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안시내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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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좋은 책을 만나면 할 말이 많아진다. 이렇게 인스타에 책에 대한 글을 쓸때도 제한 분량이 넘칠 때가 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책'을 만나면 오히려 말이 없어진다. 감히 내가 평가할 수도 없다는 생각과 함께 이 책과의 시간을 오롯이 기억 깊숙한 곳에 소중히 넣어놓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에.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은 오랜만에 만난 정말 좋은 책이었다.


솔직함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용기다. 작가는 극도의 결핍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날 것 그대로 먼저 그려낸다.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첫 번째 감탄, 그리고 '이런 얘기까지 해준다고?'라며 두 번째 감탄. 이 정도 용기를 내 써내려 간 글은 감동을 준다. 글의 힘에 마냥 매료되고 만다.

여행은 작가의 결핍을 채워주기에 최고의 도구였다. 마치 여행을 보내기 위해 운명의 여신이 그에게 극심한 어려움을 준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거기서 사람을 얻었다. 사랑을 했다. 그리고 자신을 되찾았다. 할머니가 없는 그에게 인도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할머니가 되어주고, 다음 날 귀국 티켓을 찢어버리고 찰나의 사랑을 붙잡고, 그 사랑이 떠난 자리는 다른 사랑으로 채운다.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들지 않는다. 이미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고, 넓은 세상을 감당할 더넓은 품을 갖췄기 때문에. 여행이 좋은 사람을 빚어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푸른향기 서포터즈 12기의 마지막 책은 수많은 책 중에 선택한 것으로 활동했다. 제목이 맘에 들어 선택했는데, 다 읽고 마지막 서평을 적는데, 어떻게 이런 책을 골랐을까? 과거의 나, 매우 칭찬해.


나는 여행기피자다. 낯선 곳을 귀찮아 하고 잠은 꼭 집에서 자야 한다. 여행은커녕 외박도 지양한다. 그런 내가 서포터즈 내내 수많은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여행을 극구 마다했던 내게 여행 에세이 한번 써보자는 꿈이 생겼다. 그러려면 떠나야겠지. 귀찮은 걸 기꺼이 감수해 내는 낭만을 찾아야지. 성실하게 걷고, 보고, 쓰다 보면 나도 좀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내가 꿈꾸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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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 - 숨겨진 매력을 찾아 떠난 17번의 대만 여행, 그리고 사람 이야기
이수지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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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심적으로 참 머나먼 나라였다. 출처 미상의 중국 느낌에 대한 거부감, 지나치게 덥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살아생전 갈 일은 거의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누구를 통해 대만을 알게 되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역시 좋은 사람은 좋은 글을 쓰게 되는 법이고, 그 영향력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법.

여행 에세이를 읽다 보면 종종 풍경의 묘사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그보다 사람의 마음에 닿는다. 작가의 시선은 늘 ‘관찰자’보다 ‘참여자’에 가깝다. 시장의 상인, 카페의 점원, 택시 기사와의 짧은 대화에서도 그는 그들의 일상을 존중하고, 그 속에 스며든 온기를 길어 올린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대만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나도 언젠가 잠시 머물러보고 싶은 ‘사람의 온도’로 남았다.

대만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다정함’이라는 감정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조차 다정할 수 있고, 다정함은 결국 자신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작가는 담담히 증명한다. 책장을 덮고 나니,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 바뀌어 있었다. <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라는 제목은 작가 자신이 세상에 건넨 인사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대만 여행 중 가장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가족과 동행한 여행에서 너무 친절한 가이드를 자처했던 것이다. 대만이 자신에게 보여준 다정함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려다 정작 본인과 가족 모두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도 작가가 대만덕에 다정해졌기에 일어난 귀여운 참사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대만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사람을 다정하게 만드는 것 같다. 다정함이 결핍됐다고 느낄 때, 대만을 가면 될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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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엔딩
인영 지음 / 마음연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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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좋아했던 친구. 그가 바라봤던 사무치게 만나고 싶었던 그 별을 함께 쳐다봤던 나와 또 친구.

