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허풍담 1 - 즐거운 장례식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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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북극 사냥꾼들의 이야기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지리부도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 그린란드였다. 너무 북쪽에 있어서 잘안보이는데 가만 보면 엄청나게 큰 땅덩어리라서 놀랐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세계지도를 볼 때 꼭 그린란드를 확인했다. 누가 굳이 알려주지 않는 미지의 땅이 잘 있는지 안부를 묻듯이.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이 책에서도 반가운 그린란드 지도를 볼 수 있었다. 지리책과 다른 점이라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어디에 사는지 표시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유럽 나라가 지리적 정보에 관심이 많은 나라인가 보다. 스웨덴 소설인 '밀레니엄 시리즈'를 봐도 각 권 처음에 배경이 되는 도시의 지도가 나온다. 그래서 읽으면서 수시로 지도 부분을 펼쳐보게 만든다. 땅에 대한 소중함을 늘 잊지 않는 민족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린란드의 사냥꾼들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조금 더 행복할 줄 안다."

책 뒤표지의 문구이다. 상상만 해도 척박하고 추운 이곳의 정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그렇다고 사람들까지 환경에 굴복하진 않는 것 같다. 오히려 환경을 극복하고, 때로는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누가 숨겨진 행복을 찾아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지가 삶에 주어진 큰 숙제라고 느껴진다.

북유럽 특유의 시크하고 비관적인 유머 코드가 곳곳에 배어있다.

"한 달 전에는 피오스커만 빼고 개들이 전부 죽었어. 리에 빙하를 내려오던 길에 말이야. 정말 그 말이 맞나 봐. 왜 있잖아.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말! 그래서 여기까지 올 생각을 한 거야. 우리 둘 다 모국어를 아직 기억하는지 확인도 할 겸." (p.57)

표현은 차갑고 거칠게 하지만 넓은 땅에 소수의 사람이 살기에 만남과 대화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만나면 엄청나게 수다를 떤다. 러시아 장편 소설에서처럼 혼자 10페이지 넘게 떠드는 것은 아니지만 만만치 않다. 작가가 실제로 듣고 줄여서 썼나 생각도 든다.

가장 재미있게 본 에피소드는 '엠마 빼앗기'였다. 룸메이트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거짓말로 애인을 꾸몄더니 그가 그 상상 속 인물과 사랑에 빠져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자기의 애인 삼는 이야기다. 얼마나 사랑과 사람에 목말랐으면 그렇게 됐을까. 긴긴밤과 무한에 가까운 빙하로 둘러싸인 환경이 그들의 상상력마저 그렇게 확장시킨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북극 허풍담은 시리즈물이라고 한다. 평소와 다른 감성의 이야기가 고프다면 요른 릴의 작품을 한 권 펼쳐들고 실없이 낄낄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다른 편이 살짝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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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말을 못하는 겁니다 - 일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말투와 목소리
이규희 지음 / 서사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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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차 국제선 퍼스트 클래스 승무원이면서 동시에 7년째 기내 방송 교관으로 근무 중인 베테랑 중의 베테랑 현업자의 직장 생활 지침서이다.

감히 지침서라는 이름을 붙여본 이유는 보편적인 업무 수단이면서 우리가 가장 잘해야 하지만 의외로 잘 하지 못하는 '말'이라는 것을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세세하게 다뤄주고 있기 때문이다. 

승무원 경험에 기초한 책이기 때문에 그 외 업게에 있는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책 제목과 작가 프로필을 보고선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작가는 비단 직장 생활에서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이 하게 되는 말의 힘을 스스로 느끼고 소중하게 다루기를 소망의 마음을 매 장마다, 행간마다 정성스레 담고 있다.

prologue에 있던 짤막한 한 마디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내 입에서 나간 말은 내가 제일 먼저 듣습니다."

그렇다. 내 말은 늘 남이 듣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먼저 그 말은 나의 정신, 마음을 거쳐 발음 및 발성기관을 스쳐 지나가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 되게 된다.

