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 졸업을 앞둔 너에게
커트 보니것 지음, 김용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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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이 살아간 나날이었다. 매일 끔찍한 출근길, 재미없는 노동, 감옥에 갇힌 기분, 오를 기미가 없는 월급, 출생아수 26만명의 나라, 진전 없는 시나리오, 시나리오를 쓴다한들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만들어진다한들 사람들이 이걸 볼까.. 나는 정말 탈출할 수 있을까..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데 탈출해도 괜찮은 걸까... 대체 어떤 것에 기대고 어느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할지 모르겠다. 커트 보니것은 무슨 맛으로 살았을까.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고, 이후 각종 일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작품을 써낸 그것도 많이 써낸 커트 보니것은 무슨 맛으로 살았을까.


이 책은 커트 보니것의 대학 졸업 연설문들을 묶은 책인데, 각기 다른 연설문이지만 여러 번 나온 메시지도 있다. 그중 제일 새겨 듣고 싶은 말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최근의 나의 말로 바꿔보자면 스키스키스키??!!


알렉스 삼촌은 삶이 너무 즐거울 때-그늘에서 레모네이드 한 잔을 마시는 것일 수도 있었죠-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그래서 바로 지금, 우리가 지금껏 성취한 것에 대해 그 표현을 쓰려고 합니다. 만약 그 표현을 자주-한달에 대여섯 번 정도-사용하지 않으면, 때때로 삶이 얼마나 보람찬지 느낄 여유를 가질 수 없을 겁니다. (p.106)


삼촌은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을 때 우리가 그걸 자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승리가 아닌 아주 소박한 경우를 말씀하신 겁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레모네이드를 마신다든가, 빵냄새를 맡는다든가, 혹은 낚시를 하거나, 키스를 한 후에 어두운 야외에 서서 음악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듣는다든가 하는 경우 말입니다. 삼촌은 그런 때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p. 116)


분명 지금의 내 삶에도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의 즐거움과 행복을 잊으며 사는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매일 8시간 이상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불행이 맞지만, 이 불행을 벗어날 생각에만 몰두하다보니,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행복을 지나쳐버리는 것 같다. 예전에 본 조승연의 유튜브 영상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왔다. 행복할 줄 아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말은 결국 행복한 순간이 없어서 불행한 게 아니라는 거겠지. 행복할 줄 아는 것이라...


행복을 알기 위해 적어보는 나의 사는 맛 리스트! 퇴근길 타이밍이 딱 맞는 버스 탈 때~ 복싱 끝나고 집에 갈 때~ 앤디모어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마시며 어찌어찌 시나리오를 써냈을 때~ 친구들이랑 맛있는 밥 먹고 수다 떨며 커피나 술 마실 때~ 자연의 빛나는 순간을 카메라로 찍었을 때~ 주말 오전 직접 만든 토스트를 먹으며 따뜻한 커피 마실 때~ 주말 오전 조조로 마음에 드는 영화를 볼 때~ 애인님과 맛있는 음식 먹을 때~ 책에서 좋은 구절을 만났을 때~ 블로그에 내가 찍은 사진 올릴 때~ 혜윤이가 귀엽게 애교부릴 때~ 청소 후 집안이 깨끗해졌을 때~ 집에서 혼자 맥주마시며 영화볼 때~ 인화한 필름 사진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발견했을 때~ 팟캐스트 들으며 걸을 때~ 온몸을 맡길 수 있는 음악을 들을 때~ 일기를 읽고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릴 때~ 요거트에 제철 과일 넣을 때~ 복싱하며 흐르는 땀 수건으로 닦을 때~ 복싱 후 집에 와서 시원한 탄산수를 마실 때~ 도연언니 영화 볼 때~ 명절에 가족들과 소고기 먹으며 술파티 할 때~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 볼 때~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많은데 나는 왜 행복하다는 생각보다 불행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걸까. 현재도 충분히 즐기고 있는데 왜 미래의 희망을 바라는 걸까. 스키스키스키! 지난 부산영화제에서는 친구들과 스키스키스키!를 많이 외쳤다. 지금 이순간이 너무 좋아~ 행복해~ 즐거워~ 나는 친구들과 행복을 열심히 인지했고 받아들였고 입에 장착시켰다. 그럼에도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괴로워했고 인류를 저주했다. 어쩐지 부산에서의 시간은 꿈만 같았다. 분명 그것 또한 현실이었는데도 희미한 추억처럼 느껴졌다. 스키스키스키!를 백번 외쳐도 ‘사는 맛’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왜일까. 그건 내게 행복한 순간을 모조리 빼앗겼던 시기가 있어서 그런 날이 또 올까봐 두렵기 때문일까... 매일의 행복은 확실하지 않은데, 매일의 불행은 확실해서일까... 불행을 밀어내기 위해 행복한 순간을 긁어모으는 느낌이 드는 이유... 어째서 생존을 위한 행복처럼 느껴지는 걸까... 단지 나의 삶에 대한 욕심이 너무 크기 때문일까...


