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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물에 춤을 바칩니다 - 상처가 꿈이 되는 특별한 순간
최보결 지음 / 미다스북스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내 심장은 중학교 첫 무용 수업의 설렘을 아직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친구들과 들뜬 마음 가득 안고 무용실에 들어서던 순간과 TV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무용 선생님의 멋진 체형과 우아한 몸짓.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용에 소질이 없음을 깨달았다. 곧잘 동작을 순서대로 기억하고 재현해 내는 친구들에 반해 나는 몇 시간이고 반복 연습해야 겨우 실기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줄곧 자유로움이라는 부분에서 언제나 춤을 동경해 왔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혹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일만 해내는 것이 아닌, 몸의 구석구석을 평소 사용하지 않던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나의 눈물에 춤을 바칩니다>는 이런 춤에 대한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니 더 나아가 춤을 통해 몸과 마음을 둘 다 치유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삶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나 자신, 몸을 바꾸는 춤을 추자. 춤은 자신 스스로를 치유하고 견고하게 한다. 그리고 변화시킨다.
현대무용을 전공한 무용학박사라는 타이틀은 나에게 저자 최보결을 어느 부잣집 딸로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고, 무용 학원은 어렵사리 15일 동안 다닌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마저도 자신의 처지를 더 실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고. 이후 운 좋게 무용과에 입학하지만 그녀는 열등감에 빠졌다. 그래서 한때 춤에서 도망치기도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춤치유가, 춤문화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열등감도 상처다. 열등감이 꿈을 방해하고 꿈을 꾸지 못하면 상처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꿈은 꿈일 뿐이라고, 꿈은 현실에서 이루어지기보다 환상 속에서 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거나 숨기며 산다. 이렇게 꿈을 가슴에 안고만 산 사람들은 그것이 상처로 남는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읽다 보니 단지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성공한 스토리인가 싶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사랑하고 선택한 춤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는 말인가 했다. 하지만 책의 요지는 그것이 아니었다. 사회적 혹은 개인적으로 가진 상처는 꼭꼭 숨기기만 하면 언젠가는 덧난다고, 그래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춤을 통해 상처를 드러내고 내면을 만나 치유받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굳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단순한 움직임 만으로도 치유할 수 있다고 말이다.
몸을 움직이면, 리듬을 타면, 춤을 추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드러내는 표현을 하면 감동까지 일어난다. 표현을 할 때 무거운 감정들, 마음의 먼지들이 날아가서 몸이 가벼워지고 기쁘다. 그래서 기쁜 몸을 경험한 나의 몸이 감동하게 된다. 그러면 감동 호르몬인 다이돌핀이 나온다.
몇몇 사례가 나와서 감동이 배가 되기도 했는데, 그중 현재 숲 해설가로 활동 중인 H 씨의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H 씨는 흔히 말하는 모범적인 여자의 삶을 살아왔다. 30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고등학교 교사로 살았단다. 남편과 한 번도 다툰 적도 없었단다. 그런데 춤의 학교에 남편과 함께 다니기 시작했고, 어느 날 수업 중에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후 시어머니 얼굴을 편안히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꿈을 꾼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럼에도 사실 의자에 붙은 내 엉덩이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마 어쩌면 이렇게 감동적으로 책을 읽으면서도 선뜻 춤을 출 생각을 못 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 저자는 영상으로 춤추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었는데, 덕분에 춤에 대한 거대한 심리적 벽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춤은 천골을 움직여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을 뿜뿜 나오게 한다는 '꼬리춤'이었는데, 유튜브를 통해 본 그 춤의 잔망스러움에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의자에 앉아서도 걸으면서도 언제든 출 수 있다는 점. 실제로 움직여보니 꽤나 몸이 편해지는 느낌도 드는 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몸을 보면 삶이 보이는 것처럼, 몸의 움직임 속에 인류의 역사가 보인다. 권력자들이 피지배자들을 지배할 때 몸을 못 움직이게 하면, 특히 골반을 잠그면 자기 고유의 느낌, 생각이 없어 말을 잘 듣게 되고 잘 길들여지고 복종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시민의 춤, 광장의 춤들이 없다. 춤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들었다. 춤은 추면 안 되는 것으로 유전자에 새겨 놓았다. 꼬리를 움직이고 천골을 움직이면 온몸이 풀리고 감각이 깨어나 리듬을 타게 된다. 생명이 흐르게 된다. 이것이 춤이 된다. 춤을 추면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깨어난 사람들이 된다.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하면 상처는 꿈이 된다.
사실 최보결이라는 이름 석 자는 어디선가 들어보긴 했었다. 무용가라고도 들었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뭔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나의 눈물에 춤을 바칩니다>를 통해 춤치유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고, 책장을 덮는 순간 책 제목이 절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춤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큰 계기가 되기도 했다.
춤은 치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게 아주 대단한 춤이 아니어도 단순한 움직임 만으로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