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블루 창비교육 성장소설 1
이희영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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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되면 대한민국 어디서나 엿이며 초코렛, 포크, 휴지. 시험 관련 물건들이 넘쳐 난다. 12년의 결실을 맺는 날. 그날을 위해 아이들은 앞만 보고 달린다. 하나의 목표로 달려가는 아이들. 그들은 그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하고 있을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잘 하는 아이대로,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대로, 예체능을 하는 아이는 예체능을 하는대로'......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 나름의 고민. 그 고민이 무엇이 되었건 그 시기에는 굉장히 큰 고민일 것이다. 지금 이 책을 덮는 나 자신도 지나 온 시간이지만 나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보면 나 또한 그들과 같은 고민의 시간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은 우리가 지나온 시간.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지나올 시간. 그 시간 속에 자신이 선택한 일이 진정 옳은가에 대한 생각으로 고민에 빠져 있는 열아홉의 소녀 '바림'을 만나 보려고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

* 한바림 :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술을 좋아해 미술을 전공( 초등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음)하려는 열아홉의 고3 여학생.

* 해미 : 바림의 유치원 시절부터 절친으로 뒤늦은 고2부터 미술을 전공하고자 입시 미술 학원을 다니는 친구.

* 강여울 : 바림의 이모. 번역을 하며 시골 경진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결혼을 앞두고 홀연히 떠나 혼자 여행을 하다 엄마의 죽음과 동시에 시골집에 안착.

* 바림의 엄마 : 세계 여행을 목표로 돈을 모아 공부방을 창업했다. 그 계기로 교육에 관심을 두게 되고 직업을 아이들 학습 교재와 놀이를 응용한 교육 자료를 만드는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책 속 이야기-

p.11

바림의 귓가에 물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어디로 가며 어떻게 흘러가는지 물은 알고 있었다.그러니 단 한 번의 머뭇거림 없이 앞을 향해 달려가는 거겠지. 쉼 없이 거침 없이......

"몰라."

아이가 툭 한마디 내뱉고는 빠르게 덧붙였다.

"물도 모른다고. 자기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냥 가는거야. 가다 보면 강이 나오고 바다도 나오지 않을까?"

몸의 70퍼센트가 수분이라는데, 그럼 인간의 삶도 그러할까? 여기저기 휩쓸려 살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 있으려나?

누구도 자신의 삶에 '그냥'을 붙이지 않는다. 진짜 '그냥'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몸의 대부분이 수분이라지만, 인간이 물처럼 사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바림은 꿈 속에서 어린시절 보았던 어렴풋한 기억의 너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녀는 거침없는 물소리를 들으며 물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궁금해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목적지는 어디가 될까를 생각해 보는데, "무의식적으로 '그냥'살지 뭐"라고 대답하는 사람조차도 '그냥' 살지는 않는다는걸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냥 물처럼 흘러 어딘가 도착하는 인간은 없다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건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p.14

생각해 보면 물은 절대 정해진 길로만 가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면 넘쳐흘렀고, 가뭄이 오면 바싹 말라 버렸다. 때로는 인간에 의해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했고, 가끔은 흘러 가지 못해 한곳에 오랫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세상에 진짜 물길이라 부를만한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반대로 물길이 아닌 곳도 없었다.

 

우리의 인생도 딱 정해진 대로만 살아가 지지 않는다.

바림의 엄마처럼 세계 여행을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계획도 짜 놓고 어학 공부도 했지만 그 돈으로 공부방을 열고, 그것을 통해 배운 것이 자신의 직업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광이나는 짙은 검은색 '램프 블랙'

p.29

학원에 갔다. 바림의 그림도, 다른 친구들의 작품도 붙어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둘 눈으로 훑으면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들었다. 자동 연필깎이처럼, 가슴에 동그란 구멍이 생긴 기분이었다. 팔레트와 물통을 들고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물감으로 얼룩진 팔레트와 물통을 닦고 또 닦았다. 물감의 흔적이 지워지면, 어지러운 마음도 차분해질 수 있을까, 답답한 미로에서 벗어나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리 자리를 청소하고 깨끗해진 팔레트에 물감을 짜 놓아도, 연필을 일일이 손으로 깎아 보아도, 어지럽게 헝클어진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했다.

p.34

2주가 지나면 그 뒤에는 학원에 돌아갈 수 있겠지. 단순한 슬럼프라면 분명 그래야 할 것이다 정말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 왔으니까, 그것밖에 더는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그림 그리기 싫어졌어요."

