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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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 년에 걸쳐 읽었다. 두꺼운 책도 아닌데 단숨에 읽히는 책도 아니었다. 부제처럼 편지로 씌어진 소설이라 오히려 긴 호흡으로 읽으면 좋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일 년 동안 읽었다는 건 좀ㅋㅋㅋ 그냥 이제 직장인 되니까 책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 거 같다. 게다가 이제 데스크톱을 쓰니 책상 위에 독서대 올려놓고 책 읽던 시절 보다 책을 안 읽게 된다. 이렇게 더디게 읽었지만 그래도 책은 좋았다.

요즘 나라 망해가는 소식이 끊임 없이 들려오는데 그래서인지 자꾸 이런 내용의 책을 찾게 되는 거 같다. 다같이 힘든 시절 견디고 버텨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견디고 버틴다고 희망이 저절로 찾아오는 건 아닌 거 같다. 책의 많은 분량은 아이다가 사비에르에게 쓴 편지이고 그 내용은 대부분 따스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곳곳에 등장하는 사비에르의 짧은 메모들은 인용구들과 함께 냉철한 저항정신이 담긴 내용들이 많다.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아이다가 쓴 편지들은 내가 잃은 것들처럼 보였고 사비에르의 메모들은 내가 회피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나 이렇게 비겁한 사람? 흑화된 사람? 요즘 그렇다.. 희망이 없다. 능력껏 이리저리 재밌게 살아보려 하지만 어떤 충만함이나 살아있음보다 일상의 기본값이 무기력인 거 같다. 시험 준비하던 재작년과 처음 일 시작한 작년에 비하면 토할 거 같은 느낌, 정신적 린치를 당하는 느낌 그런 극단적인 고통은 없어서 그때보다 숨 쉬고 살만하지만 그때 너무 흑화되어서 회복이 잘 안 된 건가. 세상과 사람과 직장과 일과 돈과 굴레가 너무 싫어서 차라리 세상이 더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곧잘 든다. 나 어떡하지... 더 나은 밝은 미래를 꿈꾸고 싶은데... 의욕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매일 올라오는 각종 뉴스와 통계들을 보면 나는 그나마 나은 상황인 거 같은데... 나는 그만두고 싶고 탈출하고 싶은데 나은 상황이라니....

"아니, 우리는 누군가를 따라잡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밤이나 낮이나, 동료 인간들과 함께, 모든 인간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 행렬이 앞뒤로 너무 길어지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뒤에 선 사람들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더 이상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점점 더 드물게 만나고, 점점 더 드물게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 32)

얼마 후, 손 그리는 법을 설명한 책을 발견하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살펴봤어요. 그리고 사기로 결정했죠. 마치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 같았어요. 모든 이야기는 또한 손의 이야기니까. 집어 들기, 균형 잡기, 가리키기, 합치기, 주무르기, 헤쳐 나가기, 쓰다듬기, 자는 동안 내려놓기, 자르기, 먹기, 닦기, 연주하기, 긁기, 쥐기, 벗기기, 짜기, 방아쇠 당기기, 접기, 책의 각 페이지마다 서로 다른 행위를 하고 있는 손 그림이 정교하기 그려져 있어요. 여기 하나 보여줄게요.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지금 당신을 만져 보고 싶어하는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너무 오래 당신을 만져 보지 못해 이젠 쓸모없이 되어 버린 손처럼 보이네요. (p. 88)

책에서 따스함과 희망이 느껴지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때문인가. 사비에르는 이중종신형을 선고 받고 수감중이며, 아이다는 위압적인 세상에서 약제사로 일하며 주변에서 본 것들, 들은 것들을 편지로 사비에르에게 전한다. 아이다가 쓴 편지에는 사랑과 사려깊음과 따스함이 담겨있다. 사비에르를 향한 사랑, 이웃들을 생각하는 사려깊음, 몸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따스함... 모두 내게 부족한 것들... 이것들을 내 안에 키우기엔 아직 이 각자도생의 한국 땅이 치러야 할 업보가 많은 거 같다. 나는 눈 앞의 좋은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두고도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미래에 대해.. 오지도 않은 미래를 왜그리 잿빛으로 보는 걸까(통계를 보면...~_~) 엄마는 부정적인 생각이 삶의 연료가 되기도 했다는데,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부정적인 생각들은 이전에 했던 단순히 잘 안 될 거 같다는 생각과는 다르다. 앞으로도 쭉 안 될 거 같다는 느낌... 무엇이 언제 어느 순간 없어질지 모르니 지금 가서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는 생각... 어쩜 좋지.... 사비에르처럼 저항할 의욕은 없으니 아이다처럼 힘든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긍정과 희망과 밝음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연습 해보는 수밖에.....

