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인생의 수읽기 - 반상 위의 전략으로 삶의 불확실성을 돌파하다
이세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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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서 둘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의 171승으로 우주의 원자수(10의 81승)보다 많다고 알려져있다. 전략적인 계산 게임이 아닌 모양과 흐름, 기세 같은 비정량적 요소에서 인간의 창의성과 감각이 열리는 철학적 놀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바둑은 오랫동안 인공지능이 넘기 힘든 인간의 최후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러던 2016년, 전투적이고 창의적인 천재 기사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할 수 있다는 쇼크와 그럼에도 인간의 창의성은 여전히 통한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창의적인 인간을 대표한 이세돌의 통찰과 세계관을 그대로 담은 《이세돌, 인생의 수읽기》


특히 알파고와의 대국 후, 자세한 내막과 심경을 처음으로 공개한 챕터가 흥미진진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국 당시의 압박과 긴장감이 생생하게 전해져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패배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아 자신감 넘쳤던 1국, 3국까지 연달아 패하며 그 여파는 고스란히 충격과 초조함이 되었지만 그 속에서도 이세돌 특유의 긍정 마인드와 가족 간의 사랑으로 최선을 다했던 그였다.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버티며 4국에서 신의 한 수라 불리는 78수를 두며 1승을 거둔다.


이 78수에 대한 이세돌의 생각은 의외였다.
"나 역시 매번 최선의 수를 두지는 못했다.
알파고와 치른 4국에서 내가 둔 78수가 대표적이다.
그 수는 '신의 한 수'로 불리며 극찬 받았지만 사실은
알파고의 약점을 찌른, 말 그대로 버그를 유도한 수였다.
승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적 수였을 뿐
최선의 수라할 수 없다.
그것이 바둑의 본질과 닿아 있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 49면


이세돌에게 '최선의 수'란 무리를 감수하더라도 흐름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수였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그림이 이어지는 마음으로 수를 놓는 것이다. 그것이 그만의 세계였고, 한 판의 대국 결과보다 장기적으로 그의 세계가 발전하길 기대하는 그만의 묘수였다. 그에게 바둑은 예술이었다.


하지만 알파고와의 대국은 승부를 넘어 흐름과 조화 속에서 상대와 함께 한 판의 우주를 완성하는 바둑일 수 없었다. 협력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닌 기계를 상대로 한 바둑이었기에 이세돌은 예술로서의 바둑을 펼칠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모든 최선을 다했던 그의 바둑은 예술가로서의 자기다운 바둑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역사에 각인시킨 인간 이세돌의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바둑판을 넘어
인생 위에 나만의 수를 둬야 할 때다.

정해진 답은 없고,
누구도 대신 둘 수 없다.
돌고 돌아도 가장 나다운 수를 찾아가는 것,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많은 책을 리뷰하며 수많은 목소리를 들어왔지만 대부분의 메시지는 거의 맞다고 판단했다. 나의 비판력이 특히 약한 탓도 있지만 수년에서 수십 년간의 끈질긴 탐구 끝에 내놓은 각자의 의견은 틀리기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각 목소리는 서로 상충하기 쉬웠고 모두가 맞으면서 항상 옳을 수 없는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흔들리기 십상이었다.


이세돌이 말한 "나만의 수, 나다운 수"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정답으로 통용될 해답이 아닐까. 답은 맥락에 따른 결과다. 고정된 절대 해답은 없다. 같은 수라도 상황에 따라 악수일 수도, 신의 수일 수도 있다. 맥락이 달라지면 답과 의미도 달라진다. '나'라는 맥락에 반응해, 내가 나로 남아 내가 한 선택이라는 설렘과 끝까지 내가 책임질 것이라는 의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바둑은 누구 탓을 할 수 없는 게임이다.
한 수 한 수는 전부
돌을 둔 나에게서 비롯된다."
- 66면

이 책은 이세돌의 바둑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나만의 수를 두는 삶”을 묻는 하나의 질문이었다. 매 순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수를 두는 것. 그것이 결국 인생이라는 대국에서 내가 남길 수 있는 단 하나의 해답일 것이다. 돌 하나에도 체면과 책임이 있듯, 내 삶의 선택에도 무게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두는 수는 얼마나 나다운가? 정답은 없다. 다만 끝까지 책임질 ‘나의 수’를 찾아갈 뿐이다.


