인문학의 숲에서 배운 넓은 마음으로 타인의 서사를 들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어른의 품격’임을 일깨워준다.
지혜로운 노년은 늙지 않고 익어갈 뿐이다. 이 책 <인문학의 숲>은 우리가 여전히 성장할 수 있는 존재임을,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인문학적 서사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숲길을 산책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덧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단단한 용기와 즐거움이 생겨나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배움의 즐거움을 잊지 않는 동년배들에게, 그리고 인생의 무게에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손주들과 나누는 대화의 깊이가 달라지고,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자비가 서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