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리커버 특별판, 양장)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컬렉션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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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리커버 표지가 예쁘다는 이유로 산 책... 그러곤 책장에 오래 쳐박아뒀는데 문득 읽고 싶어졌다. 무엇보다도 얇은 두께가 마음에 들었다. 소설은 재밌다. 내용 자체도 재밌지만 서술 방식이 특히 재밌다. 시간 순서도 아니고, 사건과 범인을 앞장에서 미리 알려주고, 사건에 대해 알고 싶게 만들면서도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하길 거부하는 방식.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사건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과장하고 왜곡하며 서술하면서도 그것이 팩트인마냥 전달하는 언론을 꼬집기 위해 이런 식의 서술 방식을 택한 걸까.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을 때처럼 지금과 너무 비슷한 모습이라 놀랐다. <수레바퀴 아래서>만큼 오래된 소설은 아니고 비교적 최근의, 50년 전의 작품이지만. 물론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있고(댓글뿐만 아니라 SNS에 퍼나를 수도 있고) 그 댓글로 또 팩트인마냥 루머를 덧붙일 수 있다. 반대로 피해자를 비롯해 당사자들도 SNS로 자신의 입장을 직접 얘기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사람들도 언론이 하는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하지만 언론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당연하게 여겨지는 아이러니). 대놓고 가짜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도 있다. 과거에 비해 세상이 더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비교하는 일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의 뻔뻔함은 정말 토나오네. 그런 점에서 블룸이 살해한 사람들이 기자들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소설 자체로만 보면 엔딩이 제일 충격적이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거나 대단한 비밀이 밝혀지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 갑자기 뚝 끊기는 엔딩이 이 이야기를 더더 알고 싶어 한 나를 마주하게 하고,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한 잔혹한 사건 현장을 묘사하는 일이 없고, 오히려 이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하면 안된다고 서술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p.13 여기서 피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단지 부득이한 경우의 정도 차이는 불가피하다. 그러니 이런 광경에 관해서는 텔레비전과 영화, 혹은 이런 종류의 공포물과 뮤지컬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에서 무언가가 흐르고 있어야 한다면, 그건 피가 아니다. 아마도 약간의 채색 효과만 내야 할 것이다). 정말 그런 잔혹한 상황 설명이 왜 필요한가. 동시에 이런 서술은 블랙코미디처럼 다가와서 조금 웃기기도 했다. 주인공 블룸이 여자로 설정된 것 또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언론의 여성혐오적 성향은 지금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그땐 얼마나 더 심했을까. 머리가 아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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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메모 -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28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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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이란 이름은 듣자마자 잊을 수가 없었다. 우리집 고양이 혜윤이랑 같은 이름이어서... 그래서 이름만 듣고도 절로 호감이 갔다. 그러다가 아무튼 시리즈에서 '메모'에 관해 썼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읽어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메모에 대해 어떤 낭만을 품고 있기 때문에.... 


메모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메모에 대한 어떤 로망은 있다. 우선 ‘메모’라는 말소리가 좋다. 메모.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소리. 외국어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한국어. 울림 소리가 무언가를 채워주고 싶게 만든다. 한글로 쓴 '메모'는 미음이 두 개나 들어있는데 마찬가지로 그 안을 채우고 싶다. 동시에 그 네모에는 어떤 여유가 느껴진다. 반드시 꽉 채워야할 필요는 없는 여유, 뭐든지 받아줄 것 같은 여유. ‘메모가 뭐야?’라고 물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무 종이에다가 하는 간단한 기록’이다. 혹은 ‘어떤 책이나 수첩에 짤막하게 적은 단어’ 같은 이미지도 떠오른다. 이런 메모의 행위나 결과물에도 어떤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느슨한 단어가 주는 편안함. 이처럼 내게 메모는 말소리와 글자 모양과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 이 세 개가 절묘하게 딱 맞아 떨어지면서 각각의 여유로움을 갖고 있는 매력적인 단어다. 


