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 경이롭고 유쾌한 파동의 과학 ㅣ 관찰자 시리즈
개빈 프레터피니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5년 7월
평점 :
이 책은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로 알려진 개빈 프테러피니의 파도 관찰기다.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저자를 따라 간 여정은 쉽지 않았다. "파동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가 원제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세상의 온갖 파동을 탐구한다. 그야말로 세상은 파동 더하기 파동, 파동 곱하기 파동이었다. 해변의 파도는 물론, 몸속의 심장 박동과 뇌파, 소리의 음향파, 정보화 시대를 떠받치는 전자기파, 세상에 색을 입히는 광파, 땅의 지진파, 그리고 군중 속 경기장의 파도타기와 도로 위의 교통 체증까지. 세상에 파동이 아닌 것은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다.
덕분에 이 책은 방대한 영역을 넘나든다. 물리학, 기상학, 지구과학과 지질학, 생물학과 의학, 기술공학, 심리학과 인지과학까지 물리적 파동을 설명하고 이것을 감지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감각까지 다룬다. 세상과 인간을 신나게 활보하는 종합과학 인문서다.
머리가 지끈거릴 어려운 책 같다는 예감은 접어두라.
"경이롭고 유쾌한 파동의 과학"
무려 부제로 선택받은 문구다. 과학 덕후가 동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앉아, 수다로 풀어준 것 같은 책이다. 파동을 향한 저자의 흥이 책에서 파도처럼 내내 물결친다.
물론 배경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런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우리는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즐거운 독서를 하는 중이니. ^^
파동의 사전적 풀이는 "물결의 움직임"이다. 물질의 움직임이 아니다. 물결로 표출된 파동이라는 흔들림으로 에너지가 전달된 것이다. 파도로 바닷물이라는 물질이 이동한 게 아니다. 파도가 지나간 뒤 바닷물은 여전히 그 자리다. "해초는 둥실거리다 대략 같은 위치에 머무를 뿐, 물결에 쓸려가지 않았다." (14면) 에너지가 지나가며 퍼져 나가는 것이 파동이다.
파동에 관한 지식들은 정말이지 흥미로웠다.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이 보였기 때문이다.
"더 넓은 의미의 파동관찰자란
종류가 전혀 다른 파동, 즉
해변의 파도처럼 눈에 잘 보이는 파동과
소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사이에서
연결고리와 유사성을 찾는 사람이다.
세상의 파동스러운 성질은 워낙 미묘한지라
많은 사람이 전혀 모른 채로 살아가지만,
워낙 근본적이기에 일단 알아차리고 나면
어디에서나 보이기 시작한다."
- 119면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위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수많은 에너지들은 각자의 리듬을 가진 파동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 세상을 그렇게 인식하게 되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진동체처럼 흔들리는 인간, 매질로 연결된 세상, 그리고 그 사이를 따라 퍼지는 에너지, 사랑. 마치 현악기의 줄에서 시작된 떨림이 공기를 타고 음악이 되어 퍼지듯, 우리는 그렇게 흔들리고, 연결되고, 사랑으로 전해진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전달하도록 설계된 거대한 파동 구조 같았다. 이것이 파동의 렌즈를 비춰 내가 해석해 본 세상이다.
"꽃을 아는 원숭이가,
슬픔과 기쁨을 꽃으로 노래할 줄 아는 원숭이가
인간이 된 것이지요.
황홀한 눈으로 꽃을 바라보았을 때
그 향기로 숨을 쉬었을 때
비로소 그 짐승의 가슴에는
인간의 피가 흘렀던 것입니다."
- 이어령
고 이어령 선생은 인간을, 사물 너머의 상징을 감지하고 표현하는 존재로 보았다. 꽃을 사물로만 보지 않고, 그리움과 향기로 느끼는 감각. 그 감각을 표출하는 순간, 원숭이는 짐승이 아닌 인간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파동을 그저 과학 지식이 아닌 세상의 언어이자 리듬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파동을 안다는 것은 세상과 인생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진동하고 있음을 느끼는 능력이며 그렇게 포착한 나만의 감각을 언어로 붙잡는 과정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아름다운 진화가 시작된 것 같다.
온 세상이 흔들리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앞으로 나는 이 끊임없는 파동에 더 자주 응답하며 살고 싶다. 나 역시 하나의 파동으로 기쁘게 흔들리며, 그렇게 더 나 다운 인간으로 노래하며 춤추고 싶다.
#도서지원 #파도관찰자를위한가이드 #개빈프레터피니 #김영사 #파도 #파동 #과학책추천 #파동학 #파동의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