"인마, 학원에 아무나 붙잡고 그림 그리는 게 좋냐고 물어 봐. 다들 미친 사람 보듯 쳐다볼 걸? 그래도 어쩌냐? 힘들어도 해야지. 너는 또 어려서부터 미술 했잖아. 입시 미술이 다 그래. 지루하고 재미없는 거 나도 잘 알아. 우리 조금만 참자. 거의 다 왔으니까. 대학 가면 네가 그리고 싶은 그림 실컷 그릴 수 있으니까."

"대학 가서도 그림 그리기 싫으면요."

"그건 대학에나 붙고 고민하세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시작하자. 오늘은 집에 가서 풀 쉬어."

 

어두운 푸른 회색빛의 페인즈 그레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경진으로 가는 바림.

어린시절 그림은 좋았고 행복이었다.

P.51

내 그림을 이해 못하면 어쩌지? 고민되었지만 바림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재미있게 그렸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바림은 자신의 상상력이 꽤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반대의 세상이 되었다 . 무엇보다 주제에 집중해야 했고, 원하는 걸 마음대로 그릴 수도 없었다. 명백하게 정답이 존재하는 세계가 바로 입시미술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림은 입시 미술이 아닌 그림 자체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 허들을 넘은 뒤에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운 밑그림처럼 그 답이 보이지 않았다.

10년만에 찾은 경진 . 경진읍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주한시. 10년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철도가 놓이고 대단지 아파트와 높은 빌딩들이 들어섰고,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와 식당들이 들어왔다.

"시간은 왜 브레이크가 없나? 언제 이렇게 흘러가 버린거야?"

"시간에 브레이크는 없지만, 삶에는 정체기가 있어. 그러니까 너 그림 안된다고 너무 속상해하지마. 그 정체기만 풀리면 또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쌩쌩 달릴 수 있을 테니까."

엄마의 격려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부담으로 변해갔다.

 

윈저 바이올렛

p.74

10년이란 세월은 길었다. 하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파일을 압축하듯 가슴 깊숙이 꾹꾹 눌로 놓았을 뿐이었다. 추억은 사소한 자극만으로도 거짓말처럼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p. 75

지금껏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을 그림에 투자했다. 그만큼 남들보다 잘하는 영역이라 믿었다. 나에게 그림이란 무슨 의미일까? 정작 이 기본적인 고민을 왜 깊게 하지 않았을까?

그림에 모든 것을 올인할 자신도 없었다. 지금까지 하던 것이나 계속하지 싶은 약간의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버렸다.

p. 91

선생님들이 해미에게 감각이 있다고 한 말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학원에 잘 적응하고, 선생님들께 칭찬받으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채 그림에 집중하는 해미를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데, 누구보다 기뻐해야 하는데, 왜 괜찬 심숙과 억지를 부리는지. 바림은 짜증이 날 정도로 스스로가 유치하게만 느껴졌다.

p. 92

미술이 언제부터 재미없고 따분한 일이 되었는지 먼저 물었어야 했다. 그 물음에 답을 하기엔 고3 시작을 알리는 겨울 방학은 가야 할 대학까지 정해진 이상 너무 늦었다고 했다. 누가 그랬냐 묻는다면, 학원 선생님과 엄마, 학교 선생님과 친그들 그리고 어쩌면 바림 스스로인지도 몰랐다.

 

검은빛이 도는 푸르스름한 청색 미드나이트블루

p. 177

바림이 고개 돌려 흐르는 계곡에 시선을 두었다. 인간은 물처럼 쉽게 스며들거나,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도 없었다. 가볍게 증발하지도, 순환의 여행 끝에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무겁고 딱딱한 뼈와 살과 근육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니까. 그런데도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 건 결국 생각 때문이었다. 물처럼 유연하고 하나의 형태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무한한 상상력. 똑같은 밤하늘이라도 누군가는 어둠을 보고, 또 다른 이는 별을 볼테니까.