커트 보니것은 예술과 함께 하는 삶을 강조하기도 했다(순수예술이 다른 것들보다 우위에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마침 그즈음에 트위터에서 본 짤이 떠올랐다. 그 짤에 의하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단지 ‘사는 맛’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건 그만큼 살아야하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반대로 세상의 수많은 예술 작품을 떠올리면 살아야할 이유가 도처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서 주4일제를 하고 우리 모두 4시간만 일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럼 나의 불행은 확실하게 줄어들고, 나의 불확실한 행복들도 늘어날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나는 더 많은 예술 작품을 보고,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기 싫은 일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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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로스쿨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로스쿨 라이브
박재훈 지음 / 들녘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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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빌린 책 다시 빌려 읽기.... 이런 거 좋아해..... 책이 재밌어 보였다. 온갖 험담, 뒷담, 폭로가 재미 없기 힘들지. 하지만 기대보다 순한맛(?)이었다. 살면서 한번도 꿈꿔본 적 없는 직업이 법조인, 외교관, CEO 이런 것들이라 법조계는 어떤 곳인지, 로스쿨 생활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로스쿨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도 비교적 최근에 알았고, 그래서 누가 로스쿨 들어갔다고 들으면, 아 그렇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지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마찬가지로 로스쿨 들어가면 그렇게 고생하는 줄도 몰랐다. 그렇다고 책의 부제처럼 로스쿨 생활이 딱히 드라마틱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공부 내용이나, 법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건 거의 없고, 학교 생활 동안 만났던 기가 차는 사람들 이야기, 납득할 수 없는 로스쿨 제도와 교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어딜 가든 찾을 수 있는 모순과 환멸들이었다.


한국에서 야망을 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부딪히게 되는 벽이 수험생활인 거 같은데(나처럼 단지 생존을 위한 업을 구하려해도 겪어야하지만), 나는 그걸 고등학생 때 너무 힘들게 겪었다. 책에 나오는 로시오패스는 고등학생 때의 나 같았고, 어릴 땐 뭐가 뭔지 모르니깐 명문대가 너무 가고 싶으니깐 스스로를 마비시켜서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 공부했다. 그리고 그때 생긴 안 좋은 습관이나 성격 같은 것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효율을 극대화하는 걸 추구하고, 무언가를 실패했을 때 큰 좌절감을 느끼는 것, 남의 일에 쉽게 냉소적이게 되거나 영혼 없이 반응하는 것, 충분히 잘하는데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 등등... 시험 공부가 제법 잘 맞고, 수험 생활을 잘 이겨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타입은 아니다. 희망찬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고, 그러다보니 수험 기간에도 내내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니 고등학생 시절과 최근에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시절 하나도 미화시키고 싶지 않고 그냥 부끄럽고 안타깝게 느껴지고, 한국에서 태어나 제일 원망스러운 게 가장 좋은 나이를 그런 식으로 보낸 것인데...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나는 원하는 대학에 갔고, 직장도 구해서, 멘탈적으로는 회복했기에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해 더 할 말은 없다.