메모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된 두 번째 요인은 어렸을 때부터 들은 '메모하라'는 말 때문이다. 많은 자기계발서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메모하는 습관인데, 그 성공한 사람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아인슈타인이라고 하니,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사용하라'와 같이 실행하기도 어렵고 삶을 꽉 죄는 생활습관에 비해 '메모하라'는 조금 귀찮더라도 해볼만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생각했던 걸 잊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메모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알기에 자기계발서에 나온 내용이라도 거부감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가 메모와 꽤 멀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나의 보수적인 무의식, 고리타분한 편견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메모'라는 말을 들으면 수첩에 손으로 쓰는 것을 상상했는데(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다!) 지금도 그런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것은 실제로 하면 귀찮고 하찮으며 무질서한 일이지만 머리속으로 상상했을 땐 꽤 낭만적이고 진지한 일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흘러 에버노트처럼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쓸 수 있는 메모장을 이용해오긴 했지만 손으로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은 여전히 잘 안하기에 나는 아직도 스스로를 메모하는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메모하는지, 무엇을 메모하는지, 메모한 건 어떻게 관리하는지. <아무튼, 메모>에는 정혜윤식의 그 모든 것이 있었다. 편리하고 능률 좋은 메모 어플을 소개하진 않지만, 손으로 직접 메모들을 쓰게 된 계기, 메모를 해온 방법(문장 노트들), 메모의 내용까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자꾸 이건 내가 떠올렸던 메모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메모라기보단 필사? 글쓰기?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메모처럼 보이지 않았다. 메모초보자의 눈에는 너무 대단한 메모들처럼 보였기 때문일까? 메모가 어디에 쓸모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내게 메모란... 해놓고도 금방 잊혀지는 것인데... 메모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하는 거구나... 꽤 정성이 필요한 일이네... 그런 생각들이 스쳤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애지중지한 문장 노트에 관한 이야기가 좋았다. 수집한 문장을 손으로 쓰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빈공간에 펼쳐나가고, 읽고 또 읽는 일. 그리고 그 메모가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는 일. 메모를 한 뒤 내가 잘 안하는 일 중 하나가 메모한 걸 읽는 일인데... 작가는 메모한 걸 보고 또 보며 아주 열심이었다.


아주 잠깐 나도 작가처럼 문장을 메모하는 노트를 만들어볼까 했지만, 손으로 무엇을 쓰는 것을 즐기지도 않고, 내가 쓴 글씨를 보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 나이기에 관뒀다. 그래도 물리적인 종이로 보는 건 좋은 것 같다. 손으로 쓰진 못해도 컴퓨터로 써서 프린트해서 봐야지. 핸드폰 타자기로 아이디어를 기록한 후 화면으로 보는 일은 낭만이 사라진 느낌이다. 물론 손으로 쓰는 것보다 (검색하기도, 다시보기도, 수정하기도) 아주 편리한 건 반박불가지만... 그리고 블로그도 메모장처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공개 블로그를 쓰는 이유는, 비공개 블로그는 쓰는 정성이 줄고 써놓아도 다시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공개 블로그에 쓰는 글은 부족하더라도 나름의 정성을 쏟아서 쓴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볼 의향이 생긴다. 하지만 비공개 블로그에 쓴 글은 대충 쓰고 퇴고도 거의 안하고 내용도 거칠어서 다시 보기가 부끄럽다. 이렇게 잊혀지고 버려지는 메모의 쓸모는 무엇일까. 하지만 메모가 일일이 쓸모를 다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 그래도 이왕 메모를 남길 거면 쓸모 있는 메모를 남기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욕망이고....블로그나 열심히 해야겠다. 많이 기록하고 많이 남겨야지. 내겐 블로그가 메모장 같은 존재... (하지만 제일 이상적인 것은 비공개 블로그나 사적인 메모장을 더 활발하게 쓰고, 과거에 내가 쓴 메모를 참조하고, 내가 쓴 걸 다시 읽고 뻗어나가는 게 아닐까. 공개된 공간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니깐. 나도 메모 고수가 되고 싶다는 말이다..)