여기까지 이렇게 우울한 독후감을 썼었는데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한 시간 정도 통화하게 되었다. 성격상 사람들이랑 용건 없이 전화하는 일이(그것도 길게 통화하는 일은) 극히 드문데 오랜만에 친구랑 의미없는 말들까지 늘어 놓으며 깔깔 웃고 와 다시 써 놓은 독후감을 읽으니 세상에 웃을 일도 많은데 왜 이리 우울한 글을 썼을까 스스로가 충분히 밝을 수 있는데 너무 부정적이려고, 우울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미래가 답답해 보여도 희망을 찾아 보자. 그런데 혼자 방구석에서 찾지 말고 이리저리 바지런히 움직여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이것저것 접하고 공유하면서 근거 있는 희망을 찾아 확실하게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보자. 아직은 세상이 괜찮고 앞으로 당분간도 내가 우려하는 것보단 언제나 그랬듯이 더 괜찮을 거니까. 정말로 긍정인 사람이 되고 싶어. 긍정!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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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잘돼가? 무엇이든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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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를 좋아하고(이런 시나리오를 쓰고,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다면...) <비밀은 없다>는 안 좋아하기에(과대평가 된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음...) 이경미 감독에 대한 마음이 갈팡질팡했는데 이 책을 읽고 이경미 감독이 확실하게 좋아졌다.

가족 이야기, 직장생활 이야기, 영화학교 다니던 시절, 영화 만들 때의 이야기 등등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를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다이어리처럼 솔직하고 가볍게 써서 묶은 책이다. 나는 특히 고된 직장생활 이야기와 영화감독이 된 후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요즘 내 고민에 대한 대답 같기도 했다.

과거 영화감독 준비생을 명분으로 한 백수 생활을 했을 땐 영화제에 갔다던가 어디서 상을 받았다거나 하는 것을 그닥 부러워하지 않았다. 영화를 찍고 스스로가 만족하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스스로가 만족하고 뿌듯하게 느끼면 성공 아닌가. 남들의 인정과 명예 같은 건 탐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영화제에 가고, 상을 받고, 많은 관객이 들고... 이런 식으로 명예를 얻는 감독을 종종 떠올리고 부럽기까지 하다(나자신 영화도 안찍었으면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아니라 영화를 보는 사람들까지 만족시키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영화로 수익을 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런 명예가 나의 직업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어서.... 얼마전에 본 홍상수의 <물안에서>에서는 주인공이 명예 때문에 영화를 찍는다고 말하는데, 처음엔 그 대답이 조금 쎄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솔직한 대사로 들린다.

덥고춥고 밤낮없이 정신없이 사람때문에 장비때문에 언제나 예기치 못한 사고가 터지는 현장에서 쩔쩔매며 정신없이 컷을 외쳐대는 게 촬영장의 실상(게다가 돈도 못 벌잖아..)이라는 걸 알기에 그런 거 안하겠다고 다짐하고 떠나왔음에도, 책 속에서 이경미 감독이 전세계 영화제를 돌고 집에 왔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는 예전과 다르게 크게 부러웠다. 내 꿈도 속물적으로 변질된 건가... 하지만 그런 부러움을 깨버리는 대목도 있기에... 그리고 그런 내용이 더 무섭게 느껴졌기에 영화감독이란 직업은 유니콘 같은 거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어렵게 입봉하면 직업란에 ‘영화감독’이라고 쓸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변함없는 생활고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선배 영화감독의 부고를 접할 때마다 심장이 떨렸다. 불행한 자살만은 아니길 바랐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더 이상 만들 수 없어서 죽음을 선택하는 일만은 아니기를. 8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다. 늘 긴장하고 있다. 내가 좇고 있는 목표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면 빨리 그만두겠다, 수시로 다짐한다.

