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 -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두 거장의 마지막 가르침
미구엘 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생각지도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레 출신 작가이자 외교관인 미구엘 세라노 저자의 젊은 시절에 노년의 헤세와 융을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함께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깨달음과 철학을 주고받는 내용이 세라노 시점으로 담겨 있다. 세라노가 보았던 헤세와 융의 모습이 고스란히 묘사되어 있고 그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 혹은 편지 속에서 진중하고 철학적인 두 거장의 인생에 대한 영혼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 책은 1965년에 처음 세상에 선보인 후부터 꾸준히 인문 고전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올해 박광자, 이미선 번역가님의 손을 거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20세기 인류 정신의 지형을 바꾼 두 사람, 헤르만 헤세와 구스타프 칼 융. 문학과 심리학의 두 거장이 저자 세라노와 나눈 대화와 편지 속에는 서로에 대한 존경, 우정,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과 삶의 의미가 담겨 있다.  



헤세와 융은 이미 노년의 나이로 접어들어 많은 유명세를 뒤로 한 채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 세라노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가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눴고 두 사람은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헤세와 융이 직접 만났던 기록은 나오지 않으나 헤세가 융 박사에게 치료를 받고 그 유명한 <데미안>을 썼다는 내용은 유명하다. 두 사람은 세라노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전달받았고, 두 사람 모두 세라노를 몇 번 보지 않았음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를 알고 지낸 사람처럼 기쁘게 맞이한다. 


"어떻게 이런 행운을 갖게 되었을까요?"

(중략)

"우연한 일은 없습니다. 여기 오신 손님들은 꼭 만나야 할 사람들뿐입니다. '비밀 클럽' 회원들이지요."

p.61



헤세와의 만남


저자는 헤세의 작품에 너무나도 큰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저 수소문 끝에 헤세가 사는 곳을 무턱대고 찾아간다. 요즘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으나 그 시대니까 가능한 낭만이 아니었을지.


세라노가 헤세를 처음 만난 것은 1951년 6월로 당시 헤세는 74세, 세라노는 34세였다. 1961년까지 네 차례에 걸친 헤세와의 만남과 그 이후 10년 동안 인도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며 헤세와 끊임없이 편지를 왕래했다.


젊고 패기가 넘치는 영특한 청년인 세라노를 헤세는 온화하게 맞아준다. 아들 혹은 손자뻘이 호기심이 왕성한 청년을 대하는 대화에서 결코 위계적이거나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헤세는 세라노를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처럼 하나의 원형으로, 심연에 내재하는 '자기'로 본 것이 아닐까. 본질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자, 내면의 내재하는 것들을 일깨워 주는 자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닐지.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분열된 원형을 세라노를 통해 보며 조금씩 '나 자신'을 통합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을까. 내면의 데미안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의 총 여정이라면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데미안이었을 것이다. 


젊은 세라노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찾는 내면의 진리들을 헤세에게 들려주고, 노쇠하여 이제 그만큼 확장된 세상을 보기 어려운 헤세는 젊은 청년에게 내면에서 찾는 평온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그런 상호보완적인 관계. 혹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서로 상반된 영혼이 만나 통합되는 과정이 아니었을지. 우연이지만, 우연한 만남이 아닌 것처럼 두 사람의 대화에는 서로를 향한 존중과 우정 너머의 힘이 느껴진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책도 나름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책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딱 맞는 순간에 독자에게 나타난다. 그렇게 생명 있는 원료로 만들어진 책은 저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빛을 발한다.

p.21


융과의 만남


융 박사와의 만남은 1959년 2월이었다. 융은 당시 83세, 세라노는 32살이었다. 융에게서 비범함을 느낀 세라노는 심리학과 인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융과의 만남은 헤세와의 만남과 또 느낌이 다르다. 융은 자신이 평생을 쌓아 올린 심리학, 연구한 신화와 상징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탄하듯이 말한다. 융은 심리학은 상당히 까다롭고 상징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전에도 지금도 많은 이들이 곡해하거나 해석하기 난해한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아마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오해하지 않았을까. 그런 가운데 세라노는 인도에서 얻은 깨달음과 철학을 융 박사에게 이야기하고 질문한다. 그 과정에서 융은 자신이 가진 이론을 바탕으로 세라노에게 설명해 주며 이끌어준다. 