이제는 애써 기억하려 해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수십 년전 기억들. ‘나도 비슷했겠지 그랬겠지’ 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두께, 이야기, 메시지가 묵직한 책만 계속 찾게 된다.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때론 이렇게 무해한 이야기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지만 긴장감이 1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와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당시에는 마치 온 우주가 흔들리는 것 같은 엄청난 일이었으니까. 그런 사건의 연속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때론 단순한 시간 흐름이 우리를 무사히 옮겨 줄 때도 있지만, 아무리 어리고 서툴러도 생각, 판단, 선택이란 것을 했다. 작가는 본인도 언젠가 경험했을 일을 쓰면서 그때 함께 있었던 누군가에게 계속 소통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이 책이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그 공감의 노력과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손을 먼저 내미는 용기가 중요하지만,
내민 손을 잡아주는 용기도 소중하다.
가끔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대인배 같을 때가 있다.
마음이 몽글해지면서 동시에 부끄러워진다.

수많은 우연이 쌓여 꽤 그럴싸한 엔딩이 된다.
우린 우연이라고 표현하는 치밀한 우주의 질서.
사람은 모두 각자가 하나의 큰 우주다.
그래서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그래야 우연한 엔딩들을 나중에 들춰봐도 아프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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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마음 - 내 아이의 수학 정서를 높이는 초등부모의 대화법
강미선 지음 / 푸른향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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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건 '수학적 태도'다. 수학을 단순히 공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로 바라보는 순간 인생의 흑역사가 아닌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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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행히도 수학을 못하지 않았다. 재수한 수능에서 3개를 틀렸으니 나름 성공한 입시라고 할 수 있다. 때로 부침이 있었고 수포의 갈림길을 몇 번 맞이했지만 끝까지 버텨냈고 가까스로 수학과의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며 살아 올 수 있었다. 수학성적은 숫자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데 전반적인 자신감으로 작용했다.

이 책은 이제 막 수학을 접하기 시작한 자녀를 둔 부모에게 권하고 싶다. 본인이 겪은 수학적 경험을 자녀에게 주입하지 말 것, 억지로 책상에 붙잡아 놓지 말 것, "수학 별 거 없다"는 무책임한 말도 경계할 것, 학원과 학습지에 던져 놓고 부모의 본분을 다했다 회피하지 말 것. 무엇보다 부모의 수학에 대한 건강한 마음이 아이의 수학 학습을 결정 짓는다는 메시지가 깊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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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은 “수학은 완벽한 학문이 아니라,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학문”이라는 말이었다. 답을 찾는 과목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과정을 함께 묻고 대화하는 과목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는 질문을 아이와 따뜻하게 주고받는 것, 그게 진짜 수학 교육 아닐까?

저자는 수학교육학 박사임에도 놀랍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수학을 이야기한다. 읽는 내내 포근했고, ‘내가 어렸을 때 이런 방식으로 수학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후회와 함께 내 앞을 왁자지껄 뛰어가는 어린 두 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 너희들이 있었지. 아빠가 경험하지 못한 수학과의 멋진 여행, 떠날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어서 참 좋다.

이제라도 수학에게 갖고 있던 억하심정을 풀고 편견없이 아이들과 즐거운 수학 라이프 만들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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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 - 가정법원 부장판사의 이혼법정 이야기
정현숙 지음 / 푸른향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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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가정법원 부장판사가 들려주는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혼’의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아픔과 삶의 흔적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법정 안에서 만난 부부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니라, 선택과 갈등, 그리고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겹겹이 쌓인 삶의 풍경같다. 특히 부모 사이에서 안타깝게 비극을 버텨내는 자녀들의 상처를 그려낸 부분이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다. 부모의 다툼과 이별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책 속에 녹아 있어 마음 한켠이 묵직해진다.

저자는 그 상처들을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혼에 연관된 모두가 조금이라도 덜 다치게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게 한다. 또한 성급한 결정을 막고 서로를 이해할 시간을 갖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어떤 결말이든, 그 안에서 배우는 삶의 깨달음과 서로에 대한 존중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 책은 결혼과 이혼,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흔들리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시선과 위로를 느끼게 한다. 한참 눈시울을 붉히며 읽다보면 나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고, 사랑과 상처를 모두 품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될것이다.

마음이 복잡할 때, 관계의 어려움에 맞닥뜨렸을때, 『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를 책장에 놓아보세요. 아픔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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