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in 말 - 예수님처럼 말하기
로랑 데볼베 지음, 권새봄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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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재작년 1월부터 캐스리더스(가톨릭출판사 서평단)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달 캐스리더스 도서는 3가지 책 중에서 선택권을 주셨는데 저는 고민 끝에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로랑 데볼베의 <마음 in 말>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로랑 데볼베는 파리 변호사 협회 소속 변호사입니다. 법조인 변론 대회의 심사 위원과 파리 변호사 연수원 강사를 역임했으며, 국립 리시아스 웅변대회의 명예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말하는 법에 대한 세미나 및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평소에 어떻게 말을 하고 계시나요? 그리고 어떤 말을 듣고 싶으신가요?

저는 표지에서 이 책의 부제인 '예수님처럼 말하기'를 보고 과연 예수님처럼 말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말을 하는지, 그리고 제가 말하는 내용이 듣는 이에게 어떻게 전달이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한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에페 4,29)

에페소서 4장 29절의 말씀입니다.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입니다. 이 성경 말씀을 읽고 저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데 제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말하기는 실제로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이신 로랑은 말하기의 중요성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말하기만큼 듣기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잘 듣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잘 듣어야 잘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때론 침묵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말하기의 반대말이 아니라 오히려 말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침묵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비로소 말은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고유의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침묵한 다음 나오는 말은 그 자체로 의사소통을 깊게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스도인답게 말하는 것은 말할 기회가 있을 떄마다 매번 종교적인 발언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말이란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하는 행위임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했을 때 말은 비로소 본연의 임무를 마치게 됩니다.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의 찬양을 널리 전하오리라.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말로 대답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그러니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과감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말을 통해 이루는 새로운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고 이와 더불어 말하는 재능을 기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말재주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당신이 한 말에 귀 기울이게 하는 일, 당신이 한 말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깊은 인상을 남기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통해 사람들이 추측하도록 유도하셨습니다. 고정 관념을 뒤흔들고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와 같은 질문을 통해 제자들의 입장이 어떤지 물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이처럼 그들이 스스로 답을 구하도록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가 이해하여 내 것으로 받아들인 바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행적을 통해 우리에게도 말하기 전에 준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분명하고 명쾌하게 말하며, 근거를 보유하고, 확인되지 않는 사실은 멀리하라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로랑은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저 또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훌륭한 말은 우연히 탄생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처럼 말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노력해야 하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길 빕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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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에 초대합니다
도미닉 그라시 외 지음, 송열섭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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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미사를 드려야 할까요? 그리고 미사 참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주일에 한 번 주일미사에 참례하시는 분들 중에는 고해성사를 보고 싶지 않아서 의무적으로 미사에 참례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매일미사에 참례하면서 기쁨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미사 참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신 분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고 습관적으로 미사에 참례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왕에 미사에 참례할 거라면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미사 파견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미사 후에 가정과 직장에서 신앙인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의 체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이 책을 옮기신 송열섭 신부님께서는 이 책이 미사와 신앙생활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신앙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신앙인이 왜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지, 미사의 각 부분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미사에 참례한 신앙인이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어떻게 신앙을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성인은 "태양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미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사는 제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행하고 어떤 사람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지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는데 힘쓰라는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미사와 각 부분은 신자들에게 어떻게 활력을 불어넣고 가르치며 동기를 부여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사의 영성적인 의미를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책을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시도해 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 하나를 이야기 해 보자면 미사 강론의 의미를 되새기며 실천해 볼 사항이 있습니다.

변화된 태도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자.

성당을 나서서 어디를 가든지 믿음을 지니자.

믿음을 실천함으로써 나 자신이 살아 있는 강론이 되게 하자.

하느님의 현존이 주는 의미와 이것이 내 삶에 주는 의미를 함께 묵상하자.

믿음과 실천을 따로 떼어 내어 생각지 말고, 믿음을 실천하자.

더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를 북돋우자.

자신의 생활 방식에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전례주년의 흐름을 통하여 거룩한 기록에 따라 신앙의 신비들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규범들을 해설하는 강론은 전례 자체의 한 부분으로서 크게 권장된다. 더더군다나 주일과 의무 축일에 백성과 함께 거행하는 미사에서는 중대한 이유 없이 강론이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 52항

우리는 왜 하느님을 신뢰할까요? 하느님께서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시어 먼저 당신의 신뢰를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독서와 복음, 그리고 강론은 하느님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과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분의 구원 행위를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두려워하지만 성경에서는 "무서워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구절이 자주 반복이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기에 믿음으로 무장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이런 신뢰 덕분에 두려움 없이 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 31)

우리는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까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믿을 때, 하느님께서 인간이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게 해 주시도록 계획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런 걱정없이 기대를 갖고 살 수 있습니다. 위의 모든 것에 응답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아멘!"입니다.


