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의 역습 - 인간 본성은 우리의 세상을 어떻게 형성했고, 구원할 수 있는가
하비 화이트하우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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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역습"이라는 제목에서 웅장함과 호기심을 느꼈다. 벽돌책인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을 완독하지 못해 부채감을 가지고 있던 터라, "역습"으로 인간 본성을 거꾸로 탐색한 후에 나머지를 읽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합리화하며 기대감으로 이 책을 펼쳤다.


40년 연구의 결정판
《인간 본성의 역습》은 옥스포드대 인류학과 교수인 하비 화이트하우스가 40년간 구축해온 개념을 집대성한 책이다. 그는 원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이어온 현지 연구는 물론이고 심리 실험, 학제간 연구에서 얻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집단 유산'이 인류사를 형성한 것을 발견한다.

집단 유산이란 유전자나 물질적 재산이 아니다.
생물학적 진화(직관)와 문화적 진화(전통)가 새긴 인류의 '집단적 편향성'이다. 소규모 부족에서 대규모 문명까지 인류사의 도약을 가능케 한 핵심 동력이다. 인간 본성 중에서 집단유산, 그 기본요소가 되는 세 가지 편향성을 중심으로 이 집단 유산을 탕진할 때 어떤 위험이 있는지 경고하고, 미래에 투자할 최적의 방법까지 제안한다.


세 가지 편향성
순응주의 (남 따라하기)
남을 따라 하려는 본능.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따라 한다.
이것이 유행을 만들고 사회적 규범을 형성하며,
때로는 집단 광기를 낳는다.

종교성 (초월적 가치나 의례)
보이지 않는 질서와 초자연을 신뢰하는 성향.
종교를 믿는 것을 넘어, 초월적 가치에 헌신하고
의례를 통해 공동체와 결속하려는 욕구다.

부족주의 (우리 vs 그들)
편을 나누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 헌신하는 경향.
이것이 강한 소속감과 희생정신을 만들지만,
동시에 배타성과 폭력의 씨앗이 된다.



해법은 본성 안에 있다
하지만 그 속에 해결책이 있다고 저자는 희망을 건넨다.
"인간 본성에서 우리를 파멸의 늪으로 몰아가는 특징들은
경제 상황을 개혁하고,
지구의 자원을 보존하며
협력 능력을 확대하고,
갈등을 더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인류 문명이 실질적으로 번창할 수 있는 새로운 기반을
조성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 30면


본성을 바꾸는 게 아니라 환경을 바꾸는 것, 이것이 저자가 제시하는 재설계의 핵심이다.
순응주의를 친환경 소비로
사람들은 "대부분이 하는 것"을 따라 한다. 그러니 친환경 행동이 사회적 규범처럼 보이게 만들면 된다. 연료비 청구서에 탄소 배출량을 표시하고, '제로 웨이스트 챌린지'를 벌이고, 소셜 미디어에서 지속 가능한 소비를 적극 공유하라. 영국 정부의 비행기 탄소세가 그 예다.


종교성을 지구 윤리로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성이 연대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현대적 '세속 의례'를 개발하라. 지구의 날 대규모 행사, 기업의 반복적 윤리 워크숍, 지역 커뮤니티의 환경 봉사가 그 예다. 초월적 헌신은 종교 전통 안에만 있지 않다.


부족주의를 지구적 정체성으로
집단 충성의 에너지를 편 가르기가 아닌, 인류가 하나의 부족이 되는 '테라 부족'(지구적 부족)이라는 정체성으로 전환하라. 스포츠 월드컵처럼 국경을 초월하는 공동의 목표(인류팀 vs 기후위기)를 만들고, '테라 부족' 서사를 학교와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며 가능성을 모색한다.


서로에게 배우기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었다.
저자는 서구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선진국의 풍부한 학술 연구도 중요하지만 원주민 집단의 통찰을 경시하는 것은 매우 오만한 일이라고 말한다.
강한 의례를 통한 결속이나 지속가능한 생태 관습처럼 원주민의 지혜 역시 첨단 연구 못지않게 귀중하다. 원주민의 생태 지혜, 북유럽의 복지 제도, 아시아의 공동체 문화에서 서로 배우며 모두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본성 역시 감정처럼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이분법적으로 따질 수 없다. 인간은 원래 편향적이고 집단적이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편을 가른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간 본성의 역습》은 그런 인간을 고치려 들지 않는다. 본성을 어떤 맥락에 두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묻는다. 비관이나 절망 대신 재배치와 재설계를 통해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는 전략, 이것이 진짜 '역습'이다.