#도서지원 #이세돌인생의수읽기 #이세돌 #데블스플랜 #알파고 #인생전략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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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낯선 바다에서 가장 나다워졌다
허가윤 지음 / 부크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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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이자 배우인 허가윤에서
발리에서 Gaga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두 번째 인생의 주인공 허가윤이
에세이 작가로 나타났다.


포미닛의 메인보컬로 데뷔한 허가윤은 7년을 포미닛으로 쉬는 날도 없이 치열하게 달리며 꿈같았던 시간을 지나 보낸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삶을 바꾸는 계기가 다가왔다.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폭식증, 불면증...
무기력에 빠져 있던 어느 날, 포미닛 멤버 지윤의 제안에 발리로 6일간 여행을 가게 된다. 발리는 그녀에게 전에 없던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주었고 그렇게 두 달 살기를 위해 다시 발리로 떠난다.


"두 달 살기를 끝내고, 나는 확신이 들었다.
나의 행복은 발리에 있다고.
발리에서 새롭게 잘 살아 보고 싶다고 말이다.
오래 생각하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발리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 58면


지금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터를 잡고 매일을 현재와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놓아두고, 그저 오늘과 내일이, 자신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하며 행복하게 말이다.


스스로 삶의 전환점이 되는 선택을 한 사람이라니, 저자는 나와 전혀 다른 유형의 인간일 줄 알았다.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실행력 만랩으로 인생을 사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사람 말이다. 하지만 《가장 낯선 바다에서 가장 나다워졌다》를 통해 본 그녀의 모습은 의외였다.


무엇이든 혼자서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혼자 국내 여행도, 혼밥도, 혼자 카페에 가본 적도 없었다. 배우 오디션에서 가수로서의 이미지보다 조용한 성격이란 말을 들으며 그 간극 사이에서 괴로워하기도 했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자신에게만 엄격해 스스로를 옥죄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내 모습도 조금씩 비쳐 보였다. 저자는 어떻게 이런 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가족의 상실은 내일이 당연히 있을 거라는 믿음을 무너뜨려 오늘의 행복을 미루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만들고, 그것이 불씨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세상과 자신 사이에 선을 긋고 거리를 둔 건 그녀의 선택이었다.


성공한 가수로서의 성과와 타인의 기대라는 사회적 시선을 걷어내고 '허가윤'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 다른 무대를 찾아 나선 건 자신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감수할 각오를 하고 불행한 확실성보다 불확실한 가능성을 택한 것은 자신을 믿는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도 그녀처럼 나만의 발리를 찾고 싶다. 내가 아는 내가 아닌 것처럼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곳. 역할이 아닌 존재로, 성과가 아닌 일상의 내 모습 그대로를 봐주는 곳. 부족함이 결격 사유가 아니라 나만의 색깔이 되는 곳.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로운 인생으로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오늘 하루를 기대하게 하는 곳.


하지만 다시 보니 그녀가 찾은 건 단지 발리라는 장소가 아니라 존재 방식이 바뀌는 환경이었다.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이 있고, 나의 취향과 감각을 알아보는 관계가 있으며, 켜켜이 쌓아온 나만의 리듬과 태도가 살아나는 곳이었다.


저자처럼 모든 것을 두고 머나먼 곳으로 떠나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 곳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사실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발리에서 보낸 시간과 경험들 덕분에 틀에 박힌 관념들이 많이 흔들렸다.


작은 용기를 낸다면 그녀처럼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증명해준 이 책이 좋다. 인생엔 당연한 것이 없다는 걸, 새로운 변화는 언제 어디서든 찾아올 수 있고, 때로는 당장 내일 나 자신이 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조금 더 믿게 됐다.