왜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은 항상 변한다. 물론 이는 변호사가 되고자 한 이유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 최근에는 변했다. 한 줄로 간결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돈 때문이라고. (p.268)


돈은 중요하다. 한달 월급 168만원 받는 말단 공무원은 일할 의욕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 위한 준비를 할 의욕 또한 없지.... 왜 공무원이 되었는가? 글쎄요.. 모르겠네요... 할 게 없어서, 사기업 들어갈 자신 없어서, 들어가서도 버틸 자신 없어서, 칼퇴하고 싶어서(못함)... 그냥 이제 더이상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 열심히 살아야 좋은 보상을 받는다는 말 참 싫고, 열심과 보상은 별개의 것이고, 보상을 위해 열심히 사는 건 내게 너무 처절해보이고, 살다보면 어쩌다 한번씩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순간도 오는 거지.... 적당히 살고 싶다, 즐겁게 살고 싶다. 재밌게 살고 싶다, 여유롭게 살고 싶다. 하지만 일터에 나가면 쫓기듯이 일하기 부지기수고 에휴 돈이라도 많이 벌자는 그 마음 이해 간다. 하지만 정말 돈 때문일까?


저자의 말처럼 나도 한국 사회의 이중성에 진절머리가 난다. 좋은 가치들을 얘기하면 그걸 빌미삼아 그 사람을 갈아서 일을 시킨다. 정의, 희생, 봉사, 열정... 이런 아름다운 가치들은 이 나라에선 인간을 갈기 딱 좋은 단어가 된다. 그러니 이런 것들로부터 멀리멀리 도망쳐야해... 그래서 우리는 사실 마음 속에 소중한 가치를 품고 있어도 겉으로는 '돈'이라는 말로 퉁치는 게 아닐까. 그건 사실 K일터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 같은 거 아닐까. 돈 때문에 해요, 라고 하면 더이상 할말이 없으니. 내 입장에선 돈보다 시간과 건강이 중요하니, 칼퇴하려고 해요. 아니 이건 백프로 진심이구나. 돈 때문이란 말도 백프로 진심일 수 있겠네. 저는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쓰고 싶어요... 그렇다고 내가 지금 태평하게 일하는 건 절대 아니고, 주말에도 가끔 일 생각나면 짜증나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겨우 한 푼 더 벌 바에야, 직업을 바꿔 떼돈을 버는 게 나을지도.


이 책을 읽고 로스쿨 생활의 치열함은 살짝 알게 됐지만 법조계 어떤 곳인지 변호사는 무슨 일을 하는지 여전히 하나도 모르겠다. 사실 이런 직업군 이야기는 책으로 읽는 것보다 실제로 만나서 가감없이 들어봐야 낭만없이 알 수 있는데, 들어봤자 엉망진창인 건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버는 돈은 아주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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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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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출근길 독서는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었다. 2년 전 도서관에서 빌려 와 앞에 실린 글 몇 편을 읽고 홀딱 반해 직접 사서 읽었는데, 그때 절반쯤 읽고 읽기를 관뒀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뒤의 절반정도 읽었는데, 매일 출근길에 한 편씩 읽으니 딱 좋았다. 책이 두꺼워서 들고 다니기 불편하다는 점만 빼고... 


처음에는 이정도의 퀄리티의 글을 매일 써낸다는 점이 놀라웠고, 자꾸 읽으니 글보다 이슬아라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절반 가까이 읽으니,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 대화라기보단 일방적인 듣기에 가까웠고, 내가 그의 사생활을(예컨대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과 애인과 친구들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되어 피로했다. 마치 하루도 빠짐없이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스토리가 올라오는 계정을 구독해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잠시 읽기를 멈췄다. 어쩌면 또래로써 질투가 나서 읽기를 그만둔 것일수도 있다. 그의 글들에 담긴 일상도 다 편집되고 선택된 것들일텐데, 글이 정갈하고 정제되어서 그런가.. 그의 삶은 나의 삶처럼 구질구질하지 않고 단정하고 깔끔하고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의 평소 생각이나 가치관들에 대해서도... 어렸을 때부터 대안학교를 다닌 덕분인지 그는 K교육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온갖 경쟁들에 오염되지 않고, 자신의 육체와 욕망과 가치관을 존중하며 당당하게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멋있고 좋은 사람은 지금 내 주변에도 많은데... 계속 읽어가니 이슬아라는 사람보다 자신의 일상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그의 마음이 제일 신기했다. 아니 근데 나도 매일 블챌에 내 일상을 올리잖아.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이번 한주는 어땠는지... 이런 것까지? 싶을 정도로 사소한 것들도 적고 있는데ㅋㅋ 하지만 블로그가 나의 공간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잠시 초대하는 느낌이라면, <일간 이슬아>는 나의 일상을 문앞까지 배달해주는 일 같다. 그 마음과 용기는 어디서 오는걸까. 그건 자신의 글에 대한 자신감에서 오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글을 구독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에서 오겠지....


