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인생의 수읽기 - 반상 위의 전략으로 삶의 불확실성을 돌파하다
이세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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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서 둘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의 171승으로 우주의 원자수(10의 81승)보다 많다고 알려져있다. 전략적인 계산 게임이 아닌 모양과 흐름, 기세 같은 비정량적 요소에서 인간의 창의성과 감각이 열리는 철학적 놀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바둑은 오랫동안 인공지능이 넘기 힘든 인간의 최후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러던 2016년, 전투적이고 창의적인 천재 기사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할 수 있다는 쇼크와 그럼에도 인간의 창의성은 여전히 통한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창의적인 인간을 대표한 이세돌의 통찰과 세계관을 그대로 담은 《이세돌, 인생의 수읽기》


특히 알파고와의 대국 후, 자세한 내막과 심경을 처음으로 공개한 챕터가 흥미진진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국 당시의 압박과 긴장감이 생생하게 전해져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패배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아 자신감 넘쳤던 1국, 3국까지 연달아 패하며 그 여파는 고스란히 충격과 초조함이 되었지만 그 속에서도 이세돌 특유의 긍정 마인드와 가족 간의 사랑으로 최선을 다했던 그였다.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버티며 4국에서 신의 한 수라 불리는 78수를 두며 1승을 거둔다.


이 78수에 대한 이세돌의 생각은 의외였다.
"나 역시 매번 최선의 수를 두지는 못했다.
알파고와 치른 4국에서 내가 둔 78수가 대표적이다.
그 수는 '신의 한 수'로 불리며 극찬 받았지만 사실은
알파고의 약점을 찌른, 말 그대로 버그를 유도한 수였다.
승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적 수였을 뿐
최선의 수라할 수 없다.
그것이 바둑의 본질과 닿아 있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 49면


이세돌에게 '최선의 수'란 무리를 감수하더라도 흐름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수였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그림이 이어지는 마음으로 수를 놓는 것이다. 그것이 그만의 세계였고, 한 판의 대국 결과보다 장기적으로 그의 세계가 발전하길 기대하는 그만의 묘수였다. 그에게 바둑은 예술이었다.


하지만 알파고와의 대국은 승부를 넘어 흐름과 조화 속에서 상대와 함께 한 판의 우주를 완성하는 바둑일 수 없었다. 협력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닌 기계를 상대로 한 바둑이었기에 이세돌은 예술로서의 바둑을 펼칠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모든 최선을 다했던 그의 바둑은 예술가로서의 자기다운 바둑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역사에 각인시킨 인간 이세돌의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바둑판을 넘어
인생 위에 나만의 수를 둬야 할 때다.

정해진 답은 없고,
누구도 대신 둘 수 없다.
돌고 돌아도 가장 나다운 수를 찾아가는 것,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많은 책을 리뷰하며 수많은 목소리를 들어왔지만 대부분의 메시지는 거의 맞다고 판단했다. 나의 비판력이 특히 약한 탓도 있지만 수년에서 수십 년간의 끈질긴 탐구 끝에 내놓은 각자의 의견은 틀리기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각 목소리는 서로 상충하기 쉬웠고 모두가 맞으면서 항상 옳을 수 없는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흔들리기 십상이었다.


이세돌이 말한 "나만의 수, 나다운 수"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정답으로 통용될 해답이 아닐까. 답은 맥락에 따른 결과다. 고정된 절대 해답은 없다. 같은 수라도 상황에 따라 악수일 수도, 신의 수일 수도 있다. 맥락이 달라지면 답과 의미도 달라진다. '나'라는 맥락에 반응해, 내가 나로 남아 내가 한 선택이라는 설렘과 끝까지 내가 책임질 것이라는 의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바둑은 누구 탓을 할 수 없는 게임이다.
한 수 한 수는 전부
돌을 둔 나에게서 비롯된다."
- 66면

이 책은 이세돌의 바둑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나만의 수를 두는 삶”을 묻는 하나의 질문이었다. 매 순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수를 두는 것. 그것이 결국 인생이라는 대국에서 내가 남길 수 있는 단 하나의 해답일 것이다. 돌 하나에도 체면과 책임이 있듯, 내 삶의 선택에도 무게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두는 수는 얼마나 나다운가? 정답은 없다. 다만 끝까지 책임질 ‘나의 수’를 찾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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