"국화처럼 살아라.
씨가 바람에 날려 여기서 피고 저기서 피는 국화처럼.
어디에서 어떤 색으로 필지 모르는
생명력 강하고 향기로운 국화처럼 살아라."
그녀가 가슴 깊이 간직한 어떤 스님의 말씀처럼
이 책과,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자신만의 발리에서
가장 나다워지는 행복을 누리며 꽃 피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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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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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 알게 됐지만 지금은 작가로 더 익숙한 유시민.
정치적 성향은 뒤에 두고, 한 사람이 어떤 책으로 그만의 사유를 구축했는지 일필휘지의 글쟁이가 걸어온 독서의 역사가 궁금해 이 책을 펼쳤다.


《청춘의 독서》는 젊은 날의 독서를 다시 펼쳐 자신의 변화 과정을 추적한다. 고전을 빌린 자기성찰의 회고록이자 고백록이다. 도스토옙스키부터 맹자, 다윈, 밀에 이르기까지 15권의 고전을 통해 “무엇을 믿었고, 왜 바뀌었는가”를 보여준다.


글은 역시 유려했다. 정치철학을 축으로 사상과 역사, 경제를 자유자재로 엮고 날카로운 논증까지 더한다. 배경지식이 없는 나는 저자의 경지를 따라가기가 버거웠지만 다양한 책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어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청춘의 독서》가 중립적이라 말하긴 어렵다. 정치적 입장은 배제하고 청춘의 독서를 즐기고 싶었던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꽤나 아쉬운 일이다. 문학적으로 공감하다가도 정치인 유시민을 만났다. 책 선정과 배치에서 이미 정해진 프레이밍이 작동하는 것 같았다. <공산당 선언>이나 E. H. 카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특히 현재의 정치 프레임으로 텍스트를 해석하는 태도가 보였다. 고전으로 현재의 신념을 공고하게 증명하는 흐름은 이 책을 사상적 자서전처럼 읽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보수주의자에게 권하고 싶다. 저자는 자타공인 노련한 토론자다. 그의 지적 지도를 함께 걸으며 자기 신념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논지에 빠져보는 경험은 '우리 편이 맞다'는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게 한다. 다른 길을 걷는 동안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고 시야의 균형이 잡힌다. 반대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연성이 자신의 주장에 뚫린 논리의 빈틈을 메우는 유용한 방법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았다. 정직한 용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본 풍경을 눈치 보지 않고 드러낸다. 오독을 스스로 교정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준. 질문을 세우고, 고전을 호출하고, 현실에 대입해 입장을 분명히 하는 태도에서 프로의 자세를 배운다.


저자가 소개한 책 중 <맹자>가 가장 인상 깊었다. 맹자가 위대한 사상가로 대접받기까지 1,50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니 그는 얼마나 앞서간 성인이었던가. 저자는 맹자를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다시 읽는다.


고유의 전통과 문화와 가치관을 지키려는 보수주의자 맹자는 공동체의 질서를 중시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는 효제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전국시대의 전란 속에서 가족을 해하면서까지 권력을 지킨 위정자들 앞에서도 단호하게 효를 앞세우고,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 인의예지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설득했다.


"내가 남을 사랑해도 남이 나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인자한 마음이 넉넉했는지 되돌아보고,
내가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것이며,
예로 사람을 대해도 나에게 답례를 하지 않으면
공경하는 마음이 충분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고도 성과를 얻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바르다면 온 천하 사람이
다 내게로 귀의할 것이다."
- <이루 상> 4

"맹자는 내면의 힘으로 빛을 내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의 보수주의는 불편하지만,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호연지기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맹자는, 좌절마저도 아름다웠던, 진정한 보수주의자였다.
대장부였다. 나는 그것을 알고 나서야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 136면


책을 덮고 나면 묻게 된다. 내 생각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 논거는 어디에서 왔는가. 저자의 탄탄한 사유를 함께 걸으며, 내가 딛고 선 기반은 과연 굳건한지 점검하고 싶어졌다. 늘 중립의 회색지대를 선호하던 내가 의도적으로 한편에 기울어 보는 경험을 해본 것도 의미 있었다.