그래서 나의 말에 더 주의하고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서 사회 초년생 시절을 많이 떠올려 보게 됐다.  물론 그때도 말 한마디를 위해 많이 준비하고 연습했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칠고 서툴렀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10년 후에 지금을 돌아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니,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당장 어제의 나의 말도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게 말을 잘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정답에 가까운 솔루션을 제공한다. 상사의 지시를 잘 아는 것이 업무를 잘 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이것을 소통을 위한 문장으로 바꿔보면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장 생활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대화 장면에서 꼭 필요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말의 기술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질문은 힘이 세다. 적절한 질문은 직장 생활을 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p.78)

"인사만 잘해도 호감도가 올라간다. 건물 안에서 마주치는 경비, 미화원 분들께부터 먼저 인사를 건네보자. 머쓱하고 민망하다고 안 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하기 힘들다."(p. 89)

"현명하게 거절하는 사람은 평상시에 삶의 우선순위를 정리 해놓았을 확률이 크다. 한정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거절하지 않는 것은 착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무례한 것이다."(p.104)

입에서 나오는 말뿐 만 아니라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들이다. 과연 한 분야에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제목이 이 책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결론까지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말을 잘하는 것을 넘어 더 좋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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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이 달리자고 말했다
박채은(달리) 지음 / 파지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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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달리기로 삶에 대한 방향과 태도가 바뀐 한 직장인의 에세이집이다. 


출판사에서 온 택배를 뜯자, 보기만 해도 설레는 모양의 책이 내 손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함께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게 만든다. 작가의 메시지, 출판사의 제작 의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일체감을 단단히 이루고 있다. 책을 받아볼 때부터 감상문을 쓰는 이 순간까지 이 책과 보낸 모든 순간들이 줄곧 한 방향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힘이 느껴졌다.

사람은 애써 땀 흘리는 일에 양가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땀 흘리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움직이기도 싫은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흘려버린 순간의 쾌감 또한 알고 있기에 홀린 듯 격한 활동을 찾아 나선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이 있다. 작가는 달리기가 주는 누구나 아는 그 맛을 글로 써내고 있다. 

"붙잡고 있던 다른 모든 일들은 지금의 힘든 달리기보다 죽을 것 같진 않다. 그 순간만큼은 땀과 함께 마음을 붙잡고 있는 찐득거리는 기운들이 뚝뚝 떨어진다. 일순간의 자신감과 해방감은 놀랍게도 달리기를 마친 뒤에도 지속된다. 죽을 만큼 뛰고 나면 모든 것은 고요해지고 개운해진다." (p.260)

달리기를 매우 사랑하나 강요는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하고 싶으면 하고 말려면 말라는 냉소적이고 무책임한 표현도 하지 않는다. 권유와 강요는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작가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치우치지 않는 태도의 중립을 보여준다. 아마 작가가 달리는 모습도 그의 글처럼 안정적일 것 같은 상상이 간다.

규칙적 달리기는 함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까지 이른다. 특히 '평범'의 재정의가 이루어지는 부분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으니 정말 고생 많았다. 평범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애써왔던 우리들아, 이제껏 잘해왔다. 너무 불안해하지 말자. 지금 우리의 모습은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온 정말 자랑스러운 순간이야. 그렇게 사는 거고 조금 더 스스로를 칭찬하고 다독여주자. 나 말고는 모두 알아버린 나의 대단함을 혼자만 꽁꽁 싸매고 있었더라.  (p.123)

스스로를 혼자 달려야 맘 편한 사람이라고 틀 속에 가두기를 여러 해. 지금은 아침에 달리는 대장, 아달대장이 됐다. 그것은 새롭게 찾거나 후천적 노력에 의해 개발된 제2의 정체성이 아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려보니 엄청난 인싸까진 아니었어도 적당한 관심을 먹고 사는 귀여운 관종이었던 거다.  

살다 보니 귀찮고 피곤해서, 그리고 무난하게 조용히 사는 것이 솔 끓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마음이 진짜로 원치 않았던 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 회사에서 달리기 모임을 만들고, 친구들을 모아 작은 운동회, 사생대회를 개최하면서 작가는 솔직한 자신을 찾았다. 재미있게 사는데도 그의 성과와 능력을 인정받는 누구나 꿈꾸는 그런 순간이다. 