(...)

그렇게 해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지만 기쁨은 짧고 고통은 길었다. 후회 없이 치열했는데 허망하긴 마찬가지다.

영화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직장생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영화학교 다니면서 정말 힘들었어도 즐거웠다고 말하는 것에 납득이 된다. 주6일 노동에(그땐 다 그랬다지만), 휴가 연가는 거의 없고 공휴일에도 출근해야 하고, 성추행하는 상사에다가, 야근도 많고, 통근시간도 긴 이런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 어떤 모진 일도 두렵지 않은 건가... 나처럼 야근도 거의 없고 통근시간도 비교적 짧고 주말 공휴일에도 다 쉬는 일을 하는 사람은 현장에 가면 다시 바사삭 부서지겠지...

책을 다 읽고 팟캐스트 '책읽아웃'의 이경미 감독 편을 들었는데 크게 공감되는 말이 있었다. 그건 시나리오를 쓰는 고통에 대한 것인데... 이경미 감독은 자신은 시나리오를 쓰는 것 자체는 전혀 힘들지 않지만, 투자 받아야한다는 생각을 하면 그때부터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이 말이 너무 공감되었다. 나도 4월까지는 장편 시나리오를 썼고, 쓰면서 내내 대체 이 시나리오에 누가 투자할까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 나도 시나리오를 쓰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그런데 소설을 쓰는 건 너무 어렵고 고통스러움). 하지만 투자를 받고 영화화 될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고, 영화로 만들어진다 한들 사람들이 보기나 할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글 쓸 의욕이 뚝 떨어진다. 상업영화 두 편을 찍고 현장에서 뛰고 있는 현업 감독 조차 이 지점이 제일 고통스럽다고 말하다니..... 탈출구로 영화현장을 생각했던 나를 제정신 차리게 도와준 말이었다.

아직은.. 아직은... 직장생활이 할만한 것 같다. 시작을 너무 고통스럽게 해서 이 직업에 대한 애정이 쉽게 생길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아직은 백수시절보단 낫고, 거의 초토화된 한국영화시장을 보면 코로나 시기에 진로를 돌린 게 운이 좋다고 느껴지기까지 하다.. 그래도 설레면서 일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냥 버틸 걸 왜 그만두고 도망쳤을까 후회하거나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럴 땐 가끔 이런 책을 읽어줘야한다. 더불어 아래 표도 주기적으로 봐주자. 재미있는 책에 암울한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현실을 흐린 눈하고 유니콘 같은 직업을 꿈꾸는 스스로를 다시 제정신 차리게 하려고... 이런 나의 처지와 별개로 이경미 감독님은 어서 시나리오 쓰셔서 다시 극장에서 영화로 만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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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시 - 인디영화의 대명사, 짐 자무시 인터뷰집 마음산책 영화감독 인터뷰집
루드비그 헤르츠베리 엮음, 오세인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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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시의 인터뷰집을 읽었고, 첫 인터뷰부터 마지막 인터뷰까지 변하지 않는 그의 영화에 대한 태도와 지조에 내내 감탄했다. 그는 영화를 찍을 때 온전한 편집권과 소유권을 갖기 위해 상업 자본에 손 벌리지 않으며, 적은 자본으로 자신이 원하는대로 찍는다. 인터뷰집 처음부터 끝까지 돈과 야망에는 관심이 없다고 일관되게 말하는 그를 보며 매일 매순간 흔들리고 갈팡질팡하는지 나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너무 욕심이 많은 걸까.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아니면 나는 너무 자신이 없는 걸까. 이것도 못하겠고 저것도 어려워 보이고. 아니면 나는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걸까.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써야할지 모르겠어... 작가란 영화감독이란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강단이 있어야할텐데 내게 너무 부족해보이는 역량 같았다.