우리는 미사를 드린 다음 확신을 품고 성당을 떠나고자 합니다. 이때 확신이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우리는 순종의 자세로 성당을 떠납니다. 자신의 뜻과 원의를 하느님의 다스림 아래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에 마음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능력이 내 모든 것을 다스리시도록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관심사는 비우고 주님의 관심사로 자신을 채웁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알려 주신 기도로, "아버지의 뜻이(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말씀에 따라 살라고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따를 때에만 진실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란 당신 자녀들을 위해 생명의 충만함을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몸소 마련한 계획을 분명히 알고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평화를 위한 계획이지 재앙을 위한 계획이 아니므로, 나는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한다.

(예레 29,11)



우리가 성당 활동에 투신하는 시간을 늘린다고 영성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영성이란 삶 전체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길입니다.

영성은 삶의 매 순간을 에너지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영성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삶 전체를 영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가톨릭 신자가 된다는 것은 날마다 복음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애써 시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어설프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언제 진정한 제자의 길에 들어섰는가라는 성공의 척도란 없습니다. 오직 충실함이 있을 뿐입니다.

미사는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신앙을 실천하도록 "평화로이 가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십시오."라는 하느님의 강복을 받은 뒤 파견되는 특전의 장입니다.

사제와 평신도는 함께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다행히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겟다.

(마태 28,19~20)




만일 그대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미사를 봉헌하십시오.

미사만큼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선물은 다시 또 없습니다.

구엔 반 투안 추기경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미사의 영성적인 의미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사에 참례할 때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가 있었고 저의 신앙생활을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 미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예비신자들이나 신앙생활을 쉬고 있는 교우들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을 보내주신 가톨릭출판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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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 관상 기도, 만남 들음 쉼
토머스 키팅 지음, 이청준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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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키딩 신부님께서 쓰신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저는 재작년 1월부터 캐스리더스(가톨릭출판사 서평단)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번달 선정도서입니다.

3가지 책 중에서 선택권을 주셨는데 저는 이 책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토마스 키딩 신부님께서는 미국 트라피스트 수도회 사제로, 1961년에서 1981년까지 스펜서에 있는 요셉 수도원에서 수도원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1975년 향심 기도 운동을 시작하셨고, 1984년 국제 관상지원단을 창설하셨습니다. 2018년 선종하셨습니다.

저서로 <침묵의 대화>, <내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신비>, <하느님과의 친밀>, <신앙의 위기, 사랑의 위기> 등이 있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 6,6)

그리스도의 영성은 전통적으로 세 가지 단계로 구분이 되는데 정화의 길, 조명의 길, 일치의 길이 그것입니다. 정화의 길과 일치의 길은 그리스도교 신비가들의 저서 속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향심기도는 내적 변화라는 목표에 투신하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리고 '골방 기도'로 이끄는 세 단계 중 첫 두 단계에 해당합니다. 골방 기도는 생각과 느낌과 특정 행위를 넘어서 하느님과 관계 맺는 것입니다.

향심기도 중에 우리가 취하는 유일한 주도적 행위는 우리 안의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 동의한다는 지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느낌, 신체 감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때 거룩한 상징으로 부드럽게 돌아감으로써 지향을 유지합니다.

이 책의 1장은 향심기도의 방법, 그리고 그 방법과 직결된 개념적 배경을 다룹니다. 2장에서는 향심기도 방법에 대한 폭넓은 배경을 제공하고자 그에 대한 영적, 역사적, 신학적 성찰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향심기도라는 용어는 관상 선물에 눈뜨게 하는 특정 방법에만 제한하여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관상 기도라는 용어는 향심기도가 성령의 직접적 영감 아래 온전히 발달한 상태에 제한하여 사용되었습니다.