운동은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다. 작가도 그랬다. 혼자 달리던 시간과 흘린 땀들이 모이고 쌓여 멋진 영향력이 되는 것을 책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이 젊은 작가처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진심으로 달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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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
이경희 지음 / 강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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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란시장의 의리는 네발 달린 생명을 어떤 방법으로 죽이고 취급하느냐에 달려있었다. 사람들은 쉽고 단순하게 생명의 서열을 얘기했다. (p.35)"


고향이 모란시장에서 가깝다. 어린 시절부터 모란시장에서 보신탕 거리를 산다는 말을 많이 돋고 지냈다. 그래서 모란이라는 말이 개와 관련된 말인 줄 알았다. 그게 꽃 이름이란 걸 나중에 알았지만 중년이 된 내게 아직도 모란-보신탕이라는 자동 연상 작용은 유효하다. 모란 시장은 그런 곳이다.
모란 시장은 욕망이 응축되다가 일순간 폭발하는 곳이다. 상설시장이라면 다소 분산이라도 될 텐데, 그 말로만 듣던 오일장이기에 4일 동안 쌓아둔 뭔가를 장날 쏟아낸다. 작가는 그렇게 모란 시장을 그려내고 있다. 그곳은 광기와 어리석음이 교차하는 곳이면서 우리 사는 세상의 복사본이다.

"사람들은 필요하거나 필요치 않은 물건까지 양손이 넘치도록 사들고도 시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기어이 미로에 갇히고도 벗어나길 원치 않는 사람들로 인해 오일장은 언제나 사월의 논바닥처럼 시끄러웠다. (p.8)"
​​
이 소설은 화자는 '삽교'라는 이름의 늙은 개다.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삽교리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먼 거리를 자의로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모란 시장은 인간의 먹고 즐기기 위한 목적을 위해 그렇게 여기저기서 잡혀 오는 개들의 집합소이다. 그 개들은 억지로 이곳에 왔을 뿐 아니라 목숨을 지키는 것조차 맘대로 할 수 없다. 살아보려 발버둥 치다 그저 당할 뿐이다. 삽교는 정말 운 좋게 목숨을 건졌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시간의 흐름에 다라 늙어가는 복을 누리고 있다. 이걸 복이라고 할 정도로 서글픈 전제를 깔고 진행되는 소설이다. 
등장인물 중 중심축에 시장 최고의 개도살전문가 경숙이 있다. 생활고에 찌들어 입성한 모란 시장에서 번영회장인 대도축산 박사장과의 결혼으로 문제를 타개해 보고자 하지만 빚덩이보다 잔혹한 박사장에게 갇혀 무고한 생명들을 거두는 일에 몰두한다. 경숙은 개들에겐 공포의 대상이고, 삽교의 눈에는 외모나 성격이 인격체라고 보기에 어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삽교가 자의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듯, 경숙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은 그렇게 불쾌한 운명이 한 생명과 영혼을 억압하는 곳이다.  
그러다 경숙은 나름의 탈출구를 찾는다. 유일하게 시장의 정치경제 논리에서 독립한 능평꽃집이다. 꽃집 근처에 떨어진 장미 꽃잎이 그에겐 유일한 위안이다. 향기를 맡으며 오늘 하루 자신의 손에서 스러져간 작은 생명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인근 탄천에서 매일 꽃잎과 하천물로 몸을 씻어낸다. 일종의 종교의식과 닮아 있는 행사를 매일 치른다. 능평꽃집 사장은 그런 경숙을 이미 알아보고 장미를 일부러 뿌려 놓았다. 험악한 시장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경숙은 변치 않는 현실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매일을 반복한다. 
중요한 인물이 많이 등장하지만 능평꽃집과 경숙의 연대는 매우 중요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살리려는 자가 있다는 것은 죽이려는 자가 있다는 것이니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동물보호를 외칠 뿐 아니라 인간 보호도 함께 호소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동물들의 생존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위상을 자랑한다. 인간 내외부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동물보호는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개를 죽일 마음이 없어진 경숙은 드디어 전면적으로 거부의 움직임을 보인다. 무시무시한 박사장의 주먹과 악다구니 앞에서도 경숙은 작지만 따뜻한 그 생명을 품에 꼭 안는다. 자기가 죽을 수도 있지만 박사장 앞에서 개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박사장에 죽음과 다름없는 폭력을 당한다. 인간과 동물이 충분히 공존할 수 있지만 시장에선 불가능하다. 누구라도 대신 죽어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죄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 속죄제물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논리적인 구조이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다. 동물이 죽임을 당하고 사람은 먹는다. 하지만 경숙의 희생으로 인해 작은 가능성이 생겼다는 데서 위안이 들었다.
이 소설에선 '품'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삽교를 키우는 명진은 심각한 정신질환자이다. 그는 약 없이 정상인 비슷한 생활을 하지 못한다. 그가 유일하게 의존하는 존재가 바로 삽교이다. 삽교를 늘 품에 꼭 안아주지만, 사실 안긴 것은 삽교가 아니라 명진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부족한 명진의 품이라도 서로의 온기라도 공유할 수 있어서 삽교도 좋다. 둘의 조합은 바로 시장에서 유일하게 공존이 가능한 명진의 집, 모란시장에서 가장 높은 대도빌딩이다. 시장에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라는 역설도 함께 담고 있다. 하지만 정상이 아닌 사람의 품은 안아줄 수 있는 힘이 있다. 힘없는 동물들에겐 그곳이 차라리 천국이다. 