좋은 독서는 합의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은 반대를 가능하게 한다. 이 책이 정확히 그런 공간이 되어주었다. 저자가 읽은 책들을 언젠간 나만의 관점으로 읽고 다시 이 책을 열어보고 싶다. 그때는 저자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을까. 더 가까워졌을지 멀어졌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도서지원 #청춘의독서 #여름휴가책추천 #웅진지식하우스 #유시민 #세상을바꾼위험하고위대한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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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뎀 이론 - 인생이 ‘나’로 충만해지는 내버려두기의 기술
멜 로빈스 지음, 윤효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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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하루를 망치는가?
왜 교통체증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는가?
왜 중요한 일을 하던 중에 누군가 방해하면 힘들어지는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이 짜증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족들의 조언이 인신공격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쁜 길에서 다른 사람의 느린 걸음이 왜 당신을 서두르게 하는가?

- 80면



이 문장을 읽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다. 《렛뎀 이론》의 저자 멜 로빈스는 '놀랍게도 인생은 스트레스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엉망진창 같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다. "그 일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일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타인이나 상황을 통제하려는 것 말이다. 통제욕은 인간의 본능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우리는 마치 많은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살지만 실상은 자신의 마음 하나조차 원하는 대로 다루지 못한다.


"렛뎀 이론"은 냅둬, 내버려두라(Let Them)는 의미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 바로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위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내버려두자는 제안이다.


내버려두기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반응이다. 특히 타인이 나를 부정적으로 볼까 봐 걱정하는 것을 멈추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그들은 이미 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서도 비판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남편과 자녀에 대해 못마땅한 점들이 있지 않은가. 남편에 관해 나쁜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짜증 나는 행동 방식이 있지만 동시에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 남들이 나의 일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들이 그렇게 나를 판단하도록 내버려두라. 다른 사람에 관해 걱정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지켜낸 나의 에너지를 내게 중요한 것들에 쏟자.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힘이 생긴다." (89면)
남들의 감정은 내버려두고,
통제할 수 있는 단 하나에 집중하자.
그 단 하나는 바로 당신 자신이다.


"내가 하기 (Let Me)"
렛뎀이 전반부라면, 후반부는 렛미다.
남들을 내버려두라고 혼자 고립된 채 살라는 말이 아니다. 그다음 내가 할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힘을 쏟는 것이다. 태도, 가치관, 필요, 욕구,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한 반응. 내가 하기는 자기 인식, 공감, 권한 개인의 책임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렛뎀 이론의 진정한 힘이다. 내버려두고 내가 하는 것.


"다른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가도록 허용할수록
당신의 삶도 더 좋아질 것이다.
통제하기를 더 많이 포기할수록 더 많이 얻을 것이다."
- 66면



렛뎀과 렛미가 하나라는 사실이 좋았다. 조각 기법 중 "양각"과 닮아있었다. 그림이나 글자가 도드라지도록 배경 부분을 깎아내는 과정이 렛뎀 같았다. 통제할 수 없지만 에너지와 시간을 갉아먹는 영역들을 깎아내다보면 '진짜 나'와 내 '인생의 문양'이 입체감을 띄며 선명해지는 것이다. 음각에 비해 시간도 비용도 힘도 몇 배가 더 요구되지만 이것이야말로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는 자만이 가꿀 수 있는 진짜 삶이 아닐까 싶다.


⁠무엇을 통제하고 무엇을 통과시킬 것인가.
렛뎀은 말한다. 네가 짊어질 짐이 아닌 것은 내버려두라.
렛미는 말한다. 여기서부터는 네 권한이니 이제는 행동하자.


일상에서 부딪히며 그 둘 사이를 현명하게 구분하고 무의미한 통제를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진짜 나다운 선택이 또렷해지고 내가 도드라질 것이다. 타인을 바꾸려는 무모한 에너지를 걷어내면 남는 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단 하나,
지금의 나일 것이다.