1장 숨어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

향심기도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하느님께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수련은 '인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 하고 권고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향심기도 중에 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우리 안의 하느님 현존과 활동에 개방하고 동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하느님 현존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이를 방해하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 장애물은 바로 우리의 세계관입니다. 우리의 관점은 그리스도의 마음, 그분의 관점으로 교체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를 할 때 우리는 기도에 가장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루 중에 전화나 다른 예측 가능한 방해를 받지 않을 조용한 시간을 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홀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침묵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고 그 생각을 받아들이려면 큰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저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즉 우리의 생각이나 기능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첫째 언어는 침묵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향심기도에서는 당신 자신을 침묵하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기도란 하느님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빨리 그렇게 될수록 기도는 더 나아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결코 대답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합니다. 왜 하느님께서 대답하셔야 할까요? 그분은 우리 기도에 대답하지 않으심으로써, 우리의 가장 큰 기도에 응답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향심기도의 목적은 평화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과의 영속적 일치 상태에 방해가 되는 무의식의 장애물을 비워 버리는 것입니다.

관상 기도가 아니라 관상 상태가 향심기도 수련의 목적입니다. 경험이 목적이 아니라 의식의 신비스러운 재구성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에 대한 항구하고 지속적인 인식이 목적인 것입니다.

향심기도는 관상 기도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거쳐 가는 학교이며, 이것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당신과의 영속적인 일치로 이끌기 위해 통상적으로 사용하시는 수단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의 동기 혹은 영감이십니다.

향심기도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가 있습니다.

  1. 향심기도는 긴장 이완 훈련이 아니다.

  2. 향심기도는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2장에 나열한 은사들과 같은 것이 아니다.

  3. 향심기도는 초심리 현상이 아니다.

  4. 향심기도는 신비 현상이 아니다.

관상 기도의 핵심은 순수한 믿음의 길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꼭 느낄 필요는 없지만,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향심기도 수련이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관상 기도 준비로 하는 향심기도는 오늘날 새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향심기도는 관상 기도의 전통적 가르침을 다시 획득하는 수단이며, 이 가르침을 더욱 알리고 더욱 쉽게 접하도록 만드는 수단입니다. 새로운 점이라면 그것을 체계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려 노력한다는 것뿐입니다.

진정한 영성 수련의 목표는 육체와 정신과 영의 좋은 것들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올바르게 이용하는 것입니다. 인간 본성의 어떠한 측면이나 인생의 어떠한 시기도 결코 거부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것들을 자아의식의 다음 단계에 통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 성장의 각 단계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부분적 선성이 보전되고 그 한계점만 뒤로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처럼 되는 길은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규칙적으로 고독와 침묵의 시간을 가지면 영혼이 고요해지고, 내적 침묵이 자라나며, 자기 인식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보여 주신 것들을 제자들에게 길로 제시하셨습니다. 즉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지막 가르침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입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향심기도 효과를 일상에 가져오는 수련들, 활동 중에 바치는 기도문, 주간 기도 모임, 향심기도 방법, 관상지원단도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뵙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분 안에서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외적 관심을 의도적으로 놓아 버리고 우리 안의 하느님 현존과 활동에 동의해야 합니다.

규칙적인 수련을 통해 깨어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우리는 점차 성령으로 기도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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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 -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신학자
박승찬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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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재작년부터 캐스리더스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캐스리더스 5월 도서는 3가지 책 중에서 선택권을 주셨는데 저는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박승찬 교수님의 강의를 엮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입니다.



2017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가톨릭평화방송에서 방영된 <그리스도교 최고의 스승,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만나다>의 강의 원고를 책의 형태에 맞게 구성한 것으로, '강의 개요 - 본강의 - 질의응답' 순으로 구성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1,600년 전 인물이지만, 급변하는 현대 사회와 비교될 수 있는 로마 제국 말기의 격변기를 살았던,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교 사상가입니다. 그는 중세의 거의 모든 학자에게 800년 동안 최고의 스승으로 존경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부터 방황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명예욕, 성욕, 출세욕에 끊임없이 시달렸던,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은 '보통 사람'이였습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박승찬 교구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보여준 아우구스티누스야말로 우리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겪는 불행으로부터 치유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는 멘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인류 최고의 지성'으로 존경받았지만 우리와 똑같이 아파하며 고민했던 사람이였고 욕망 앞에 한없이 흔들린 자신을 고백하며 가슴을 쳤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비틀거리면서도 결국 주님을 향해 나아갔던 사람, 1,600년 전의 현대인,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볼까요?