한편 이 책은 그 내용이 조금 두루뭉술하고 뜬구름 잡는 느낌이라 아쉽기도 했다. 꿈에 대한 이야기, 너와 나 우리에 대한 이야기, 좋은 것과 나쁜 것, 더 나은 사람이 되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 등등... 명확한 주제없이 삶에 대한 추상적인 이야기들을 아주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지나가니 읽고나서도 내가 뭘읽었나 싶었다. 자기계발서 느낌도 나고... 맥락 없는 메모를 읽을 때의 기분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고(그럼..! 이 책은 아무튼 '메모'니깐). 그럼에도 책의 후반부에 실린 태평양전쟁과 조선인 전범에 대한 메모는 아주 강렬하게 읽었다. 내가 한번도 의식해본적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작가의 책보다 작가의 본업인 라디오 다큐멘터리가 더 궁금해졌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직접적이고 실제적으로 메시지를 알리는 모습도 너무 멋졌다. 이 작은 책으로는 그가 진짜 힘을 쏟고 있는 것의 아주 일부조차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정혜윤 작가를, 그가 보는 세상을 더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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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 Art+Business 시리즈
로저 코먼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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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금정연 덕분이다. 2년 전 아무책방에서 금정연과의 만남 때 토크 제목이 '나는 어떻게 백 편 이상의 서평을 쓰고 한 푼 정도밖에 벌지 못했나'였는데, 로저 코먼의 이 책 제목을 패러디한 거라고 금작가님이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금작가님은 가방에서 이 책을 잠시 꺼내셨는데, 책에 대한 별 말씀은 안하셨지만, 작지 않은 책의 크기와 B급 디자인을 표방하는 듯한 표지가 뇌리에 박혔다. 책 제목을 패러디 한 것은 제목이 재밌으니까 그러려니 할텐데, 작가님이 이 책을 직접 챙겨오신 걸 보니... 금작가님이 이 책을 정말 애정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언젠간 읽어보겠다고 하고 이번에 읽어봤는데 책은 핵꿀잼이었징...


사실 로저 코먼은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책날개나 서문에 적혀 있는 영화계의 전설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이름은커녕 그가 만든 영화조차도 아는 게 없었다. 그렇다면 책 제목도, 날개도, 서문도 다 과장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적어도 책으로 읽은 그는 정말 전설 같은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업 방식이 믿겨지지 않았는데, 보통 장편 영화는 2주 정도면 완성하고, 어떤 영화는 이틀만에 찍고, 영화를 찍은 후엔 세트를 부숴버리기가 아까워 빠르게 다른 시나리오를 써서 한 편 더 찍고, 현장에 무슨 일이 생기면 휴차를 때리는 게 아니라 재빨리 대사와 지문을 수정하는... 이런 식이다. 그러다보니 할리우드에서 100편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있고(실제 제작한 영화까지 300편이 넘는다고 한다), 악착같이 돈을 아끼기 때문에 한 푼도 잃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저예산 장르영화, 소위 B급 영화라 부르는 분야의 대가인 셈이다. 요즘 영화 시장에서 이렇게 작업하는 건 불가능할 거 같고, 아마 그 당시에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텐데 정말 대단한 사람인 건 맞는듯...


미국이라면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영화계가 굴러갈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나에게 그의 메이저를 거부하는 태도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규정을 어기진 않지만 맹목적인 관료 기질은 경멸한다. 괜히 한번 참견해보는 관료화된 메이저들과 같이 일하는 것을 못 견디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모든 영화를 엄청난 속도로 찍는 모습이 그리 낯설진 않았는데... 한국에서도 웹드라마는 하루에 80컷 이상 찍는다는데(진짜??).. 그러니깐 이런 빨리빨리의 제작 방식이 K스러웠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한국 저예산 독립영화 제작자들보다 스탭들에게 봉급은 잘 줬겠지. 그러니 K스럽다고 하진 말아야지. 아무튼 이럴 수 있구나! 이게 가능하다니! 라며 계속 경탄하며 읽었다. 산에서 스키 영화를 찍은 썰, <양동이에 가득한 피>와 <공포의 구멍 가게>를 찍은 썰, <이지 라이더> 제작을 거절한 썰, 폭주족들을 직접 만나 <와일드 엔젤스>를 찍은 썰,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공중전을 다룬 <폰 리히토펜과 브라운>을 찍은 썰 등등 정말 주옥같은 썰들이 많았다.