나 역시 이러한 본성을 가진 인간이다. 대세에 편입하고 싶고,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며, 안전을 위해 내 편을 따진다. 나쁘게만 여겼던 특징들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일상에서 현명하게 활용하도록 맥락을 살펴야겠다. 자기 이해의 프레임을 넓히고 지구를 하나의 부족으로 보는 관점과 겸손을 가르쳐 준 책, 《인간 본성의 역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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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 - 잘못된 의학은 어떻게 우리를 병들게 하는가
마티 마카리 지음, 김성훈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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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 마카리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


마케팅을 위해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을 거란 의심을 하며 책을 펼쳤다. 하지만 읽을수록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었구나,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의학계의 집단사고와 권위주의가 어떻게 잘못된 관행으로 뿌리내렸는지, 어떻게 환자를 죽이는지 수많은 사례들을 소개한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리는 진단과 처방은 과학이라는 이름의 절대적 권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충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당신의 의사가 틀렸다면? 그 오류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의학계 전체가 수십 년간 공유해온 '집단적 맹점' 때문이라면?"


2002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의학 저널에 호르몬 대체 요법(HRT)이 유방암 위험을 26%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언론은 대서특필했고, 의사들은 즉각 처방을 중단했다. 갱년기 증상으로 고통받던 수십만 여성들이 약을 끊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연구자들이 강조한 '26% 증가'는 상대위험도였고, 실제 절대위험도는 고작 0.08%에 불과했다. 1만 명 중 8명이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공포는 이미 퍼진 뒤였다. 저자는 잘못된 해석으로 HRT를 중단한 여성들 중 약 14만 명이 심혈관 질환과 골다공증으로 조기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문제를 바로잡는 데는 10년 이상이 걸렸다. 왜일까? 한번 만들어진 '공식 입장'은 체면과 이해관계 때문에 쉽게 뒤집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의학계의 맹점, '권위의 관성'이다.


2000년, 미국 소아과학회는 부모들에게 지침을 내렸다. "아기가 3세가 될 때까지 땅콩을 주지 마세요." 알레르기 예방을 위한 권고였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미국에서 땅콩 알레르기 아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반면 영국과 이스라엘에서는 생후 초기부터 땅콩을 먹이는 문화가 있었고, 알레르기 발생률은 훨씬 낮았다.


면역 시스템은 조기 노출을 통해 학습되고 형성된다. 땅콩을 피하면 피할수록 몸은 그것을 '위험한 이물질'로 인식하게 된다. 땅콩 알레르기를 만든 건 의학계였다. 2017년이 되어서야 소아과학회는 정반대의 지침을 발표했다. "생후 4~6개월부터 땅콩을 안전하게 노출시키세요." 17년 동안 수많은 아이들이 불필요한 알레르기로 고통받았다.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기에 이를 바로잡는 데 이렇게나 긴 시간이 걸렸다.


저자는 이것을 '집단사고'라 부른다. 의학계 안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은 비과학적이거나 과격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동료평가 시스템은 폐쇄적이고, 기존 권위자들의 입맛에 맞는 연구만 저널에 실린다. 연구비는 정설을 강화하는 연구로 흘러간다.


이 책은 단순히 의료계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마카리는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첫째, 환자는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선 안 된다. 의사의 말을 무조건 믿기보다 질문해야 한다. "이 권고의 근거가 되는 연구는 무엇인가요?" "대안은 없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 가이드라인이 바뀐 적이 있나요? 왜 바뀌었나요?"


둘째, 세컨드 오피니언을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 특히 수술이나 장기 치료가 권고될 때는 반드시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한 명의 의사 말이 진리가 아니다. 의학은 확률의 학문이고, 같은 증상에도 여러 접근법이 있을 수 있다.


셋째, 통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의사가 "이 약이 위험을 30% 줄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게 상대위험도인지 절대위험도인지 물어야 한다. 100명 중 10명이 줄어드는 건지, 1만 명 중 3명이 줄어드는 건지에 따라 결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 책은 의료 불신을 키우는 비난이 아니라 더 나은 의료를 위한 뼈아픈 충고다. 의료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의사도 틀릴 수 있다. 저널에 실린 연구도 뒤집힐 수 있다. 정부 가이드라인도 20년 뒤에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하지만 이 진실을 아는 것이 당신을 지킨다.