이 책은 1강부터 13강까지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 일부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왜 지금 '아우구스티누스'인가?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감정 전문가였지만 가슴이 따뜻한 보통 사람이였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이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요즘과 같이 인문학 열풍이 불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실제로 인문학을 가장 사랑한 위대한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속적인 욕심 때문에 인문학 교육에 임했지만, 이 인문학 교육이 나중에 그리스도교를 선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는 굉장히 많은 책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책은 <고백론>(또는 <참회록>)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만 무려 40번이나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삼위일체론>과 <신국론>이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인간의 본성이나 하느님, 심지어 역사와 언어에 대한 많은 내용을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현대 사회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값진 원리와 원칙을 제공한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순히 이론적인 탐구에만 몰두했던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시대에 자신의 소명을 다하려는 정직한 지성인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의 만남이 모든 근심과 걱정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 그 고민을 풀어 보고자 노력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떤 시대를 살았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로 다른 두 문화를 가진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고, 그중 어머니 모니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가족들을 차분하게 그리스도교로 인도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집안 자체에서부터 이질적인 두 요소 즉, 아버지로 대표되는 그리스-로마 문화와 어머니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가 충돌하는 긴장된 상태에서 성장했던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자의식이 충만한 젊은이였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공부는 지겨운 짐이였습니다. 그의 방황은 계속됐고 성경마저도 해답이 되지 못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거듭된 질문은 끝없는 번뇌를 낳았는데 집요한 물음의 마지막은 언제나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하느님과 영혼, 하느님이 주신 '영혼'을 아는 일, 그것이 '나'를 아는 길이었고,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인간'을 규명하는 이정표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장 먼저 하느님을 체험했던 것은 바로 어머니 모니카를 통해서입니다. 눈물로 자신을 키워 준 어머니가 그에게 하느님을 체험하게 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눈높이 학습, 학생에 대한 절대적 존중, 교사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교육.

'현대 교육학'의 이상이 1,600년 전 '위대한 지성'에 의해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낙오자 없는 교실, 수준별 학습, 그리고 학생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노력!

아우구스티누스의 교육론은 마치 현대의 이상적 교육 이론을 마주하는 듯합니다.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신랄하게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해 가르치고 누구를 위해 배우는 걸까요?

하느님은 왜 '악'을 방치하는가?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 악(惡)이 존재하는 걸까요?

만약에 '악'이 애초에 없었다면 갈등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이 '악'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왜 하느님은 악을 방치하실까요?

선과 악에 대한 문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평생을 바쳐 다뤄 온 문제입니다.

그의 결론은 '결핍'이었습니다.

무(無)로부터 세상 만물을 지으신 하느님, 선함 그 자체이신 그분에게서 멀어질 때 '결핍'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결핍의 자리에 악이 들어서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정체를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요즘 사는 것이 행복한가요? 항상 행복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때로는 항상 행복하면 그것을 행복이라 느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진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는 때때로 행복하지 않고 항상 행복할 수 있을까요?

찰나의 행복이 아닌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명확했습니다.

영원한 진리, 지혜의 근원, 우주를 비추는 빛, 바로 '하느님'을 마음에 지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깊이 행복의 참뜻을 일깨우는 스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모신 빛나는 '내적 교사'이신 하느님께서 영원한 행복의 길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강의를 마치며

김승찬 교수님께서는 이 강의를 준비하고, 또 질문을 듣고 답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셨다고 합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들도 있다 보니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강의를 통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질문하는 태도를 배우셨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죽는 순간까지 질문을 놓지 않고 계속 고민했던 것처럼, 질문을 곱씹어 보면서 새로운 대답, 더 좋은 대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대표작인 <고백론>을 예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지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제 자신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고 하느님의 나라가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싶습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악이 극복되고 결국에는 주님의 참된 정의와 평화가 도래하리라는 확신!

정의와 평화를 향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 또한 그럴 수 있길 희망합니다.

*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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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루이 에블리 지음, 김수창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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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캐스리더스를 하게 되었어요.

(캐스리더스는 가톨릭출판사 서평단입니다.

재작년에 캐스리더스 3기, 작년에 캐스리더스 4기, 올해는 캐스리더스 5기입니다.)

캐스리더스 4월 도서는 루이 에블리 신부님께서 쓰신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입니다.