저는 돈과 라이프 스타일을 중심에 두고 삶을 꾸려나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건 너무 뻔한 삶처럼 느껴지죠. 정말 수많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도 있거든요. (...) 저도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죠. 하지만 왠지, 어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한다거나, 내 위에 상사가 있다는 걸 견딜 수 없었어요. 동료들과 잘 지내지도 못했고, 진득하게 일을 해본 적도 없었죠. 그저 그 상황이 싫었어요. 제 시간을 제한받는 게 싫었죠. (…) 돈을 얻으려고 삶 전체의 스케줄을 거기에 맞춰 짜느니, 그냥 빈털터리가 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전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거예요. (…) 제 유일한 소망은 그저 계속 영화 일을 할 수 있고, 집세를 낼 수 있고, 크게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그게 정말 저의 가장 큰 야망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것도 일종의 모순이죠. (p.44)

짐 자무시니까, 미국 백인 남자 감독이니까, 식의 자무시에게 이로운 조건들의 따지며 핑계거리를 찾아보지만 반대로 이 책에 실린 인터뷰들로부터 삼사십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 시대에 누구나 필름 없이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찍을 수 있는데! 수많은 영화제와 유튜브 채널에 내 작품을 쉽게 공개할 수 있는데! 대체 환경적으로 뭐가 불리하다고 주변탓을 하는지...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나는 흔들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TV드라마와 영화만 있는 시대가 아니고, 웹드라마, 브이로그, 숏폼, ott시리즈 등 불과 십몇년 전엔 없었던 낯설었던 그 많은 영상포맷들이 골고루 지분을 갖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이중에서 내가 찍고 싶은 건 결국 영화라는 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거 같은데... 그런데 그 영화를.. 대체 어떤 영화를 찍고 싶은가가 문제지...

저는 미국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야망 같은 것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천국보다 낯선>의 캐릭터들은 이렇다 할 야망을 품고 있지도 않고, 지적인 캐릭터들도 아니죠. 그러니까 이 작품은 실존주의 영화도 아니에요.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서 묻지도 않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모습에 대해서도 묻지 않아요. 그 대신에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편이죠. 되는대로, 별다른 목표 없이 영화 속 세상을 이리저리 옮겨다녀요. 그저 어디서 카드게임이나 새로 한편 벌여볼까 하는 기분으로요. 철학적 상징 같은 것들을 나열하며 뭔가를 해석하려 드는 대신 말이죠. 영화에 폭력도 없고, 섹스도 없고, 예의 기대하는 것들이 없는 건 그러한 이유와 관련이 있어요. 전체적인 영화의 포인트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기대할 만한 것들을 제공하지 말자는 거였죠. 내러티브의 형식 자체가 스스로 그런식으로 작동해요. 어느 부분에서 영화를 정지시키고 물어보아도 관객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해요. 혹은 사실상 내러티브 자체를 크게 의식하지 않죠. 그 대신 관객들은 작은 디테일, 상황들, 그리고 캐릭터들에 관심을 갖게 돼요. 영화 속 유머 또한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고요. 요란한 개그나 조크가 아니라 세부적인 것들에서 나오는 유머들이죠. 작은 디테일들의 유머라고 할 수 있어요.(p.78)