소설 초반에 나오는 삽교의 고양이 친구 송이의 한마디가 기억에 있다. "너는 아직도 사람에 대한 희망이 있구나." 삽교는 잡혀 죽지 않았다. 그리고 송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았다. 삽교의 자연사는 희망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결말이 아닐까. 결국 돕는 손길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 간에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송이를 포함한 몇몇 동물들은 위험한 시장에 있느니 자유를 찾아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자유의 결과는 죽음이다. 사람에 죽으나 굶어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지만 그 결과가 죽음 한 가지라는 것은 얼마나 우리 주변의 생명들이 태생적인 위험에 처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가능하면 죽는 걸 피하면 좋겠지만 최대한 주어진 생명에 대해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단 걸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러웠다! 그들의 연대가, 그들의 강인함이 부러워 화가 났다. 우리도 연대하면 그들처럼 강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랬으면 우리도 대도축산 같은 곳에서 희생당하지 않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도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었더라면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p.228)"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등장해 몰입감을 더해 준다. 수산업체에서 나오는 대구 머리를 구워파는 고씨 할머니와 손자로 추정되며 말 못 하는 '코'. 시장에서 삽교에게 호의적인 극소수 사람 중 하나인 그들은 말없이 장사하고 저녁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삽교가 지하세계에서 활동하는 그들을 발견했다. 무수한 쥐 떼들과 함께. 그곳에서 '코'는 시장에서의 바보가 아니었다. 쥐들도 동물이 아닌 마치 사람같은 행동을 하며 코의 선동에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준다. 

쥐라는 존재의 번식력, 생명력은 기본적으로 공포심과 불쾌감을 준다. 한 마리가 뛰거나 찍찍대는 소리만 들어도 불안함이 증폭된다. 어디선가 분명 모여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보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그것이 쥐라는 존재가 부여하는 상상력이다. 

소설 말미에 고씨 할머니, 코와 쥐 떼는 탄천 물살을 가르며 모란시장을 향해 돌격한다. 철옹성 같은 그곳으로.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존재들로 가득 찬 그곳으로. 삽교가 본 이 장면은 분명 환상일 테지만 상징을 빌려서라도 작가가 이루려 한 꿈이 나타나 있다. 독점하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면 균형을 맞추려는 자들이 있어야 한다. 독점의 반대는 다시 빼앗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 범위에서의 분배이고 공존이다.

동물의 생명을 맘대로 취할 수 있는 권한은 언제, 누구에게서 주어졌는가? 각자 나름의 출처를 가지고 신빙성 있는 주장을 할 수 있는 문제이다. 여러 답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좋아 보이지만 그 답에 따라 언제든지 여러 모양으로 처분 당할 수 있는 동물의 입장에선 달가운 상황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동물마다 주어진 운명이 다르다고 할 것인가? 고기용으로 태어난 존재가 있고 반려동물로 태어난 존재가 정해져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함께 더불어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곤경에 처한 동물이 있다면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생명은 모두에게 단 한 개만 주어진 것이다. 주어진 것은 선물이고 선물은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다. 
사람에게 희망을 찾는 것은 다소 힘들지 않을까? 우리에겐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연대가 필요하다. 현실적인 문제로 연대를 이룰 순 없더라도 연대를 이루고자 하는 방향의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갖게 되길 소망한다. 오늘도 출근하면서 주차장에서 만난 길냥이와 반갑게 인사했다. '이따가 또 건강하게 만나자!' 
작가가 흥미로운 인물과 문학적 장치를 많이 뒀지만 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받은 메시지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작가의 다각도의 이야기 전개를 통해 각자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다양하고 풍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이 읽고 나름의 방법으로 연대를 이루어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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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샷 :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화이자의 대담한 전략
앨버트 불라 지음, 이진원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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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샷Moonshot은 문제 해결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여기선 코로나19에 대해 고군분투하는 화이자와 CEO 앨버트 불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소망하는 바가 있었다. 부디 화이자 용비어천가가 되지 않길. 독자가 의미 있게 읽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도움을 주길. 걱정한 바와 달리 다행히도 후자의 방향을 타고 진행된다.