수많은 의사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신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가족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의료 시스템의 혜택을 누리며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도서지원 #의사에게죽지는않는법 #마티마카리 #웅진지식하우스 #책추천 #의학서적추천 #의학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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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 성취 중독에서 지속 가능한 행복으로 가는 인생 경영 전략 20
야마구치 슈 지음, 박세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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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슈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로 이름을 알린 야마구치 슈.
이번 책에서는 "성취 중독에서 지속 가능한 행복으로 가는 인생 경영 전략 20"가지를 전해준다.


"경영학 전반의 개념과 프레임워크야말로
개인이 인생의 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 10면


그렇다. 인생 "경영" 전략이다.
이 책은 인생을 장기 프로젝트로 보고 경영학의 다양한 이론을 접목한다. 경영 전략론은 사회적 강자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누구든 이것을 삶을 경영하는 무기로 삼을 수 있도록 저자의 인생과 사례를 통해 쉽게 풀어낸 것이 강점이다.



인문학이나 철학 관련 책을 가까이 해서 그간 인생을 성찰의 대상으로만 인식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경영학적인 관점에서 전략의 차원으로 삶을 제안하는 시선이 흥미로웠다. 경영의 'ㄱ'도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각 이론들이 어렵지 않고 무척 신선했다. 생각지도 못한 관점에서 다각도로 인생을 살펴봤다. 세밀한 목차 자체가 가이드이자 '생각연습용 체크리스트'로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중 인상 깊은 내용을 몇 가지 정리했다.

1. 아리스토텔레스 인생론
마키아벨리 인생론 vs 루소 인생론
마키아벨리 인생론은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잘못된 목표가 설정됐다면 인생 프로젝트 자체가 무너질 수 있는 구조다.
루소 인생론은 성공이라는 허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답게 진정한 풍요를 추구한다. 하지만 목표는 현실적인 기반이 있어야 실현할 수 있다. 실행가능성 없는 목표로 자기의 길만을 좇는 것은 공허한 이상으로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결함을 가진다.


인생에 두 가지 선택지뿐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두 인생론의 핵심인 '목표 설정'과 '과정 설계'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인생론이다. '좋은 삶'을 위해 중용을 중시하고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조율하는 지성과 용기를 갖춘 이론이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성경의 말씀이 이에 해당한다. 뱀처럼 세상 통념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지혜와 분별력을 가지고, 비둘기처럼 지위와 돈같이 덧없는 것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자신만의 미적 감각과 윤리의식을 지키는 것이다.



⁠2. 포지셔닝 이론
"너희는 어디에 있느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씀이다. 이 원초적인 질문은 위치가 생사를 가를 만큼 중요한 요소이며, 지속적인 행복을 실현하는 데 지대한 영향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때론 능력보다 입지와 환경을 바꾸는 것이 결정적일 때가 있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안락한 포지셔닝을 확보해도 사회와 자신이 변하는 상황에서 현재 위치에 안주하면 매우 위험하다.


"사람마다 자기다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소"가 있다고 저자는 믿고 있었다. 저자도 문득 바다 근처에 살고 싶다는 직감에 따라, 몇 주 만에 이사를 간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은 시간을 쏟음으로써 훨씬 더 행복해졌다. 맨해튼 로펌에서 수십억 연봉을 받던 저자의 친구도 어느 날 애팔래치아 산맥 트레일을 떠난다. 그곳이에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구나' 확신을 얻고 환경문제를 다루는 변호사로 변신한다. "결국 다양한 장소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진정으로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기는 어렵다."


3. 행동하기
의식을 바꾸면 행동도 따라 변한다고들 하지만 뇌는 보수적으로 작동하기에 의식을 바꾸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이를 넘어서려면 행동부터 바꾸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행동을 바꾸면 결과가 달라지고, 그 결과는 다시 의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것이 변화로 가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결국 답은 명확했다.
잘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인생을 바꾼다.




인생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는 완벽한 전략이 아니라 작은 실행 하나로 시작된다.“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불확실성을 끌어안고 나답게 움직이길 원한다면, 포지션을 조금씩 옮겨 환경을 바꾸고, 오래가는 삶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서평단 #나는어떤인생을살고싶은가 #야마구치슈 #인생경영 #자기결정 #위즈덤하우스 #추천도서 #위뷰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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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매일 철학이 필요하다 - 니체, 노자, 데카르트의 생각법이 오늘 내 고민에 답이 되는 순간
피터 홀린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부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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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를 걷던 철학이 
마침내 땅으로 내려와 하는 이야기"


'지금 내 발등에 떨어진 불'에 관해
철학이 건네는 간명한 대답들!



