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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생활 ㅣ 창비시선 270
이병률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지난 겨울 밤에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
툰드라에 사는 한 에스키모 부족의 마을에서 오로라가 너울거리던 어느 밤에 예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더군.
그때 별이 하나 떨어졌는데 그 기운이 심상치가 않아 마을의 늙은 주술사가 별의 길을 더듬어 보더니, 옆사람을 죽게 할 운명의 별이라, 그래서 그 기운을 타고 난 그날밤의 아이를 죽여야 한다 했다네.
어딘지 모를 곳에서 부터 전해오던 다른 이야기들처럼
엄마는 아이를 안고 한밤을 타 멀리멀리 도망을 갔다더라구.
툰드라 땅은 넓고도 넓어 도망을 간 곳도 산도 하얗고 땅도 하얗고 바다도 하얗게 얼어있는 그런 곳이었고, 아이는 그곳에서 자랐다는거지.
별의 기운을 떨치기 위해 달이라 이름지운 그 아이는 얼음같이 눈같이 자라 예쁜 처녀가 되었고 아주 가끔, 1년이나 2년에 한 번 지나가던 유목 에스키모들과 잠깐 말을 섞는 것이 삶의 바깥에서 타인을 만나는 전부였다고 했어.
그래도 사랑은 있었고, 잠깐의 사랑은 그날의 별을 닮은 아이를 데려다 주었고 그 보다 조금 전에 죽은 엄마를 대신해서 별같은 아이는 아무도 없는 땅에서 달의 딸이 되었고 친구가 되었고 동반자가 되었다지.
하지만 둘만 사는 땅에는 주술사가 없어 별같은 딸의 운명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별같은 아이가 ,
별같은 아이를 낳던 달만큼 자랐을 때, 길을 잃은 나그네를 거두어 들였고
둘은 모두 그를 사랑했지만 나그네는 별같은 딸과 물이 얼면 그 위를 걸어 건너 그곳을 떠난다 했다지.
떠나기 전날, 나그네가 물이 얼었는지 보러 가고 별같은 딸이 짐을 꾸리며 이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달은 별같은 딸을 죽여 그 가죽을 뒤집어 쓰고 나그네를 기다렸다더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말도 안되는 소린지는 가릴 것이 있나. 그저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건데,,,,
달은 별같은 딸과 나그네를 다 잃고 죽도록 외롭고 아프다가 죽었겠지. 이건 내 생각이야.
....
달이 처참한 남은 날들을 견디는 동안 그래도 가끔 고개들어 하늘을 보며 잠깐 웃던 일이 있었다는데...
오래전 달에게도 사랑이 있었을 때, 그 사랑이 덫을 놓아 잡은 짐승을 질질 끌면서 달에게로 오던 기억.
하얀 땅 위에 환상처럼 실제처럼 그 사랑과 그 짐승을 함께 먹기도 했다지 아마.
웃지도 울지도 못하던 달이
찌그러지기 직전이었다지 아마.
그 짐승의 고기가 달의 숨통을 끊었다더군,
당신이 내게 오던 길에 들은 이야기라더군.
...........
내게 그 이야기를 해준 당신은
덫을 놓아 잡은 짐승을 질질 끌고 와서는 내 천막 앞에 내려놓고
그 이야기를 해주고는
무릎이 빠지는 눈길을 돌아갔고
당신이 간 길을 눈이 눈이 다시 메워버렸어.
먹고 남은 짐승의 살을 얇게 저며 말리고 있어.
당신 다녀 올 일천오백년동안 다 말려두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