헤세가 오랜 친구처럼 세라노와의 관계를 이어갔다면, 융 박사는 세라노에게 하나의 이정표이자 길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융이 제시하는 심리학은 무의식과 그림자, 꿈을 분석하면서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개인성을 발견하는 것을 중시 여긴다.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아야만 하고 자기 인식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본래의 자신이어야만 하고 자신만의 개체성, 즉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한가운데에 있는 개인성의 중심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p.188


헤세와 융, 두 사람 모두 자기 자신의 내면을 통찰하고 내면과 외면,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시키며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것을 삶의 목적지로 여겼다. 


두 사람의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분열된 인간에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통합된 원형을 찾아서 헤세는 데미안과 싯다르타라는 문학을 통해 이야기했고 융은 많은 저서와 심리학적 용어로 설명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 후 인생이 무의미할 때 데미안을 읽고 살아갈 힘을 냈고, 헤세 이외에도 그 유명한 화가 잭슨 폴록 또한 융 박사의 치료를 받고 자신만의 예술을 찾았다. 무수히 분열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밟아 온전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찾아갔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식, 영혼의 지도를 자신만의 언어로 펼친 두 거장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비밀 클럽'의 회원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꾸준히, 천천히, 묵묵히 삶을 키우는 나무의 지혜
리즈 마빈 지음, 애니 데이비드슨 그림, 박은진 옮김 / 아멜리에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59종 나무들의 지혜를 담은 글로 모든 페이지마다 푸르름이 가득한 나무 일러스트가 담겨 있는 싱그러운 책, 아마존과 굿리즈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나무 철학서'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전에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이 읽던 책, 고다 아야의 <나무>라는 책을 통해 나무들도 사람 인생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음을 본 적이 있어 인상 깊었다. 나무에게도 인생의 이력이 있고 그 쌓아 올린 시간들이 차곡차곡 모여 나이테와 뿌리를 이루는 것들을 보면서 나무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태도를 관조할 수 있었다. 


​고다 아야의 <나무>는 저자가 직접 죽은 나무를 베어 보기도 하고 산에 나무를 찾아가는 과정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50가지가 넘는 다양한 나무의 간단한 특징들과 더불어 거기서 오는 지혜를 일러스트와 함께 전달한다.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책에서 많이 만나볼 수 있는데 막연하게 나무처럼 든든하고 탄탄한 사람이라고만 생각되는데 이처럼 다양한 나무를 보니 다양한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범위가 너무 넓다. 그러니 이제는 심재가 단단하고 견고한 혹호두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려 4억 년 가까이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나무들, 변화에 적응하고 풍파를 견디며 살아남는 방식을 가장 잘 아는 나무들. 

가장 이끌리는 나무 먼저 읽어보아도 좋고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찾아보아도 좋다. 어디를 펼쳐도 꾸준하고 천천히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키워낸 나무들이 존재하니.


이제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되고 싶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나는 나무보다는 화려한 꽃들을 더 좋아했다. 활짝 개화하여 수려하게 자신을 펼쳐놓을 수 있는 꽃을 꿈꿨다. 다른 이들의 눈에도 꽃같이 보이길 원했다. 


은유적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나는 꽃에 집착했다. 꽃무늬 옷, 꽃무늬 가방, 꽃무늬 액세서리로도 모자라서 새벽 꽃 시장에 가서 감당하지 못할 꽃들을 사 왔다. 나무야 뭐, 그냥 길거리에 있던 애들이고. 


눈에 띄어야 했고 열매를 맺어야 했고 화려한 나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세상 사는 것이 그렇게 원하는 대로만 화려하게 살아지던가 개화에 집착하다 보니 나는 나를 잃어버린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만 휩쓸리고 더더욱 나라는 사람을 꽃처럼 보이기 위해서 괜한 가시만 돋았고 내면을 돌보지 않았던 날들이 많았다. 


