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라인 M 1 - 한국 근현대 군사사 프로젝트 타임라인 M 1
김기윤 지음, 우용곡 외 그림 / 길찾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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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동아시아 3국은 서구의 제국주의와 ‘서구적 근대’라는 완전히 새로운 파고를 맞닥트렸습니다. 오항녕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보편적이지 않은 것을 (피로) 보편화하는 과정”이었던 서구적 근대화의 과정에서 일본은 엄청난 피를 수반하며 적응하여 제국주의 열강이 되었지만, 조선은 생존하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한 결과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1866년부터 1910년까지의 ‘구한말’로 통칭되는 역사를 열등감과 피해의식의 시대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중심주의, ‘서구적 근대’를 특권화하고 근대 이전을 ‘전근대’란 이름으로 낙인찍는 정서가 한국인의 심성에서 내면화되었고, ‘서구적 근대’의 기준에 이르지 못한 당시의 조선은 모멸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심성은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를 막론하고 당대인들에게 성행했고 지금도 그 영향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 시대에, 생존이 최우선이 되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남을 희생시켜도 상관없다는 야만이 보편화된 그런 시대에 대한 비판의식은 망각되고 식민통치를 당한 것에 대한 열등감과 오직 그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옛 사람들에 대한 혐오만 남았습니다. 지도층의 무능함과 부정부패, 옛 사상에 대한 집착이 망국에 이르게 했다는 단순화된 인식, 그리고 서구인 관찰자의 당대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만이 대다수 비전문가 대중에게 뿌리 박혔고 그 뿌리는 제거될 줄을 모릅니다. 서구인 관찰자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적 시선을 가진 이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는 사람은 얼마 없어 보이며, 역설적으로 그러한 단순화된 인식이 그들이 그렇게 혐오해 마지 않는 “유교적” 역사인식의 소산임을 아는 자들은 더욱 없어 보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결정과 인식의 배경과 전개에 대해서는 알고 이해하려는 사람은 소수 연구자 뿐, 그 외 사람들은 그러한 인식에서 헤어나오지들 못합니다. 그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고 공부하려 하는 사람은 대다수 대중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일본의 위대한 한국사학자이자 동아시아 사학자이며 ‘유교적 근대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비유를 새겨듣고 있습니다. 미야지마 교수는 ‘백지에 새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쉽지만 원래 그려진 그림을 고치는 것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유교적 근대’가 막 진행중이었던 일본의 비교적 원활한 서구적 근대 전환과 이미 ‘유교적 근대’에 도달하였고 오랫동안 정착한 청과 조선이 그러기 힘들었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미야지마 교수의 담론입니다. 미야지마 교수의 이 비유는 명쾌히, 그리고 기존의 담론보다 더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구한말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상당히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 서평에서 초점이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여하간 이 시대는 위에서 말한 전망, 학술적으로 말하면 ‘회고적 전망’의 시기입니다. 조선은 어차피 식민지로 귀결될 나라였으니,. 그 시대의 파고에 대한 당대의 대응은 무엇이 있었던 간에 의미가 없다는 의식입니다. 그 때문에 그 당시를 면밀히 들여다보려는 사람은 학계에 있는 소수 연구자들에 불과합니다. 대중은 그 연구자들과 심각하게 괴리되어 있고, 방송이나 드라마, 소설, 교과서, 또는 천박한 대중교양서나 인터넷 밈이 진부하게 재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는 안이하고 게으른 당대사 인식에서 벗어 나지를 못합니다. 거기에 벗어나는 다른 말을 하면 감히 누굴 옹호하려 드냐며 증오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정치권과 언론은 이런 구한말 인식을 그대로 가져와 국제적으로 외교적 변동이 있으면 1987년 이후 언제나 현재와 전혀 들어맞지 않는데도 구한말을 끌어다 온다고 국방대학교 박영준 교수가 한탄한 바가 있습니다. 이는 사회 전반에서 오랫동안 구한말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진 연구자 김기윤 씨의 저서이자 앞으로의 시리즈물이 될 『타임라인M』은 학계와 대중 사이를 연결해 주며, 기존의 게으르고 공부하지 않으려 드는 인식에 신선한 충격을 가하는 크나큰 도전, 마치 1917년의 10월 혁명과 같이 구체제를 무너트리는 것과 같은 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기윤 씨는 정식으로 사학교육을 전공한 분으로 "오로라의 공상" 이란 블로그를 운영하며 재야에 머무르면서 어마어마한 사료와 연구를 축적한 ‘늑대’님의 도움을 통해 막대한 1차사료 및 기존 연구를 가지고 인터넷상 구한말 인식을 뒤집을 귀중한 글들을 써 오신 분입니다. 