짐 자무쉬는 자신이 찍고 싶은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감독이었다. 나는 내가 찍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다(그래서 맨날 고통..) 같은 시나리오를 쓰다가도 어떤 날은 상업성이나 대중성이 부족한 거 같고, 어떤 날은 막장에 클리셰 같고... 그렇게 쓰다보면 이도저도 아닌 이야기 같고... 좀더 내 욕망이나 야망 같은 걸 들여다보자면, 나는 잘 만든 상업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것 같다(그래서 내가 짐 자무시 영화를 엄청 좋아하진 않나봐). 한땐 <패터슨>에 나오는 패터슨처럼 사는 게 꿈이었는데, 막상 K직장인이 되니 패터슨처럼 사는 것이야말로 한국에서는, 그것도 이 정신없는 도시 서울에서는 판타지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패터슨처럼 사는 꿈은 접어두고... 결국 영화일을 하고 싶은 건데 그럴려면 밥벌이가 되는 시나리오를 써야할텐데... 그럼 결국 제작자의 입김에 맞는 통계적으로 흥행이 잘 되는 플롯의 시나리오를 써야하는 거 아닌가 그건 정말 영화 만들기인가 내가 원하는 대로 못 만드는데 직장생활과 뭐가 다른가. 이런 식으로 일어나지도 않는 일들에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는 시나리오는 안쓰고 잡생각이나 하고 있다. 암튼 나는 짐 자무시보다 스필버그나 스콜세지가 좋아. 하지만 현장에서 그만큼의 엄청난 장비와 수많은 스태프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다시금 아무도 나한테 안시켜주는데 이렇게 혼자 망상으로 김칫국 마시면서 쓸데 없는 걱정 했다. 진짜루 맨날 이런식이야.. 스불재..

최근에는 조금 마음을 다잡았다. 요몇주 동안 도연언니에게 빠진 상황에서 내가 쓰고자하는 시나리오의 선을 조금 잡은 것 같다. 대박 시나리오나 진지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도연언니가 읽을 만한 시나리오. 도연언니에게 선택받지 못해도 괜찮으니 그냥 그녀의 테이블에 내 시나리오가 몇 권 놓여있으면 좋겠다. 총알처럼! 딱 그정도로만! 도연언니한테 반드시 선택 받을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게 아니라 도연언니에게 보여줄 수 있을만한 퀄리티로만 쓰자. 딱 이정도의 목표로 쓰기로 했다. 짐 자무시 책 읽고 결국 기승전도연된 독후감이 좀 이상하지만 여기서 자무시식의 굳은 신념을 적용해 나도 이 태도를 쭈욱 유지해가면 좋겠다. 그러니까 4월에는 꼭 시나리오 완성하고 5월엔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하길... 나자신 파이팅이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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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여행하는 법 -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지음, 장석훈 옮김 / 유유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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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다녀오고 돌이켜보면 좋은데 가기 위해 알아보고 준비하는 과정이 성가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내 방 여행하는 법'을 보았을 때 딱 내가 원했던 여행처럼 느껴졌다. 굳이 집 밖을 나서야만 여행인가? 집 안에서도 여행이 가능하다! 낯선 것을 보고 영감을 받는 것도 있지만 익숙한 것을 계속 보아서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의자란 얼마나 훌륭한 가구인가. 사유하는 인류에게 이보다 유용한 물건은 없으리라. 기나긴 겨울밤, 세상사 소란에서 벗어나 그 속에 몸을 묻고 잇으면 한없이 차분해지고 때로 달콤함까지 깃든다. 벽난로 불이 활활 잘 타오르고 내 손에 책과 펜만 있으면 지루할 짬이 어디 있으랴. 사그라지는 불길을 다시 키우기 위해 책과 펜을 손에서 놓았다가 그대로 즐거운 상념에 빠져 지인들을 기쁘게 할 시의 운을 다듬는 일도 달콤하디달콤하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한없이 흘러 영원의 침묵에 이르고, 시간이 빚어내는 그 슬픈 여정을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p.22)


매일 앉는 의자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가능하다. 집안에 두고 오래 써서 생기는 애착도 있다. 그리고 의자를 보며 쓴 글을 읽은 나 또한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지. 작가가 의자뿐만 아니라 침대, 초상화, 하인 조아네티 등에 대해 쓴 여러 글을 읽는 것 자체가 내게는 또 하나의 여행이었다.그리고 글에서 느껴지는 작가는 무척 감정적이고 인간미가 넘쳐서 굉장히 호감이었다....