꽃이 아니라 이제는 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무를 꿈꾼다. 수천 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기 자리에서 단단히 뿌리내리고 물을 길어 마시는 나무들, 단 한 번의 박수갈채가 없어도, 어떤 일이 닥쳐도 순응하고 사는 나무들처럼. 묵묵히 감내하고 적응하는 소리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추위와 더위에 따라 잎사귀의 모양은 변하겠지만 차곡차곡 세월의 흐름을 쌓는 나무가 되고 싶다.


수천 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기 자리에 단단히 뿌리 내리며 강인하게 자라왔을 뿐이다. 단 한 번도 박수갈채를 바란 적 없이. 

p.22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생존을 위해 나무들은 꼿꼿하게 버티지 않는다. 햇빛의 양에 따라 빛을 흡수하는 세포의 수를 줄이거나 늘리며 섬세하게 조율하고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줄기와 뿌리를 더욱 굶고 튼튼하게 키워 스스로 균형을 맞춘다. 


​강풍이 불면 몸을 낮추고 유연하게 적응하며 때가 되면 밑동에서 스스로 새순을 힘차게 밀어 올린다. 혹시 손상된 부분이 있다면 건강한 부분까지 피해가 번지지 않도록 상처 난 자리를 감싸고 상처를 딛는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강하다는 증거라는 말이 나무들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 세찬 풍랑이 올 때 단단하게 꼿꼿이 서서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휘어지고 조금 부러져도 상처를 동여매고 견뎌내는 자세, 4억 년을 살아남은 자연이 몸소 보여주는 지혜다. 


​마음도 그저 꼿꼿하게 버티다간 언젠가 부러질 수도 있다. 바람이 오면 잠시 몸을 낮추고 스스로를 정비할 시간을 가지는 유연함이 있어야 하는데 항상 나는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서 이리저리 부러진 것 같다. 뭐가 그리 급해서 이기지도 못할 풍파를 맞고 부러졌냐는 듯 나무들은 우아한 몸짓으로 유연하게 자신을 보호한다. 그 몸짓을 닮아가고 싶다.  


'강인하지만 유연하게.'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개암나무가 온몸으로 실천해온 삶의 철학이다. 

p.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 강박 - 행복 과잉 시대에서 잃어버린 진짜 삶을 찾는 법
올리버 버크먼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플레저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행복해야만 성공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행복 과잉 시대에 쏟아져 나오는 행복 관련 자기계발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행복 만능주의에 대한 반격과 성찰을 제공하는 책이다. 

왜 인간은 행복해야만 하는 것인지, 불행해지면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행복에 대해 집착하는 태도를 비틀고 오히려 행복과 긍정에 집착하면 할수록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무한 긍정, 동기 부여, 자기계발같은 서적과 강의를 많이 듣고 보아도 늘 축 처져 있는 자존감, 나만 뒤처진 것 같이 엄습해 오는 불안에 대해 파헤치며 역으로 행복이라는 목표에서 내려오라고 손짓한다.  

물속에서 어설프게 힘을 주며 발버둥 치면 칠수록 가라앉는 것처럼, 역으로 힘을 빼고 물 위에 뜰 수 있도록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자세를 알려준다.  

행복 만능주의, 자기계발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실패와 불확실함에 대해 다루며 마지막은 지금-여기를 강조하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로 마무리된다. 


목표는 어떻게 행복의 족쇄가 되는가

버크먼은 당연하게 여기는 목표 설정과 긍정적 표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기업 혁신 분야'의 지도적 인물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라는 수많은 동기부여와 자기계발, 나는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자꾸만 회피하게 되는 것이 목표를 세우고 그 길을 걷기 위해 전진하라는 메시지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모두가 혁신 분야의 핵심 인물이 되면, 모두가 리더가 되면 그 사회를 이룬 다른 사람들은 루저일 뿐인가?


저자는 독특하게 목표를 세우지 않고 일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며,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는다. 목표 설정 자체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는 아이러니를 역설적으로 제시한다. 

