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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로스쿨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로스쿨 라이브
박재훈 지음 / 들녘 / 2021년 5월
평점 :
친구가 빌린 책 다시 빌려 읽기.... 이런 거 좋아해..... 책이 재밌어 보였다. 온갖 험담, 뒷담, 폭로가 재미 없기 힘들지. 하지만 기대보다 순한맛(?)이었다. 살면서 한번도 꿈꿔본 적 없는 직업이 법조인, 외교관, CEO 이런 것들이라 법조계는 어떤 곳인지, 로스쿨 생활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로스쿨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도 비교적 최근에 알았고, 그래서 누가 로스쿨 들어갔다고 들으면, 아 그렇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지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마찬가지로 로스쿨 들어가면 그렇게 고생하는 줄도 몰랐다. 그렇다고 책의 부제처럼 로스쿨 생활이 딱히 드라마틱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공부 내용이나, 법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건 거의 없고, 학교 생활 동안 만났던 기가 차는 사람들 이야기, 납득할 수 없는 로스쿨 제도와 교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어딜 가든 찾을 수 있는 모순과 환멸들이었다.
한국에서 야망을 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부딪히게 되는 벽이 수험생활인 거 같은데(나처럼 단지 생존을 위한 업을 구하려해도 겪어야하지만), 나는 그걸 고등학생 때 너무 힘들게 겪었다. 책에 나오는 로시오패스는 고등학생 때의 나 같았고, 어릴 땐 뭐가 뭔지 모르니깐 명문대가 너무 가고 싶으니깐 스스로를 마비시켜서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 공부했다. 그리고 그때 생긴 안 좋은 습관이나 성격 같은 것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효율을 극대화하는 걸 추구하고, 무언가를 실패했을 때 큰 좌절감을 느끼는 것, 남의 일에 쉽게 냉소적이게 되거나 영혼 없이 반응하는 것, 충분히 잘하는데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 등등... 시험 공부가 제법 잘 맞고, 수험 생활을 잘 이겨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타입은 아니다. 희망찬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고, 그러다보니 수험 기간에도 내내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니 고등학생 시절과 최근에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시절 하나도 미화시키고 싶지 않고 그냥 부끄럽고 안타깝게 느껴지고, 한국에서 태어나 제일 원망스러운 게 가장 좋은 나이를 그런 식으로 보낸 것인데...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나는 원하는 대학에 갔고, 직장도 구해서, 멘탈적으로는 회복했기에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해 더 할 말은 없다.
왜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은 항상 변한다. 물론 이는 변호사가 되고자 한 이유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 최근에는 변했다. 한 줄로 간결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돈 때문이라고. (p.268)
돈은 중요하다. 한달 월급 168만원 받는 말단 공무원은 일할 의욕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 위한 준비를 할 의욕 또한 없지.... 왜 공무원이 되었는가? 글쎄요.. 모르겠네요... 할 게 없어서, 사기업 들어갈 자신 없어서, 들어가서도 버틸 자신 없어서, 칼퇴하고 싶어서(못함)... 그냥 이제 더이상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 열심히 살아야 좋은 보상을 받는다는 말 참 싫고, 열심과 보상은 별개의 것이고, 보상을 위해 열심히 사는 건 내게 너무 처절해보이고, 살다보면 어쩌다 한번씩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순간도 오는 거지.... 적당히 살고 싶다, 즐겁게 살고 싶다. 재밌게 살고 싶다, 여유롭게 살고 싶다. 하지만 일터에 나가면 쫓기듯이 일하기 부지기수고 에휴 돈이라도 많이 벌자는 그 마음 이해 간다. 하지만 정말 돈 때문일까?
저자의 말처럼 나도 한국 사회의 이중성에 진절머리가 난다. 좋은 가치들을 얘기하면 그걸 빌미삼아 그 사람을 갈아서 일을 시킨다. 정의, 희생, 봉사, 열정... 이런 아름다운 가치들은 이 나라에선 인간을 갈기 딱 좋은 단어가 된다. 그러니 이런 것들로부터 멀리멀리 도망쳐야해... 그래서 우리는 사실 마음 속에 소중한 가치를 품고 있어도 겉으로는 '돈'이라는 말로 퉁치는 게 아닐까. 그건 사실 K일터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 같은 거 아닐까. 돈 때문에 해요, 라고 하면 더이상 할말이 없으니. 내 입장에선 돈보다 시간과 건강이 중요하니, 칼퇴하려고 해요. 아니 이건 백프로 진심이구나. 돈 때문이란 말도 백프로 진심일 수 있겠네. 저는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쓰고 싶어요... 그렇다고 내가 지금 태평하게 일하는 건 절대 아니고, 주말에도 가끔 일 생각나면 짜증나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겨우 한 푼 더 벌 바에야, 직업을 바꿔 떼돈을 버는 게 나을지도.
이 책을 읽고 로스쿨 생활의 치열함은 살짝 알게 됐지만 법조계 어떤 곳인지 변호사는 무슨 일을 하는지 여전히 하나도 모르겠다. 사실 이런 직업군 이야기는 책으로 읽는 것보다 실제로 만나서 가감없이 들어봐야 낭만없이 알 수 있는데, 들어봤자 엉망진창인 건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버는 돈은 아주 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