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는 항상 상훈이 형이 있다 - 영화가 인생을 삼켜버린 한 남자 이야기
한상훈 지음 / 불란서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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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유령에 홀린 한 남자의 이야기
30년간 강박 장애로 고통받으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자신을 유령으로 바라보게 된 남자. 그에게 영화는 자신만의 시선이자 언어요, 좁고 광활한 세상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다른 차원을 사는 괴짜는 아니다. 그에게 내가 겹쳐졌고 곧 깊은 친밀함을 느꼈다.


저자 한상훈은 1997년부터 지금까지 8천 편이 넘는 영화를 보았다. 말 그대로 '영화 빼면 시체'인, 영화에 미친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하나에 일생을 바칠 줄 아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 황홀하고도 지난한 여정에 멱살 잡혀 끌려가면서도 누구보다 주체적으로 나아간 자들. 설명할 순 없지만 그들에게선 특유의 파동이 선명하다. 그 무엇도 흔들 수 없을 것 같은 중심이 뿌리박혀 있다. 어마무시한 시간을 등에 업고 있기에 누구든 그들을 감히 흉내 낼 수 없다.


상훈이형에게도 그런 아우라가 비친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얻고 싶었던 사랑을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나는 영화에 대한 짝사랑을 통해서라도 그 결핍을 채우려고 했다."라고 고백한다. 사람들과 주고받을 수 없어 갈 곳 잃은 사랑을 저자는 영화라는 세상에서 씨앗과 물, 공기와 햇볕으로 쏟아부었다. 영화는 사람만큼 상처 주지 않았고 그에게 행복을 되돌려주었다. 몇 번의 기적까지 선물했다.


영화를 향한 이 맹렬한 짝사랑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저자의 용기에 참 감사했다. 영화와 상훈이형, 단둘만의 내밀한 30년 역사를 책 한 권으로 누릴 수 있다니 대단한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그의 삶과 영화 이야기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제자리만 맴돈 줄 알았지만 항상 삶으로 향했던 갈망을 품고,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낸 걸음에서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러자 책의 문장들은 내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목소리가 되었다. "프레임의 가장자리, 화면 구도의 후경, 스치는 행인"으로 살아오면서도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 고독하지만 끝까지 혼자 커온 마음들이 만져졌다.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계속 글을 써왔던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문장에서도 내가 보였다.


상훈이형의 영화적 시선이 무척 탐난다. 영화라는 어휘를 이렇게나 넘치도록 쌓아둔 사람이라면 영화 한 편에서 얼마나 깨알 같은 메타포와 기쁨을 숱하게 발견할까! 넓고 멀리 보는 메타인지와 집요하게 파고드는 통찰이 동시에 작동하며, 그 모든 요소들이 하나로 연결되고 구축되는 경지일 테니 말이다.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보듯, 영화로 모든 것을 투사할 것만 같은 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어 즐거웠다.


상훈이형은 영화로부터 받지 못한 답장을 독자에게 받게 되지 않을까. 이 리뷰 또한 결핍을 채우기 위한 본능적인 사랑을 해온 그에게 그 사랑이 어떤 건지 아는 독자가 부치는 편지이니 말이다. 삶과 영화가 불가분의 관계이듯, 저자가 세상에 내놓은 시선과 목소리도 독자의 반응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영화를 통해 자신을 말했고, 독자는 그 말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돌아본다. 저자가 던진 감정과 장면은 독자 안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번져 돌아오니, 두 세계는 그렇게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완성된다.


상훈이형이 소개해 준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를 봤다. 처음 봤지만 상훈이형 덕분에 두세 번을 본 것처럼 숨은 의미들이 눈에 들어와 나 역시 경탄하며 즐겼다. 친해지고 싶은 상훈이형이다. 그가 영화에서 건져 올린 장면들이 나를 울먹이게 하고 웃음 짓게 했듯, 이 리뷰가 그에게 작은 힘으로 전해지는 엉뚱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어떻게 되든 괜찮다. 이 마음을 건넨 순간 혹시 모를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꿈꿀 수 있게 되어 설렌다. 내가 만든 이 프레임 속에서 상훈이형은 유령이 아닌 누구보다도 진솔하고 뜨거운 사람으로 투명하게 살고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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