 

샙그린

p.194

바람이 싸늘했지만, 햇살은 부드럽고 포근했다. 계절은 늘 인간보다 반 발자국 앞서 걸었다. 봄이구나 생각하면 목덜미에 땀이 맺혔고, 언제 여름이 끝날까 싶으면 아치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었다. 바림은 인간의 삶에도 친절한 길잡이가 있기를 소망했다. 머지않아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끔찍한 더위가 찾아들테니까. 얼마 뒤면 나뭇잎이 떨어지며 가지마다 헐벗을 것이다. 비로소 긴 휴식에 들어갈 테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 얼었던 땅이 포근해지면 그때 다시 너를 흔들어 깨울 테니까. 그때까지 아무 걱정 말고 고요한 마음으로 편히 쉬어라. 자연이 나무에게 속삭이듯, 가만가만 대지를 달래듯, 인간에게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알려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에게는 누구도 명확한 길을 안내해 주지 않았다.

압생트

p. 222

10년 전 이모는 현실에서 도망친 걸까? 아니면 벗어난 것일까? 누구는 이런 이모에게 무책임하다 말했겠지. 그러나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 아닐까? 바림은 문득 이모의 용기가 부러웠다. 이것이 전부라 믿었던 스스로에게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비록 후회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그 선택이 최선이라 믿지 않았을까.

 

 


열아홉......

내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을 시기. 살아 온 시간보다 살아 갈 시간이 많은 아이. 그러나 살아 갈 시간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저당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불안한 나이. 그 나이의 아이는 불안했다. 내 마음의 소리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문득, 선생님과 바림의 대화를 엿 들으며 우리가 지금 이런 대화에 익숙해 있음에 공감했다. "그래, 그래. 니맘 알아. 그러니 조금만 참아. 다 왔어. 수능만 끝나면 니 맘대로 해"

휴~~ 그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말 끝이 나는 걸까? 내가 가는 이 길이 정말 나의 길일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맞나? 현실의 행복을 보류하며 미래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힘들고 긴 여행. 그 긴 기다림 끝에 있는 목적지는 나에게 행복이라는 주머니를 풀어 줄까? 어른은 그 시간을 지나 왔다. 그래서 이 고비를 넘기면 다음 고비는 수월하게 넘는다는 걸 나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 고비를 넘기 위해 쉼없이 달리라고 말한다. 더 높이 더 빠르게...... 하지만 그 고비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아이는 그 크기도 그 넓이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뛴다. 뛰면서 생각한다. '너무 먼 걸. 너무 힘든 걸. 조금 쉬면 안될까?' 그러나 계속해서 주위에선 '뛰어 다른 애들 뛰는데 쉬면 어떡해. 더 빨리 옆에서 뛰는 애보다 더 빨리. 이 고비 넘기면 쉴 수 있어. 그늘이 있어'라고 말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자연의 순리처럼 우리들의 삶도 어떤 것 다음엔 어떤 것이라는 정확한 답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물이 정해진 길로만 가지 않듯 우리의 인생도 정해진 길로만 갈수 없는 법.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넘쳐 흐르고, 가뭄이 오면 물이 바싹 말라 버리 듯 우리의 삶도 행복과 불행은 늘 존재하지 않을까? 물길이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가끔은 흘러 가지 못해 한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물처럼 우리도 한 순간 정체되고 힘든 시간속에 있을 수 있다.세상에 물길이라 부를만한 곳은 존재하지 않았고 반대로 물길이 아닌 곳도 없듯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또한 정확하게 목표 되어진 인생도 그리고 반대로 목표 되어지지 않은 인생도 우리의 인생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책을 덮으며 작가가 세상에 무수히 많은 색깔 중에서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를 미묘한 색 (광이나는 짙은 검은색 '램프 블랙'. 어두운 푸른 회색빛의 '페인즈 그레이'. '윈저 바이올렛'. 저녁노을이 서서히 지는 듯한 '세피아'. '카키'. 검은빛이 도는 푸르스름한 '청색미드나이트블루'. '샙그린'. 초록빛 '압생트'. '더치오렌지'. '옐로골드'.)으로 표현함이 참 좋았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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