집을 사야 할까 말까, 대출 계약서 앞에서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순간이 있다. 이직을 할까, 사업을 벌여볼까, 몇 년째 같은 자리에서 맴돌기만 하는 자신을 볼 때도 있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삶의 궤적은 이렇듯 불협화음일까. SNS 속 사람들은 다들 경쾌하게 나아가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여전히 벽에 손바닥을 짚고 멈춰 서 있을까. 


느릿느릿 꽉 막힌 퇴근길에, 잠이 달아난 고요한 새벽 어스름에, 점심을 먹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 찰나에, 삶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질문을 던진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가끔은 "힘내" 같은 흔한 말이 아니라 "생각의 구조", 즉 방향을 바로 세워줄 사고의 틀이다.



피터 홀린스의 《우리에게는 매일 철학이 필요하다》는 바로 그 사고 모델을 정리했다. 

"많은 사람이 간과하지만,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의사결정과 문제 해결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목차부터 흥미롭다. 

"집을 살지 말지 고민될 때 데카르트처럼 의심하기. 노력하는 것도 지칠 때 노자처럼 무위를 따르기. 결혼이 망설여질 때 키르케고르처럼 믿음의 도약하기"



데카르트가 부동산 대출 창구에 앉아 있고, 노자가 회사 야근 책상 앞에서 팔짱 끼고 있으며, 키르케고르가 결혼정보회사 사이트를 열어놓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일부러 선택하라고 속삭인다. 철학이 이렇게나 일상에 가까이 닿을 수 있는 것이다니. 





저자는 2500년의 철학사를 먼지 쌓인 전시장에서 끌어내린 뒤 우리의 눈앞에 올려놓는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플라톤이, 점심시간의 무기력한 우리 옆에서 칸트가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철학이란 원래 ‘그렇게’ 쓰라고 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그중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라는 개념에 한참을 머물렀다. 더하는 게 아니라 빼면서 본질로 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기이할 만큼 더하기에 집착한다. 더 공부하고, 더 준비하고, 더 많은 습관을 갖추라는 자기계발의 돌림노래를 따라 부르느라 바쁘다. 그러나 입증이 아니라 반증이 필요할 때가 있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만든 비결로 "다비드가 아닌 것은 모두 없애버렸지요"라고 답한 것처럼,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첫째가 "해를 끼치지 말 것"인 것처럼 확실히 아닌 것들을 하나씩 빼가다 보면 본질에 가까워진다. 



인생의 무게는 종종 더하기가 아니라 덜어내기의 문제다. 찰리 멍거의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장기적으로 이익을 얻는 건 똑똑해지려는 노력이 아니라, 멍청해지지 않으려는 노력 때문이다.” 투자의 귀재의 이 문장은 삶 전체를 관통한다.



돌아보면 나도 늘 ‘더하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더 좋은 책, 더 유용한 강의, 더 효율적인 루틴. 그러나 정작 삶을 갉아먹는 건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는 '잠시'의 몇 시간과 유튜브 ‘한 편만’의 반복이었다. 멍청한 선택만 줄여도 삶은 훨씬 선명해진다. 이런 단순한 진실은 언제나 참으로 명쾌하다.




이렇듯 이 책은 다양한 철학의 지도들을 차곡차곡 꺼내어 독자의 손에 쥐여준다. 문제는 하나지만 관점은 여럿이고, 관점을 바꾸면 전혀 다른 출구가 보인다. 인생의 무수한 갈림길 앞에서 "그때그때 적절히 생각의 모드를 전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멋진 책이었다.


다양한 사고 도구와 지도가 들어 있는 보물 상자 같은 책이다. 철학을 철학으로 어렵게 포장하지 않았다. 난해한 개념으로 독자의 문해력을 시험하지도 않았다. 대신 당장에 현실로 펼쳐진 문제에 될 사용법을 보여준다. 



어떤 날은 비아 네가티바로 나를 덜어내고, 어떤 날은 니체처럼 '아모르 파티'를 외치며, 다른 날은 내가 아는 세계만이 정답인 것 같을 때 플라톤처럼 동굴에서 나와보게 한다. 본질에 닿는 방식이 하나일 리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랬다. 철학은 원래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지혜가 출렁이는 세계였다. 삶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 때, 방향을 잡지 못할 때 이 책이 떠오르기를. 하늘 위를 걷던 철학이 내 옆에 내려와 나직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다시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도서지원 #우리에게는매일철학이필요하다 #피터홀린스 #부키출판사 #철학책추천 #비아네가티바 #찰리멍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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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나의 1년 2025-2026 - 질문에 답하며 기록하는 지난 1년, 다가올 1년
홍성향 지음 / 인디고(글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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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언제나 마주하고 해석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삶은, 우리 자신이 해석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줍니다."


