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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비글은 어디에 있을까?
로이 H. 윌리엄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더난출판사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고백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처음 들었을 때 그저그런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는“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웃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성적 회피적)과 비글(직관적 도전적)의 대비는 “누가~”에 나오는 난쟁이 인간(걱정이 많고 머리만 굴림)과 쥐(현실 파악 후 본능에 따르는 행동파)의 대비와 너무나도 닮았지 않은가. “누가~”가 공전의 히트를 친 후 잇따라 비슷한 류의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더니, 이 책도 그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대충 읽어내렸다. 그리고 이 책의 백미인 여섯명의 토론장면이 나오자마자 난 박장대소를 했다. 어쩜 이렇게 “누가~” 와 똑같은 구성일까! 우화가 끝나자마자 그것의 내용을 놓고 짐짓 심각한 체 하며 책광고를 하는 책은 “누가~” 하나만으로 족한데. 그런 생각들을 해가면서 ‘그래, 한 번 손에 든 책이니까 끝까지 읽어주마.’라는 거만한 태도로 소설 끝에 붙어있는 독자토론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토론을 읽어나가다보니 등골이 서늘해지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과 여러 분야의 전문가인 독자들이 생각하는 심각하고 전문적인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며 모두 다 작품에 딱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책을 너무 가볍고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 때에 나온 결정적인 증거. 저자가 처음부터 서로 다른 여섯 개의 해석이 맞아떨어지는 신비한 책을 만들기로 작정했다는 발행인의 선언. 나는 순간 작가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겉으로는 평범한 모험 이야기이지만 사실 이 책은 서로 다른 여섯 개의 심도있는 학문과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평범한 모험이야기라는 발행인, 문학적으로 오즈의 마법사의 복제판에 지나지 않는다는 문학평론가, 사업적인 수완을 다룬 책이라는 사업가, 기독교의 교리를 담았다는 목사, 인간의 뇌와 심리를 다루었다는 신경외과 의사, 끈기와 인내로 역경을 헤쳐나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자기계발강사. 이 모든 이야기는 옳다. 그리고 작가가 노리는 바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의미를 의도적으로 담고 있는 책. 바로 그것이 이“내 비글은 어디에 있을까 이다. 그런데 이 여섯 개의 해석으로밖에 이 책을 설명할 수 없을까? 그 밖의 다른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어느 작품이던 작가가 생각한 이상의 내용, 작가의 무의식을 담고있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어느 텍스트건간에 누군가에게 읽히는 순간 그 텍스트는 오롯이 본래의 텍스트로만 남아있을 수는 없다. 이미 독자의 시선을 받는 순간 텍스트는 독자의 경험과 사상을 통해 그 의미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학적 방법을 도입하여 책을 읽는 것을 즐기는 나는“내 비글은 어디에 있을까”의 일곱 번째 의미를 찾기위해 노력하였고 끝내 이 일곱 번째 의미를‘여성의 세기가 도래하였다’로 결론내렸다.
내가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데는 크게 세가지의 근거가 있다. 첫 번째로 이 책은 끊임없이 두 사상을 대조한 후에 그 중 한가지 사상을 지지하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좌뇌와 우뇌 중에서는 우뇌, 회피와 도전 중에서는 도전, 네모도시와 데스티나이 중에서는 데스티나이. 그리고 이 모든 모험을 헤쳐나가며 자신의 가치관과 사상을 바꾸는 주인공. 이는 마치 중세에서 근대(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 또는 비과학적에서 과학적으로의 변화)로 넘어오는 세대 교체의 혼란함과 닮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세대 교체가 어째서 여성 세기의 도래인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두 번째 근거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두 번째 근거는 모든 인물이 남성인 이 책에서 유일하게 여성인 존재가 비글인 인튜이션(후에는 희망이도 포함)이라는 점이다. 처음에 비글을 천하게 여기고 싫어하던(‘입냄새가 난다’는 혐오적인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주인공이 마침내 비글을 받아들이고 결국 비글에 의존하며 비글의 의견에 따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주인공의 변화는 주인공의 결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그 가치를 더욱 뽐낸다. 주인공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비글은 세대교체의 주체가 여성임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상징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 근거는 여성 특유의 재생산의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 되었다는 면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비글은 한 마리로 끝나지 않는다. 만약 한 마리 뿐이었다면 이 책의 내용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며 어쩌면 비극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비글 인튜이션은 암컷이었고 두 마리의 새끼 희망이와 믿음이를 낳았다. 그리고 책의 후반에서 이 두 새끼의 활약은 이따금 어미인 비글을 능가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 둘의 활약이 어찌되었든간에 ‘비글 인튜이션의 새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진정 중요한 점은 바로 이 점인 것이다. 작가가 의식적 행동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작가는 여성의 특성이 유용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길들여진 이성과 혼란의 남성의 세기가 끝나고 여성의 세기가 도래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맨 끝의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믿음이와 희망이가 아주 어렸을 때 벌어졌던 일이다” 라는 문장은 여성체(女性體)에서 나온 믿음이와 희망이(둘은 남성과 여성의 성격을 대조적으로 갖고 있지만 직감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며 이는 이 둘이 모두 여성의 대표격인 비글의 몸에서 나왔기 때문으로 사료된다.)가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는 주역이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글에 다름아니다. 작가는 여성의 특성이 유용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혼란과 무질서의 남성의 세기가 끝나고 여성의 세기가 도래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책을 다시 읽는 내내 나는 상당히 즐거웠다. 평범하게만 보이던 책이, 나의 시선을 바꾸자마자 이렇게 새로운 도전거리를 던져주는 심도있는 텍스트가 되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아마 나같은 과정(책의 부정-의문-긍정-새로운 해석)을 거치리라 본다. 그럴 때는 책 맨 끝에 수록된 “자유토론” 이라는 이름의 문제들이 독자의 방황을 도와줄 것이니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라도 잘 참고하며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벗겨도 벗겨도 끝없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양파와도 같으니 부디 독자여러분, 대충대충 읽고 던져버리지 말고 저자와의 지적인 싸움을 즐기며 천천히 읽어나가시길.
사족 :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러스트도 책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한 몫을 단단히 했다. 크로키처럼 자유로우나 때로는 역동감있게 그려진 일러스트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매력적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