사실 나는 가장 소중한 순간에 대해서라면 한 글자도 쓰고 싶지 않다. 그저 나 혼자의 일로 혹은 나와 함께 그 순간을 겪은 상대와의 일로만 남도록 두고 싶은 것이다. (p.534)


책의 말미에 실린 글 중 이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작가를 애정한다면 서운함이 느껴질 수 있는 문장이고, 작가를 더욱 애정한다면 스스로를 잘 챙겨가며 글을 쓰는 모습이 멋있어 보일 수도 있겠지. 나의 경우엔, 내 블챌을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었어... 나는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열심히 블챌에 쓰고 있는데 내가 너무 많은 걸 블챌에 쓰고 있나? 그 어느 순간도 놓치지 않고 쓰려고 하나? 소중한 것들 중엔 내밀한 것도 있고 내밀하지 않은 것들도 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블로그라는 나의 공간에 쓰는 글이고 이슬아는 모르는 사람의 사적인 메일함에 들어갈 글이니, 어차피 블챌글 앞으로 제일 많이 읽을 사람은 나니깐.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처럼 소중한 순간을 열심히 기록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다시 저 문장을 보니 글로 먹고 사는 자의 마지막 방패처럼 느껴지네. 블로그 좋아. 잘 쓸 필요도 없고, 세상의 불만투정원망 늘어놔도 되고, 멋들여지게 편집할 필요도 없고, 때론 멋들여지게 편집해도 되는 곳.... 대가 없이 쓰는 글이란 이래서 좋은 것....그래도 대가 주세요.... 맥북 프로 받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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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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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궁금했던 책이었는데, SNS에서 책 표지를 보고 너무 예뻐서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책! 부천영화제 갈 때도 챙겨 갔는데, 부천영화제랑 참 잘어울린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B급스러운 면이 있어... 민음사tv에서 아란님이 너무 흥미진진하게 얘기해주셔서 기대가 컸는데, 그래서인지 처음 읽을 땐 기대가 너무 컸나, 그냥 가벼운 장르소설인가, 굳이 내가 이걸 끝까지 읽어야하나 싶었다가 중간에 열차가 끊어지는 지점부터 헐 이게 뭐야!ㅋㅋㅋ하며 끝까지 읽었다. 읽는 내내 영화를 보는 것 같았고 그간 내가 읽어왔던 한국 소설들과는 다른 결이라서 영화보듯이, 여행하듯이 읽었다. 


여기까지 쓰고 더 쓰기를 미루는 사이 도연언니 신작 <비상선언>을 보았다. <비상선언>을 보는 동안 이 소설이 떠올랐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내가 보고 있는 이 재난 영화가 마치 책에서 다뤄지는 재난 여행 같았다. 특히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비행기가 휘청거리며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장면은 보는 동안 내가 이걸 이렇게 소비해도 되나? 커다란 스크린 앞에 편하게 앉아서 공포와 스릴을 즐겨도 되는지(사실 공포도 스릴도 없음)... 영 마음이 불편했다. 극중에는 위험한 상황에서 차분하게 직업 의식을 발휘하는 캐릭터들도 있지만, 후반부에서 송강호가 택하는 방식을 보고는 당황스러웠으며 그로 인해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게 과연 성공적인 착륙인가 찜찜했다. 제일 끔찍했던 것은 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착륙을 포기하는 거.... 결심은 실현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이런 결심을 하는 인물들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다니 이 영화는 나쁜 영화야...