이런 책을 뭐라 불러야 할까?
127 페이지, 작은 다이어리를 닮은 책을 펼치면
저자가 엄선했을 열린 질문들이 단정하게 앉아있다.


당신의 얘기를 들려달라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눈을 반짝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을 편하게 하는 초록빛 디자인 덕분이었을까.
처음 이 책을 손에 쥐었을 때부터, 좋았다.
한 권 가득 올라타있는 질문들이
웬일인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설렜던 것 같다.


인연은 사람 사이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자꾸 손이 가는 컵, 닳은 펜, 해진 가방에
온기가 스민 시간이 쌓여 있다.
이 책도 그런 인연이 아닐까.



지난 2025년을 돌아보는 동시에
2026년을 바라보는 숨은 마음도 만날 수 있다.
다가올 내년까지 함께 내다보며 꿈꿀 수 있어 좋았다.


QR 코드를 검색하면 저자인 라이프 코치 홍성향 선생님의 안내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따뜻하고 포근한 목소리.
고요한 밤에 혼자 라디오를 들으며
일기를 쓰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당신과 만날 시간을 비워두고 꼭 지켜주세요.
그리고 가장 '나답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보세요.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요.
그 무엇이든 일사에서 느껴온 긴장을 내려놓고,
자신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주세요."


시간과 분위기.
중요한 사람과 약속을 한다면 시간과 장소 선택에 공을 들이기 마련이다. 나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대하며 미리 시간을 떼어놓고 좋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두는 것.
과거와 미래를 향하는 마음을 들어보는 여정에
참 필요한 태도인 것 같아 인상 깊었다.


"나의 올해를 표현해주는 대표 감정은 무엇인가요?"


꼭 무언가를 이뤄야만
'의미 있는 1년'이 되는 건 아닙니다.


"연초에 나는 어떤 계획을 세웠었나요?
올해를 어떻게 보내고 싶었나요?"


"올해 내가 정성을 다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올해 내가 버릇처럼 자주 했던 말은 무엇인가요?
그 말을 할 때 나의 마음은 어땠나요?
그 말은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단순히 한 해를 정리해보는 차원이 아니라
내가 전혀 돌보지 못했던 틈 속에 아주 작은 나까지도
발견하게 하는 질문들이 좋았다. 크고 작게, 넓고도 세심하게 구석구석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질문들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았다.
숨은 보물찾기를 하듯 조금은 신났던 것도 같다.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쓰느라 글씨는 날아갔지만
그 안에 소복이 쌓여가는 내 마음들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ㅋㅋㅋ
ㅎㅎㅎ
혼자 웃기도 하고
ㅠㅠ
^^;;;
자책도 하면서
꼼지락꼼지락 나와 단둘이 놀아주는 내가 좋았다.
이렇게 웃고 울며 채우는 진솔한 기록은 그저 일기가 아니라,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잇는 인연의 온기가 되어준다.


12월이 되면 싱숭생숭해진다.
지나간 한 해 속에 감사와 기쁨도 많지만 후회와 아쉬움도 크기 때문이다. 올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은 참으로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면하고 싶다.


그럴 때 무언가의 도움을 받으면 어떨까.
질문하되 재촉하지 않고, 기록하되 비판은 하지 않는 존재. 그저 나와 마주 앉아 "올해 당신은 어땠나요?"라고
다정하게 물어봐주는 친구 같은 존재.


작은 양장본을 펼쳐 한 자 한 자 써가면서 깨달았다.
삶은 이토록 다채롭게 빛나는데, 왜 바쁜 일정표 속에서 나를 잃었을까? 조금만 시간을 내어주면 무심히 지나쳤던 하루의 조각, 미처 돌보지 못했던 마음의 틈, 나조차 몰랐던 '나다운 삶'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일 년에 한 번쯤은 나와 제대로 얘기해보면 어떨까.
차근차근 손글씨로 새겨보는 마음들은 나를 나 자신에게 데려다놓는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스스로를 선명하게 바라보는 눈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부담 없이 시작해도 자꾸만 쓰게 되는 책
잠깐 펼쳤다가 오래 머물게 되는 책.


2025년이 저물어가고 2026년을 맞이하는 12월.
나를 위한 단 하나의 선물을 고른다면
바로 이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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