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시장
이경희 지음 / 강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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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란시장의 의리는 네발 달린 생명을 어떤 방법으로 죽이고 취급하느냐에 달려있었다. 사람들은 쉽고 단순하게 생명의 서열을 얘기했다. (p.35)"


고향이 모란시장에서 가깝다. 어린 시절부터 모란시장에서 보신탕 거리를 산다는 말을 많이 돋고 지냈다. 그래서 모란이라는 말이 개와 관련된 말인 줄 알았다. 그게 꽃 이름이란 걸 나중에 알았지만 중년이 된 내게 아직도 모란-보신탕이라는 자동 연상 작용은 유효하다. 모란 시장은 그런 곳이다.
모란 시장은 욕망이 응축되다가 일순간 폭발하는 곳이다. 상설시장이라면 다소 분산이라도 될 텐데, 그 말로만 듣던 오일장이기에 4일 동안 쌓아둔 뭔가를 장날 쏟아낸다. 작가는 그렇게 모란 시장을 그려내고 있다. 그곳은 광기와 어리석음이 교차하는 곳이면서 우리 사는 세상의 복사본이다.

"사람들은 필요하거나 필요치 않은 물건까지 양손이 넘치도록 사들고도 시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기어이 미로에 갇히고도 벗어나길 원치 않는 사람들로 인해 오일장은 언제나 사월의 논바닥처럼 시끄러웠다.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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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화자는 '삽교'라는 이름의 늙은 개다.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삽교리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먼 거리를 자의로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모란 시장은 인간의 먹고 즐기기 위한 목적을 위해 그렇게 여기저기서 잡혀 오는 개들의 집합소이다. 그 개들은 억지로 이곳에 왔을 뿐 아니라 목숨을 지키는 것조차 맘대로 할 수 없다. 살아보려 발버둥 치다 그저 당할 뿐이다. 삽교는 정말 운 좋게 목숨을 건졌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시간의 흐름에 다라 늙어가는 복을 누리고 있다. 이걸 복이라고 할 정도로 서글픈 전제를 깔고 진행되는 소설이다. 
등장인물 중 중심축에 시장 최고의 개도살전문가 경숙이 있다. 생활고에 찌들어 입성한 모란 시장에서 번영회장인 대도축산 박사장과의 결혼으로 문제를 타개해 보고자 하지만 빚덩이보다 잔혹한 박사장에게 갇혀 무고한 생명들을 거두는 일에 몰두한다. 경숙은 개들에겐 공포의 대상이고, 삽교의 눈에는 외모나 성격이 인격체라고 보기에 어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삽교가 자의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듯, 경숙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은 그렇게 불쾌한 운명이 한 생명과 영혼을 억압하는 곳이다.  
그러다 경숙은 나름의 탈출구를 찾는다. 유일하게 시장의 정치경제 논리에서 독립한 능평꽃집이다. 꽃집 근처에 떨어진 장미 꽃잎이 그에겐 유일한 위안이다. 향기를 맡으며 오늘 하루 자신의 손에서 스러져간 작은 생명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인근 탄천에서 매일 꽃잎과 하천물로 몸을 씻어낸다. 일종의 종교의식과 닮아 있는 행사를 매일 치른다. 능평꽃집 사장은 그런 경숙을 이미 알아보고 장미를 일부러 뿌려 놓았다. 험악한 시장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경숙은 변치 않는 현실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매일을 반복한다. 
중요한 인물이 많이 등장하지만 능평꽃집과 경숙의 연대는 매우 중요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살리려는 자가 있다는 것은 죽이려는 자가 있다는 것이니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동물보호를 외칠 뿐 아니라 인간 보호도 함께 호소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동물들의 생존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위상을 자랑한다. 인간 내외부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동물보호는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개를 죽일 마음이 없어진 경숙은 드디어 전면적으로 거부의 움직임을 보인다. 무시무시한 박사장의 주먹과 악다구니 앞에서도 경숙은 작지만 따뜻한 그 생명을 품에 꼭 안는다. 자기가 죽을 수도 있지만 박사장 앞에서 개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박사장에 죽음과 다름없는 폭력을 당한다. 인간과 동물이 충분히 공존할 수 있지만 시장에선 불가능하다. 누구라도 대신 죽어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죄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 속죄제물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논리적인 구조이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다. 동물이 죽임을 당하고 사람은 먹는다. 하지만 경숙의 희생으로 인해 작은 가능성이 생겼다는 데서 위안이 들었다.
이 소설에선 '품'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삽교를 키우는 명진은 심각한 정신질환자이다. 그는 약 없이 정상인 비슷한 생활을 하지 못한다. 그가 유일하게 의존하는 존재가 바로 삽교이다. 삽교를 늘 품에 꼭 안아주지만, 사실 안긴 것은 삽교가 아니라 명진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부족한 명진의 품이라도 서로의 온기라도 공유할 수 있어서 삽교도 좋다. 둘의 조합은 바로 시장에서 유일하게 공존이 가능한 명진의 집, 모란시장에서 가장 높은 대도빌딩이다. 시장에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라는 역설도 함께 담고 있다. 하지만 정상이 아닌 사람의 품은 안아줄 수 있는 힘이 있다. 힘없는 동물들에겐 그곳이 차라리 천국이다. 