#도서지원 #렛뎀이론가제본서평단 #렛뎀이론 #멜로빈스 #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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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는 항상 상훈이 형이 있다 - 영화가 인생을 삼켜버린 한 남자 이야기
한상훈 지음 / 불란서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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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유령에 홀린 한 남자의 이야기
30년간 강박 장애로 고통받으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자신을 유령으로 바라보게 된 남자. 그에게 영화는 자신만의 시선이자 언어요, 좁고 광활한 세상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다른 차원을 사는 괴짜는 아니다. 그에게 내가 겹쳐졌고 곧 깊은 친밀함을 느꼈다.


저자 한상훈은 1997년부터 지금까지 8천 편이 넘는 영화를 보았다. 말 그대로 '영화 빼면 시체'인, 영화에 미친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하나에 일생을 바칠 줄 아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 황홀하고도 지난한 여정에 멱살 잡혀 끌려가면서도 누구보다 주체적으로 나아간 자들. 설명할 순 없지만 그들에게선 특유의 파동이 선명하다. 그 무엇도 흔들 수 없을 것 같은 중심이 뿌리박혀 있다. 어마무시한 시간을 등에 업고 있기에 누구든 그들을 감히 흉내 낼 수 없다.


상훈이형에게도 그런 아우라가 비친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얻고 싶었던 사랑을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나는 영화에 대한 짝사랑을 통해서라도 그 결핍을 채우려고 했다."라고 고백한다. 사람들과 주고받을 수 없어 갈 곳 잃은 사랑을 저자는 영화라는 세상에서 씨앗과 물, 공기와 햇볕으로 쏟아부었다. 영화는 사람만큼 상처 주지 않았고 그에게 행복을 되돌려주었다. 몇 번의 기적까지 선물했다.


영화를 향한 이 맹렬한 짝사랑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저자의 용기에 참 감사했다. 영화와 상훈이형, 단둘만의 내밀한 30년 역사를 책 한 권으로 누릴 수 있다니 대단한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그의 삶과 영화 이야기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제자리만 맴돈 줄 알았지만 항상 삶으로 향했던 갈망을 품고,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낸 걸음에서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러자 책의 문장들은 내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목소리가 되었다. "프레임의 가장자리, 화면 구도의 후경, 스치는 행인"으로 살아오면서도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 고독하지만 끝까지 혼자 커온 마음들이 만져졌다.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계속 글을 써왔던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문장에서도 내가 보였다.


상훈이형의 영화적 시선이 무척 탐난다. 영화라는 어휘를 이렇게나 넘치도록 쌓아둔 사람이라면 영화 한 편에서 얼마나 깨알 같은 메타포와 기쁨을 숱하게 발견할까! 넓고 멀리 보는 메타인지와 집요하게 파고드는 통찰이 동시에 작동하며, 그 모든 요소들이 하나로 연결되고 구축되는 경지일 테니 말이다.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보듯, 영화로 모든 것을 투사할 것만 같은 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어 즐거웠다.


상훈이형은 영화로부터 받지 못한 답장을 독자에게 받게 되지 않을까. 이 리뷰 또한 결핍을 채우기 위한 본능적인 사랑을 해온 그에게 그 사랑이 어떤 건지 아는 독자가 부치는 편지이니 말이다. 삶과 영화가 불가분의 관계이듯, 저자가 세상에 내놓은 시선과 목소리도 독자의 반응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영화를 통해 자신을 말했고, 독자는 그 말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돌아본다. 저자가 던진 감정과 장면은 독자 안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번져 돌아오니, 두 세계는 그렇게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완성된다.


상훈이형이 소개해 준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를 봤다. 처음 봤지만 상훈이형 덕분에 두세 번을 본 것처럼 숨은 의미들이 눈에 들어와 나 역시 경탄하며 즐겼다. 친해지고 싶은 상훈이형이다. 그가 영화에서 건져 올린 장면들이 나를 울먹이게 하고 웃음 짓게 했듯, 이 리뷰가 그에게 작은 힘으로 전해지는 엉뚱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어떻게 되든 괜찮다. 이 마음을 건넨 순간 혹시 모를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꿈꿀 수 있게 되어 설렌다. 내가 만든 이 프레임 속에서 상훈이형은 유령이 아닌 누구보다도 진솔하고 뜨거운 사람으로 투명하게 살고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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