완벽한 계획과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가진 것으로 시작하라는 주장은 흔히 빠지는 '준비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불확실성 속에서 유연하게 적응하기, 큰 성공을 꿈꾸기보다는 감당할 수 있는 실패의 범위 내에서 행동하라는 주장은 과도한 목표 지향적 사고에서 벗어나게끔 유도한다. 

결국 완벽주의와 강박적인 목표지향적 사고에서 벗어나 실패에 대한 수용성을 넓히라는 말이다.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내가 가진 것,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면의 날씨처럼 바라보기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명확함'과 '확실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감정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려 하며, 인생의 방향성을 설정하려고 애쓴다. 버크먼이 제시하는 '열림(openture)'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현대적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감을 준다.

저자는 경외심과 내면의 날씨를 언급한다.  

모든 감정이 하나로 집약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떤 감정으로도 단정할 수 없다는 역설적 표현인 경외심은, 삶의 복잡성과 미묘함을 인정하는 지혜로운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분법적 사고 -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 에서 벗어나 삶 전체를 하나의 통합된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관점, 동양 철학적과 많이 닮아있다. 

내면의 날씨, 감정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는 것, 마치 날씨를 바꿀 수 없듯이 감정의 변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이 표현도 행복이라는 강박적인 추구에서 한 걸음 벗어나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날씨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거 아니야?라는 삐딱한 태도를 가진 나에게 행복이란 성공이라는 단어와 함께 묶여 너무 남용되어 염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표현 자체가 어떨 때는 불편하다.

무조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라,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목표를 설정하고 성공해라라는 식의 콘텐츠는 오히려 위축되게 만든다. 요즘은 무조건적인 긍정 최고, 행복 최고가 아닌 어쩔 수 없는 부정적 감정까지 포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반갑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오나르도 다빈치 - 자기 한계를 넘어선 열정과 호기심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이자 르네상스의 3대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화가로서의 업적보다는 인간 다빈치에 대한 면모를 보여주는 책이다.


다빈치는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에 "그림도 그릴 줄 압니다"라고 적었다. 아니 무슨, 그림도 그릴 줄 압니다가 뭔 말이야. 님은 천재신데요? 상당히 황당하게도 다빈치는 자기 자신을 예술가라고 칭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자로 불리길 원했고 그 유명한 다빈치 노트에는 자신이 연구하고 탐구하고 관찰하며 발명한 발명품들에 대한 스케치와 기록이 담겨 있다.


'천재'라고 하면 마치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혜성처럼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처럼 특별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런 부분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천재'라는 프레임은 오히려 다빈치의 노력과 열정을 가리게 되었다. 이 책은 남들보다 특별한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 다빈치의 집요한 관찰력과 노력, 열정, 자기 한계를 느끼며 넘어서려는 한 인간의 모습을 강조한다.


ADHD 마냥 이것저것 손대다가 이도 저도 마무리 못하는 산만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만큼 세상 모든 것에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자신이 이룬 것이 없어 좌절하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닌 실패한 경험이 최고의 인생 공부임을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려는 위대한 인간.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스스로 말했지만, 그 말이 좌절이 아닌 그렇기에 더 나아가겠다는 굳은 의지의 사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소 산만한 천재


다빈치는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왕성했다고 한다. 모든 것을 보고 관찰하며 선생들을 붙잡고, '왜', '어째서'를 남발했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전형적인 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라고 진단하는데, 이를 보며 자꾸만 드라마 <빅뱅이론>의 쉘든의 이야기를 담은 <영 쉘든>에서의 어린 쉘든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왜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까지 갖가지 실험을 했다.


그 호기심과 열정은 지칠 줄 몰랐고, 실패라도 그 실패의 경험을 발판 삼아 또 다른 가설로 나아가는 것으로 활용했다. 전형적인 과학자의 마인드다. 실패하면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확률을 하나 줄인 것으로 인식하는 그 태도, 실험 정신이야 말로 자신의 경험을 이용하는 열쇠임을 알며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들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인간의 군상이지 않을까, 눈앞의 작은 실수와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경험을 지혜 삼아 나아가려는 태도에서 내면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 다소 산만한 천재에게도 결점은 있으니, 미루기도 천재적이었다는 것.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뭔가를 하다가 중단하고 다시 그 실력을 연마해서 훗날 제대로 완성시켜야 했으니 완성된 것이 거의 없다. 여담이지만, 미켈란젤로는 그 모습을 보며 엄청 비아냥 거렸다고.