그리고 송강호의 선택에 대하여. <밤의 여행자들>의 후반부에서도 주인공 요나의 비슷한 선택이 나온다. 요나는 사랑하는 연인 럭에게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해 말을 한다. 그 대가로 요나는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 얘기를 들은 럭은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구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비상선언>을 보고는 감동이 아닌 찜찜함을 느꼈는데, 그건 국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의 유무 때문인가. 무이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조직이 작정을 하고 재난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앞에서 힘없는 개인이 그것에 수동적으로 당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영화 속 한국은 분명 국가 시스템이 존재한다. 국토부장관이 움직이며 다양한 공조직의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은 영 힘을 못 쓰고 송강호의 개인적인 희생으로 인해 사건이 마무리 된다. 만약 송강호가 없었다면... 만약 송강호의 아내가 그 비행기에 타지 않았다면....


올여름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국가와 정치인들은 나몰라라 했다. <비상선언>의 찝찝함이 리얼리즘처럼 보였다. 기후위기로 이런 자연재해는 더 잦아질 거라고 했다. 나 분명 이 책 재밌게 감동적으로 읽었는데... 무이는 소설 속 이야기라고만 느꼈는데.... 책 뒤에 실린 비평의 말처럼 무이의 보이지 않는 거대 조직은 우리가 이미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겠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 매일을 소중히 즐겁게 살자는 이상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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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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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 소짱에게 빌린지도 몇 년 된 거 같은데 이제야 읽었다. 책은 정말 좋았다.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들을 아주 잘 읽었다. 제목이 끌려 <질병 통역사>를 제일 먼저 읽었는데, 막 읽기 시작했을 땐 조금 심심한데 싶었다가, 인물의 욕망이 서서히 드러나는 부분부터 몰입해서 읽었다. 그리고 계속 하나씩 드러나는 엇나가는 마음과 여행가이드와 원숭이라는 장치, 해피엔딩이 아닌 결말까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열람실에서 딱 한 편을 읽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내가 읽고 싶었던 단편 소설이 이런 거였어! 라는 생각을 했다. 잘 쓴 소설을 읽는 쾌감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그 뒤로 책에 실린 단편들을 하루에 한 편씩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책에 실린 모든 단편이 좋았지만 특히 <질병 통역사>와 <섹시>,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 <일시적인 문제>가 정말 좋았다. 한국 소설을 읽을 땐 너무 친숙하고 익숙한 배경과 공간이어서 인물에게 확 몰입하게 되는데, 외국 소설, 그것도 미국으로 이민 온 인도인이 나오는 소설을 읽으니 낯선 배경들을 글로만 짐작하고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읽어야해서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기보단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인물의 감정뿐만 아니라 소설의 구조나 전체적인 설정들도 눈에 들어와 소설을 읽는 재미가 더 컸다. 내용이 말랑말랑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어긋남과 헤어짐을 주로 그리고 있는데, 그래 이게 인생이지..^_ㅠ 엔딩으로 갈수록 소설들은 아린 감정을 그려내는데, 그것은 슬픔과는 또 다른 것이고, 인생이 뜻대로 안됨을 받아들여야하는 자의 아린 기분... 이런 점이 소설의 여운을 짙게 한 것 같다. 그리고 작가가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도 좋았다. 인물들이 내가 살아가면서 마주치기 힘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고 공감되어서 옆집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들이 겪는 일상적인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소설 속에 담아내는 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고 오히려 현재의 내 삶을 잠시나마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이민자로서 여러 어려움을 겪지만 불평불만이나 자기연민을 늘어놓지 않는데, 나는 내 처지에 불만불평만 하고 산 것 같아... 이제 그만 나도 뚝심 있게 내 힘듦을 헤쳐가고 꿋꿋하게 살아가야지. 그리고 이제 잘 쓴 단편 소설들도 많이 찾아 읽어야지... 뜻대로 안되는 인생의 씁쓸함과 단순한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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