무엇보다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점을 이 여행의 미덕으로 꼽고 싶다. 눈여겨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넉넉지 못한 사람들은 그 점을 높이 치고 반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과 다른 부류에 속하지만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에 더 환호하는 이들이 있다. 누구긴, 바로 부자들이다. 병약한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인 새로운 여행법이 아닐 수 없다. 날씨와 기후의 변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여행법은 소심한 사람에게도 좋은데, 도둑을 맘ㄴ날 걱정도 없고 낭떠러지나 웅덩이를 만날 걱정도 없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고 여건도 안 됐던 사람들, 아예 꿈도 꾸지 못했던 사람들, 그런 이들이 나를 보면서 여행할 마음을 낼 것이다. 행여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가 있어, 번거로울 것도 없고 돈도 들지 않는 즐거움을 만끽하자는데도 나와 같이 떠나기를 망설이려나. (p.15)


작가는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받고 집안에만 있어야 했지만 이를 우울하게 여기지 않고 내 방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보냈다. 책을 읽으면서 2020년에 코로나로 외출이 힘들던 시절 매일 집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 일기를 쓰던 때가 떠올랐다. 그땐 집에 동생도 없어서 매일 혼자 지냈는데, 90일간 매일 영화 일기를 쓰겠다는 생각에, 사람은 거의 만나지 않고(못하고) 영화 일기 쓰는 일에만 집중했다. 주로 집에 있거나 외출은 가끔 영화 보러 나간 게 전부였는데도 그 시간이 그립고 자주 생각난다. 작가와 나의 공통점은 매일 글을 썼다는 점인데,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내 방 여행을 알차게 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완성된 글이라는 결과물이 생기는 것도 보람차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 자신과 대화를 하고 글 쓰는 대상에 대해 진득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 그 시간을 여행으로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글쓰기를 놓을 수 없고, 매일매일 여행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그게 영화든 음식이든 운동이든 사람이든... 글만 쓸 수 있다면 내가 어디서 무얼하든 다 여행이다.


해외여행처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타지 여행에서도 당연히 얻는 건 많다. 이때는 주로 지식과 앎을 얻는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미디어에 나오는 유럽의 명소들이 훨씬 눈에 잘 들어오게 됐다. 반면 내 방 여행은 어떤 대상에 대해 조금은 낯설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주변에 있는 익숙한 것이라도 그것에 대해 글을 쓰다보면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 대상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좋은 여행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돈 없고 겁 많고 프로불안러인 나는 큰 용기와 결심과 자신감이 필요한 타지 여행보다 내 방 여행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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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정지돈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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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이라니... 나도 서울과 파리를 많이 걸었다. 그리고 심지어 정지돈이 파리를 걷고 있었을 때 나도 파리를 걷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 친근감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2019년 9월, 그때의 파리가 그립고 책을 읽으니 파리에서 라임을 안 타본 게 아쉽네. 하지만 라임은 무서우니깐 안 아쉽나... 한편 나는 작년에 서울과 대구를 열심히 걸었다. 그건 산책이라기보다는 운동에 가까운 걷기였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고 먼 곳이어도 내 두 발로만 가겠다는 다짐을 품고 집을 나섰다. 백수였고 가진 돈이 없었지만(지금도 여전히 없지만) 시간은 많던 시절이었다.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불안과 우울도 걸으면서 조금씩 떨쳤다. 혼자 걸어서 가끔 무서운 순간은 있었지만 외로운 순간은 없었다. 익숙한 장소여도 교통수단 없이 내 두 발만으로 가본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고 혼자였기에 그것을 오롯이 감각할 수 있었다.


“걷는다는 것이 권력이 없고 지위가 낮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리베카 솔닛의 말이다. 걷는다는 것은 돈이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동시에 쾌적한 곳을 평일 낮에 걷는다는 것은 돈이 지나치게 많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다시 리베카 솔닛의 말을 인용하면 “사람들이 안 걷게 된 것은 걸을 만한 장소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걸을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걷는 행위는 빈곤한 동시에 부유하다.”(p.11)