김기윤 씨의 글은 망국과 식민지화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린 다음 감정배설만 일삼고 그 인식을 밈으로 만들어 소비만 하는 양상에 당당히 그게 틀려먹은 것임을 밝히며 징치의 회초리를 가감없이 내리치고 있습니다. 이에 덕산 스님의 몽둥이에 맞거나 임제 스님의 “할!”을 들은 것처럼 충격을 받고 감화된 많은 이들이 김기윤 씨에 의해 눈이 새로 뜨였습니다. 그 중에는 저도 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놀라울 정도의 증오의 감정을 품는 것 같지만,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김기윤 씨와 그리고 역사 그림에서 뛰어난 명성을 쌓고 있는 우용곡 님, 금수 님, 초초혼 님이 삽화가로 참여한 이 타임라인M 시리즈는 한국근현대군사사 프로젝트라는 야심찬 기획입니다. 이 책은 1867년 병인양요부터 1894년 제1차 동학농민운동에 이르는 개항기 조선군의 구조, 무기, 전술 변화와 그것이 실전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앞서 오항녕 교수의 표현을 빌려 근대화를 "보편적이지 않은 것을 보편화하는 과정"이라 하였지만,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서 그런 과정을 받아들이며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에 대한 당대인들의 고민이 『타임라인M』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드러나는 것은 역사학이 계속 당대에 물음표를 던지는 “왜?”와 “어째서?”입니다. 그것의 답이 “누가 무능해서 그렇다.”또는 “누가 기득권이라서 그렇다.”정도에 그치면 그야말로 게을러 빠진 것입니다. 진정한 역사 탐구자는 그 정도 수준에서 벗어나서 끊임없이 “왜?”와 “어째서?”를 던지며, 김기윤 씨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김기윤 씨의 저서는 역사학의 기본적인 목표이자 전제인 “당대를 가장 많이 설명해 줄 수 있게 재현하는 것”에 충실하게 당대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현상과 구조가 어째서, 왜, 어떠한 배경에서 형성되었는지,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가장 넓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성실한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망국의 역사라는 점 때문에 자칫 감정적으로, 또는 감상주의적으로 흐를 수 있는 부분에서도 저자는 냉철함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의 목표는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으로 당대를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누굴 악마화하지도, 누군가에게 당대 일어난 사태의 책임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안이함에 넘어가지 않는 지적 성실성이 이 책의 기반입니다.



저자의 서술은 기존에 블로그에서 쓴 것보다는 더 부드럽지만,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정도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의 인식에 대단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의 서술에 눈을 감고 누굴 옹호하려 드냐며 이빨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들 중에는 그의 신선함과 지적 성실성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더 만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대가 정말 어떠하였는지 알아보려는 사람들에게 『타임라인M』은 더할 나위 없는 선물입니다.



특히 여러 사람들이 가장 냉철함을 잃기 힘든 동학농민전쟁 서술에서 이 책의 장점은 가장 드러납니다.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흡사 중국 문화대혁명기의 ‘조반유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19세기 민중운동사 인식은 당대의 현실과 무관하게 봉기를 일으키면 근대중심주의적 사고에 의해 어떻게든 현대의 민주주의와 연결시켜서 그것에 과한 감정이입이 있는 서술이 많습니다. 게다가 다른 구한말 역사처럼 동학농민운동사도 그때를 면밀히 들여다보기보다는 기존 인식에 머무르는 것도 모자라서 소설(송기숙의 소설이라던지) 속 내용이 실제 역사라고 믿는 등 대중적 인식에 문제가 많은 당대사이기도 합니다.



김기윤 씨는 그 부분에서 냉철함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동학군의 기동 및 전투와 경군 및 지방군의 진압작전 및 전투에 대해 철저히 군사적으로 당대사를 서술합니다. 김기윤 씨의 서술은 어느 쪽에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며 당대를 가장 많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의 블로그에 동학농민혁명을 폄훼했다고 분노하는 몇몇 사람들이 처들어오는 결과를 낳긴 했지만, 당대를 최대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재현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을 어쩌겠습니까?



명나라 때의 격언집에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어 흐르고(長江後浪推前浪) 새 인물이 옛 사람을 대신한다.(一代新人煥舊人)”고 하였습니다. 김기윤 씨는 학계의 연구들과 대중들이 모르는 자료들을 넷상에서 오랫동안 전달해 주며 낡은 넷상 담론을 레닌이 구체제를 파괴하듯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역사가의 길을 걷는 신진 연구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김기윤 씨가 격언에 걸맞는, 앞선 물결을 밀어내는 장강의 뒷물이자 새물결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으며 타임라인M의 일독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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