신기하게도 그의 작업 방식을 보며 에릭 로메르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완성된 영화의 스타일적인 면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정반대에 있지만, 작업 방식에 있어서는 접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스탭과 절약 정신! 꼭 저예산 영화라고 로메르처럼 찍을 필요가 없다는 걸, 코먼처럼 찍을 수도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배웠다. 요즘따라 내가 영화를 보며 자주 생각하는 것이 영화 제작이 굉장히 낭비적이고 환경오염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코먼의 제작 방식은 이런 낭비를 최대한으로 줄인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아는 그의 대표작이 없다는 게 좀 아쉬웠다. 아니, 오히려 숨겨진(?) 보물 같은 감독을 만난 것 같아 더 기뻤다. 그의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프란시스 코폴라나 마틴 스콜세지, 잭 니콜슨, 제임스 카메론 등등 그의 현장을 거쳐간 거장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리고 상스러움! 그의 영화는 굉장히 상스러울 것 같은데 아마 시네마테크에서 그의 영화를 볼 수 없는 이유도 그의 영화가 무겁고 진지한 영화가 아니라 지나치게 상스러운 영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저예산으로 똘똘 만든 그의 상스러운 영화들을 상상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코먼의 엄청난 추진력과 실행력에도 놀랐지만, 그의 시류와 시장을 읽는 눈에도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주아주 빠르게 변화하는 사람이고, 그 변화를 즐기는 사람이다. 분명 그는 요즘 시대에 태어났어도 영화 산업에서 잘 살아남았을 것이다. 요즘 시대의 한국 영화계에서는 힘들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영화 제작의 상업적인 측면, 즉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또 돈을 절대적으로 벌어들여야하는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그만큼 이 책에는 돈이 많이 나온다. 코먼은 돈을 절약하는 것과 예술적인 기량을 발휘하는 것이 상충된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단 한번만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발휘되는 예술적 재능이 우리에겐 있다. 그것이 B급 영화의 묘미가 아닐까. 이제 B급 영화는 극장에서 보기 힘들지만, 그나마 나오는 B급 스타일의 영화도 사실은 B급처럼 보이는 A급 영화들이지만, 내가 나중에 월급을 모아 정말 코먼처럼 저예산 장르 영화를 만든다면 그건 진짜 B급 영화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꿈이 생겼다. 어처구니 없는 저예산 장르 영화 만들기...(사실 내가 5년 전에 동아리에서 찍은 단편 영화가 돈도 없고 어처구니도 없는 단편 영화였다만...). 그러기위해 먼저 내겐 없고 코먼에겐 있는 것들을 생각해봐야지. 어마무시한 추진력, 머뭇거리지 않는 결단력, 돈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아끼는 정신(시간이 돈이다!),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정신 등등.. 그런데 진짜 코먼다운 것은 이런 것들이 부족해도 그냥 지금 당장 바로 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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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말들의 흐름 1
정은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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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말들의 흐름 시리즈를 충실하게 읽고 있네... 딱히 커피에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흡연자라서 원래 <커피와 담배>는 읽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정은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핸드드립 대충 맛있게 내리는 법 영상을 보고, 따라 해봤는데 정말 커피가 놀랍도록 맛있어져서 작가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가 급상승했고 그래서 책까지 읽게 되었다. 책에는 커피 맛있게 내리는 법, 담배 맛있게 피우는 법 같은 건 안나온다. 그저 한 명의 커피와 담배 애호가의 일상과 사연을 담은 책이다.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들이랑 비교하게 되는데, 이전에 읽은 다른 책들보다 좀 무난했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에 대해 쓴다면 보통 이런 식으로 쓸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예찬,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에피소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예찬 한 번 더 반복하고, 또 그것과 관련된 에피소드, 그것에 애착이 생기게 된 계기 등등.. 동시에 커피와 담배는 조금 불리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깐 영화나 시나 산책은 어떤 매체적인 특성이 있다. 그것 자체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와 시와 산책은 어떤 것을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그에 비하면 커피와 담배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그것이 담고 있는 재밌고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헤치기 보다는 그것의 아우라나 분위기를 써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 반한 순간이나 커피를 예찬하는 시를 작가는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커피와 담배를 잘 모르는 내가 커피와 담배와 이 책을 모욕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영화와 시와 산책도 잘 모르는 독자이기에 그렇게 봐주지는 말길... 아무튼 그래도 나는 재밌게 읽었다. 커피와 담배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는 독자로서 이 책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은 작가 정은이었다. 그가 지나온 연애, 순례, 절, 알바, 카페 운영 등등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고 신기했다. 맨날 비슷한 일만 하는 나로서는 그의 넓은 경험의 폭이 부럽기도 했다. 물론 유쾌한 경험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일들은 읽을 때마다 씁쓸했다. 아, 그리고 원래는 이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서 '커피와 담배'를 다룬 단편 시나리오를 쓰려고 했는데(궁금하신 분은 내 마지막 이전의 마지막 영화 일기를 보라... 그 글에 시나리오가 실려 있는 건 아니지만...) 아쉽게도 시나리오를 위한 영감은 받지 못했다. 그래도 마지막에 실린 소설같기도 하고, 매일 마주하는 커피와 담배 같기도 하고, 꿈 같기도 한 '커피와 담배'를 제목으로 달고 있는 이야기는 영화로 보고 싶을 만큼 좋았다. 돌고 도는 꿈, 커피, 빈잔, 냅킨, 사진, 예언, 운, 스타벅스, 담배, 손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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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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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전에 로버트 에거스의 <라이트하우스>를 보면서 영화에 노인도 나오고 바다도 나오길래 <노인과 바다>가 읽고 싶어졌고, 때마침 그보다 한달전에 읽은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에서 박혜진이 일년에 한 번은 꼭 <노인과 바다>를 읽는다고 했던 게 생각나 이번에 읽어보았다. 말그대로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인데, 노인이 아주 커다란 청새치를 잡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큰 감동을 받았다거나 대단해보이기보다는 오랜만에 인간의 투지력을 느꼈던 작품이었다. 소마이 신지의 <물고기떼>가 생각나기도 했고(다시 보고 싶다는 말!)... 무엇보다도 자꾸 물고기가 나오니깐 계속 초밥이나 사케동이나 회 같은 게 생각나서 읽기 힘들었네... 결국 읽다가 못 참고 사케동을 한 번 사먹었다(아주 맛있었음!)