소설 초반에 나오는 삽교의 고양이 친구 송이의 한마디가 기억에 있다. "너는 아직도 사람에 대한 희망이 있구나." 삽교는 잡혀 죽지 않았다. 그리고 송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았다. 삽교의 자연사는 희망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결말이 아닐까. 결국 돕는 손길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 간에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송이를 포함한 몇몇 동물들은 위험한 시장에 있느니 자유를 찾아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자유의 결과는 죽음이다. 사람에 죽으나 굶어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지만 그 결과가 죽음 한 가지라는 것은 얼마나 우리 주변의 생명들이 태생적인 위험에 처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가능하면 죽는 걸 피하면 좋겠지만 최대한 주어진 생명에 대해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단 걸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러웠다! 그들의 연대가, 그들의 강인함이 부러워 화가 났다. 우리도 연대하면 그들처럼 강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랬으면 우리도 대도축산 같은 곳에서 희생당하지 않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도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었더라면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p.228)"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등장해 몰입감을 더해 준다. 수산업체에서 나오는 대구 머리를 구워파는 고씨 할머니와 손자로 추정되며 말 못 하는 '코'. 시장에서 삽교에게 호의적인 극소수 사람 중 하나인 그들은 말없이 장사하고 저녁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삽교가 지하세계에서 활동하는 그들을 발견했다. 무수한 쥐 떼들과 함께. 그곳에서 '코'는 시장에서의 바보가 아니었다. 쥐들도 동물이 아닌 마치 사람같은 행동을 하며 코의 선동에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준다. 

쥐라는 존재의 번식력, 생명력은 기본적으로 공포심과 불쾌감을 준다. 한 마리가 뛰거나 찍찍대는 소리만 들어도 불안함이 증폭된다. 어디선가 분명 모여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보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그것이 쥐라는 존재가 부여하는 상상력이다. 

소설 말미에 고씨 할머니, 코와 쥐 떼는 탄천 물살을 가르며 모란시장을 향해 돌격한다. 철옹성 같은 그곳으로.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존재들로 가득 찬 그곳으로. 삽교가 본 이 장면은 분명 환상일 테지만 상징을 빌려서라도 작가가 이루려 한 꿈이 나타나 있다. 독점하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면 균형을 맞추려는 자들이 있어야 한다. 독점의 반대는 다시 빼앗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 범위에서의 분배이고 공존이다.

동물의 생명을 맘대로 취할 수 있는 권한은 언제, 누구에게서 주어졌는가? 각자 나름의 출처를 가지고 신빙성 있는 주장을 할 수 있는 문제이다. 여러 답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좋아 보이지만 그 답에 따라 언제든지 여러 모양으로 처분 당할 수 있는 동물의 입장에선 달가운 상황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동물마다 주어진 운명이 다르다고 할 것인가? 고기용으로 태어난 존재가 있고 반려동물로 태어난 존재가 정해져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함께 더불어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곤경에 처한 동물이 있다면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생명은 모두에게 단 한 개만 주어진 것이다. 주어진 것은 선물이고 선물은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다. 
사람에게 희망을 찾는 것은 다소 힘들지 않을까? 우리에겐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연대가 필요하다. 현실적인 문제로 연대를 이룰 순 없더라도 연대를 이루고자 하는 방향의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갖게 되길 소망한다. 오늘도 출근하면서 주차장에서 만난 길냥이와 반갑게 인사했다. '이따가 또 건강하게 만나자!' 
작가가 흥미로운 인물과 문학적 장치를 많이 뒀지만 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받은 메시지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작가의 다각도의 이야기 전개를 통해 각자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다양하고 풍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이 읽고 나름의 방법으로 연대를 이루어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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