3가지 책 중에서 선택권을 주셨는데 저는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사람이 하느님께 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빈다는 내용의 제목을 보면서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혹시 지금까지 제가 해 온 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였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머리말의 서두를 보면 우리가 "오소서, 성령님."이라고 기도를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성령에게 호소하고 있지만, 사실은 성령이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는 거라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반대로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찾을 필요가 없고 하느님을 찾아 헤매려는 노력이 오히려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더 멀리 떨어지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과 만날 기회를 제공하기만 하면 됩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이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루카 11,10)

기도를 하다보면 자기가 이미 그전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자기가 구하던 것을 이미 얻었음을 알고, 문을 두드리기 전에 열려 있으며, 자기가 원하는 것이 항상 허락되고 있었음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이 발견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우리 마음에 살고 계시며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을 걸어주십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자기 자신을 하느님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은 우리 안에 머무십니다.

우리가 청하는 것을 하느님꼐서는 들어주시지만 우리의 성실성을 헤아린 후에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하면 됩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느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훨씬 더 우리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신다는 사실, 더욱이 그것을 우리가 받고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납득을 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 것 말고는 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 22,27)

그리스도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며, 당신을 사랑하는 표시로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이웃을 위한 일을 한다면 곧 하느님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만 신경을 쓴다면 이웃에게는 소홀해지게 됩니다.

하느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하는 진정한 봉사란 하느님에게 다시 한번 봉사를 받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진정한 '영광'은 우리의 존경을 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겸손의 선물을 우리 사이에 다시 현존하게 하는 것, 다시 보내 주시도록 하는 데 있다고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에게 무엇을 구하고자 청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하느님에게 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기도를 성취시켜 드리는 일인 것이다.

하느님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하느님이 용서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하느님에게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당신 스스로를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것을 기쁘게 영접해 드리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살고 계신 하느님

기도는 자신의 요청, 제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 자신의 바람 등을 내려놓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계획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 기도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으로 가득 채워지는 동안 하느님 앞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봉사하는 하느님만이, 괴로워하시는 하느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괴로운 상황에 마주하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메우고,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하느님을 원합니다. 자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인간은 부유한 하느님을 상상하고 그것을 구합니다.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하느님은 강해야만 했습니다. 자기가 고통을 겪고 있으므로 하느님은 고통을 받지 않는 분이어야 하며, 평안하고 무정하고 불변해야 했습니다. 자신은 타인에게 의존하면서도 고독하기 때문에 하느님만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자로 상상합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인간을 영원히 최악의 야망을 가진 이, 끊임없이 희생하는 이로 만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겸허하고 온유하며, 가난하고 자비에 넘친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서 인간을 자유롭게 해 주고 구원을 가져다줍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기도는 하느님에게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부여해 주시는 섬세한 감지력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로마 8,26)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고 기도하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성장하십니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노래하고 또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난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너희가 하느님에게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요한 8,47)

사랑한다는 것은 말을 거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면 하느님은 당신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면 하느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언제든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누구나가 들을 수 있도록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우리가 생활에서 행하는 일들에 관해 하느님이 암시해 주시는 바를 듣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을 복음에 비추어 본다는 것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복음에 비추어 보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온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고 면밀하게 음미하며, 그것이 진실한 것인지 아닌지를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어느 것이 하느님에게 온 것인지를 식별하는 기회이며 하느님에게서 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어야 합니다.

신앙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겪은 경험을 통해 사물이 지니는 의미는 나중에 가서야만 알게 된다는 점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성서에게 말한 것들은 모두가 당신의 일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며, 당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가 성서 안에서 예언되고 체험되어 있습니다.

만일 거기에 기록된 사건이 당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이상하다고 여겨지면 그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성서를 읽는 방법이 옳지 못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나 예수님이 옛날에 하셨던 일이 현재 하시는 일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인생은 가치 없는 허망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싶거든 이웃 사람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가 변한 것을 보고자 한다면, 당신 자신이 변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당신 자신을 조금이라도 그분에게 내주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당신 자신이 그리스도처럼 보이기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또 그분 자신이 우리를 완전히 점유하셨음을 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이록할 것을 부탁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무엇을 받을 때에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의탁하시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 주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은총의 통로가 되지 않으면 은총은 이웃에게 도달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통하지 않고는 하느님은 하느님일 수 없고 우리 없이는 하느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실 수 없으십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기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며 범하고 있는 모순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가치관이 뒤바뀜을 느낄 것이고, 우리 교회의 전통 안에 얼마나 많은 비전통적인 것이 본래의 정통적 전통인 것처럼 위장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이 혁명적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런 정신이 바로 주님의 본뜻이라 생각할 때, 누구나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신앙생활, 기도, 자신이 알고 있던 종교관을 정화해야 할 것이다.

<역자의 말> 중에서...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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