그리고 이제는 정말 걸을 시간이 없다^^ 그때 열심히 걷길 참 잘했어!! 이렇게 될 줄 알아서 열심히 걸었고, 더 걸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여담이지만 작가가 되는 데 가장 필요한 재능은 착각이다. 문장력이 좋거나 머리가 좋거나 인내심이 있거나 책을 좋아하거나 기타 등등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 라는 착각이다. 이건 굉장히 슬픈 지점이다. 만약 작가를 만드는 요인이 남다른 언어 감각 같은 실질적인 재능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착각과 자신감이라면, 많은 작가들이 왜 그렇게 덜되어먹은 건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뭔가를 해내는 인간들의 성취 중 많은 경우가 단지 자기 확신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세상이 왜 이렇게 엉망인지 알려주는 것 같다. 자기 확신은 완벽한 픽션인데, 사실 인간은 픽션적 존재고 세계(역사)는 픽션의 실현과 재현의 교차로 이루어지므로 픽션에 대한 확신이 그것을 실현시켜주는 원동력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p. 42)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데도 착각과 자기확신이 필요한가. 시인과 소설가는 착각이 아니라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라는 착각이 아니라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행위 자체가 시인이나 소설가를 만드는 거 아닌가. 그런데 결코 혼자 만들 수 없는 영화의 경우 착각과 자신감과 자기확신은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중요한 재능이 없어서 다른 일을 찾았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가능하다고 착각하고 그걸 자기 확신으로 밀어붙여서 스탭들을 설득시키고 기어코 찍어내는 일. 그 과정에서 겪는 온갖 모진 수모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꼭 이렇게 찍어야 한다는 자기 확신과 당위가 내게 없었다. 사실 영화라는 건 세상에 꼭 만들어질 필요는 없으니까. 영화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이 장면을 꼭 이렇게 찍어야할 이유는 없단 말이다. 역시 나는 착각하는 인간은 아니야.... 동시에 나는 자신감을 조금 얻었다. 결국 다 좆밥이구나! 단지 자신감과 자기확신으로 가득찬 사람이 해낸다는 사실은, 당장 내게 (착각을 포함한) 재능이 부족해도(나 역시 좆밥이어도) 그냥 해보자라는 희망을 준다.


출퇴근 시간 2호선을 타고 강남을 오간 사람은 알 것이다. 지옥철이 은유나 수사가 아님을. 지옥은 사회가 필연적으로 생산하는 일종의 상태다. 일시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생산되는 이러한 상태는 인간들로 하여금 다른 삶 또는 상태를 꿈꾸게 한다. 다시 말해 지옥은 사회의 필수 요소이며 엔진이고 동력원이다. 사회와 지옥은 너무 긴밀히 접합되어 있어 지옥을 떼어내면 사회가 망가진다. 이를테면 지옥철이 없고 차가 막히지 않는 출퇴근 시간, 모든 사람이 원하는 시간만큼 일하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사회는 사회가 원하지 않기에 불가능하다. 나인 투 식스를 유지해야 하는 필수적인 이유에 대한 담론은 사회의 유지를 위해 우연히 구성된 픽션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하철은 독서하기 가장 좋은 공간이다. 픽션에서 픽션으로 갈아타기. (p.167)


다시 월요일이 돌아왔고 출근이고 지옥이다. 보기 싫은 얼굴들을 봐야하고 쏟아지는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일주일 중 5일의 9시간 이상을 지옥에 내어주어야 한다. 정말 다들 이렇게 살아온건가, 아직도 현실이 믿어지지 않지만, 정지돈은 지옥은 사회의 필수 요소이며 엔진이고 동력원이라고 말하니, 에휴... 따지고 보면 나도 직장인이 된 이후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이것저것에 관심을 가지는 등 얼마 안되는 자유 시간을 더 다채롭게 보내려고 노력하게 됐다. 이전에 출퇴근의 지옥이 없던 시절엔 일상은 평온했으나 종종 무기력했고 의욕만 있었지 행동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매일 탈출을 생각하며 퇴근 후 다른 일을 모색하며 무엇보다도 행동한다! 일은 지옥이 맞지만 살짝 귀엽게 바꿔 말해보자면 메기 같은 것이랄까. 하지만 지금 우리 어항엔 메기가 너무 많아... 지옥이 없는 세상까진 아니더라도 그 비중이 줄어들길. 마무리는 늘 그렇듯이 주4일제가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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