2019년 12월 31일, 최초로 발견된 코로나19바이러스는 세상을 바꿔버렸다. 수 세기에 걸쳐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예견된 것처럼. 화이자는 CEO 앨버트 불라를 필두로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백신학자는 생명과학계에서 특별한 종족이다. 의사와 생명과학자와는 달리 백신 자체를 연구하기 위해 이 분야로 뛰어들었고,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에 극도로 헌신적이다. 백신 개발에는 치료제를 개발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이 요구된다. (p.60)

바이러스의 침입을 사전에 차단하느냐, 병이 걸렸을 때 빠르게 치료를 하느냐. 본래 화이자는 코로나 발생 때만 해도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엄청난 확산세의 속도를 감지하고 백신 개발로 선회했다.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회사의 명운을 건 모험이었다. 일반인들은 백신 개발은 전염병에 대해 몇 번 테스트해보고 출시되는 것으로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겠다. 백신 개발은 상당히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이며 성공률도 높지 않다. 에이즈 백신이 아직도 나오지 않은 것이 증거가 될 수 있겠다.

화이자가 가지게 된 전 세계적인 명성 뒤에는 생명을 건 의사결정과 격무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그는 내게 "당신은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군요. 지금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계신 겁니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우리는 이미 이번 여정을 시작했을 때 꿈꾼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런데도 나는 절대 만족하지 않았다.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드림팀이었다.
경이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기에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p.149)

이 책의 작가이면서 CEO는 앨버트는 때로는 불도저 같은 성격(지중해 출신인 것도 한몫했지만)으로 인해 팀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줘 후회한다고도 소회했다. 그럼에도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분명한 신뢰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영진과 현장과의 쌍방향 신뢰였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기업문화의 전환이었다.

화이자가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중점에 둔 사항은 '기쁨'이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직원의 기쁨, 그리고 화이자의 서비스를 받아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사람들의 기쁨 말이다. 이런 문화의 바람은 백신의 공급의 평등 정신으로 이어진다. 백신 사용 승인이 나자마자 백신을 예약한 곳은 당연히 고소득 국가였다. 저소득 국가는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른 국가, 기업 등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아 화이자 백신을 주문할 수도 없는 구조적 문제에 봉착한다. 앨버트는 이런 사회, 정치적 장벽과도 맞서야 했다. 이 부분이 상당히 감명 깊었다.

나라의 소득수준에 맞춰 백신 가격을 3단계에 걸쳐 차등 책정해서 모든 사람들이 상대적인 기준 속에서 부담 없이 백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지만 그 마저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충돌은 아이러니하게 미국 정부와의 갈등이었다. 1차 주문량인 1억 개가 소진되자 2차로 1억 개를 추가 주문했으나 화이자는 다른 저소득 국가에 이미 공급계획을 잡았던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미국 회사가 자국에 먼저 백신을 공급하라며 다른 나라에 갈 물량을 미국으로 돌리라고 압박한다. 화이자 생산부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어떤 악화일로를 걸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처럼 화이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분투했다. 백신을 맞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고통을 겪었을 사람들도 많아 화이자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라는 시각으로 본다면 화이자가 보여준 단기간의 초고속 프로젝트를 이렇게 완성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앞서 말 한 것처럼 이 책이 화이자 용비어천가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인데 나의 감상문이 그렇게 돼 가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도 인류의 건강을 위해 힘쓰는 많은 분들께 감사를 표할 뿐이다. 처절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앞서 싸워 주셔서 또한 감사합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Science will 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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