주인공 산티아고가 직업적으로는 어부이지만, 내게는 그가 노인이라는 처지가 더 크게 다가와, 읽으면서 '왜 저렇게까지?'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왜? 대체 왜?? 무엇이 그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거지?? 이 소설의 가장 스릴 넘치는 부분 또한 주인공이 노인이라는 점이었는데... 내가 한 이런 생각들, 왜 집에서 편히 쉬지 않고 굳이 혼자 멀리까지 나가서 이틀 낮밤을 꼬박 새우며 청새치와 싸울까...라는 생각 때문에 노인에게 이입하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그가 겪는 일은 거의 재난에 가까워 보였는데... 그 앞에서 포기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맞선다는 게 내가 잠시 잊고 살아온(혹은 이미 완전히 잃어버린) 인간의 투지력인가. 인간은 원래 이런 존재인데 잘못된 과다경쟁 사회가 순수한 열정과 투지력에 먹칠을 한 것인가. 하지만 다 읽고나니 그건 결국 그가 노인이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깐 만약 그가 젊거나 어리다면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지만, 노인이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젊은 사람은 내일의 희망도 있고 성취할 수 있는 힘도 있다. 어린 사람은 성취할 수 있는 힘은 없어도 내일의 희망이 있다. 하지만 노인은? 노인은 희망도 없고 힘도 없다. 그러니 이 기회가 그 누구보다도 절박하게 느껴졌으리라.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내게 큰 감동으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건 이 소설이 갖고 있는 허무감을 내가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단순한 이야기가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노인이 청새치를 잡음으로써 소설이 끝나는 게 아니라 잡은 청새치를 상어들로부터 잃어가는 과정까지 생생하게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훨씬 중시하는 21세기의 한국 사회에서 자라온 나로서는 끈질긴 노력과 투지로 획득한 청새치를 조금조금씩 잃어가는 게 참 읽기 힘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과정을 차분하게 받아들이며 상어들과 싸우는 노인의 성숙한 태도가 아름다워 보였다.


어떤 면에서 혼자 바다에서 커다란 고기를 잡고 싶어하는 마음은 자발적으로 우주에 가고 싶어하는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 목숨을 걸고 자연에 도전하는 일. 망망대해 속에서 자연과 온몸으로 부딪히는 일은 확실히 사무직이나 제조업처럼 공산품의 세상에서 하는 일과는 다르다. 노인은 가난하지만, 돈 때문에 홀로 먼 바다까지 나가 며칠 밤을 새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인이 자신의 직업과 자신이 이뤄내고 싶은 것이 일치하는 게 좀 부러웠다. 그러니깐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게 일치하지 않는다. 사회는 끊임없이 직업에 우열을 매기고, 일에 대한 순수한 욕망과 자긍심마저 왜곡시킨다. 그러다보니 삶에 의욕이 없어지고, 투지는 사라진지 오래다. 노력이라는 말에 쉽게 곤두서게 되고, 일에 열중하는 것에 선을 긋게 된다. 그러다보니 무언가에 온정성과 온힘을 쏟는 것에 점점 무덤덤해진다. 결국 노인을 보고 애써 내가 찾은 답은, 좋으니깐, 정말 좋아서 하는 거구나! 라는 말뿐. 싸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가봐(팔씨름 일화를 보라...) 그게 아니라면...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다시금 묻는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이야기가 가져오는 감동은 어디선가 길들여진 감동이 아닐까. 혹은 나는 어째서 이런 이야기에 감동이 아닌 염증을 느끼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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