작가는 여기서 새로운 질문을 한다. 미루기의 제왕이 아닌 마감 기간을 딱딱 맞춰서 다빈치가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놨으면 지금처럼 기억될 만한 가치를 가졌겠는가? 미루는 버릇을 용납해 주는 매력적인 설명이다. 그의 완성된 작품이 너무 많았으면 분명히 희소성이 적었으리라.


미완성된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계속 더 나은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실험과 자세,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 완성시킨 것들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다빈치는 자신의 욕망을 과정과 경험으로 삼았다. 그리고 전 생애 동안 계속 반복했다.


단 한 가지도 이룬 것이 없다


"훌륭한 화가는 두 가지를 그린다. 하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영혼이다."


다빈치의 말에서 예술이란 단순한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선 진정한 본질을 깨닫게 된다. 단순 기술의 영역으로 치부되었던 시대상을 확실하게 거부하면서, 인간의 영혼을 그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 그렇기에 그의 작품이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아닐까.


다빈치가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모습은 큰 교훈을 준다.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천재조차 스스로를 "무지하고 부족한 사람"이라 여기며 평생 학습자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는 것은 겸손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또한 화가는 철학, 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까지 모든 학문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오늘날 전문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융합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진정한 거장이란 실력뿐만 아니라 인격적 완성도를 함께 추구하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본인은 "단 한 가지도 이룬 것이 없다"라고 했지만, 자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다양성과 완벽성을 추구하는 과정, 수려한 기술로 승부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영혼을 담기 위한 예술가의 자세, 융합적 사고까지 그가 이룬 것들은 오늘날에도 지속된다. 다만 '천재'라는 프레임에 너무 가려져 있어 모든 것을 타고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길 뿐. 낡은 사고방식과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 장인 다빈치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부터 재점검하며, 생태계의 복잡성과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과학적 통찰로 설명한다. 


서문에 바이오스피어 2 실험의 실패 사례를 보여준다. 생태계를 똑같이 만들어 생물이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인데 이는 모두 대실패로 끝난다. 이를 통해 지구 생태계의 정교함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데, 지구 상에서 숨을 쉰다는 것과 현재의 생태계에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자연 보전이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투자임을 강조하며, 인간이 자연의 소비자가 아닌 일부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윤리적 전환을 촉구한다. 


점점 세상은 이상해진다. 계양산을 검색하면 바로 러브버그가 추천 검색어로 뜰 만큼 우리나라 기후도 만만치 않게 이상하다. 유럽에서 폭염과 폭설 때문에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동남아 기후처럼 변하며 습한 더위와 스콜이 지속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생태학자로 지구 곳곳을 들여다본 저자는 그 통찰을 제시한다.


생태계에 대한 정의, 환경, 순환부터 시작하여 생물 다양성이 어떻게 계속해서 파괴되어 가는지, 숲이 인간의 편의에 의해 어떻게 몰락하는지 등 생태계의 현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아가 생태계를 보존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가 왜 인간에게 있는지, 경제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윤리적인 문제와 해결책 등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바이오필리아(생명에 대한 사랑)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 자연을 좋아했다. 순수악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나비와 잠자리, 매미 등을 그렇게 채집하려고 하루 종일 뙤약볕에 돌아다녔고 개울가의 작은 물고기만 보면 또 어찌나 신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던지. 살아 움직이는 생물만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봉숭아 잎을 따다 손톱을 물들이며 기뻐했고 가을에는 단풍잎을 주워 코팅하여 이쁘게 오려서 가지고 다녔다. 


자연계에 저절로 이끌리는 성향, 어린 시절에는 모두가 가지고 있었고 직접 경험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거대한 자연 경관을 보면서 감탄한다. 그랜드 캐니언, 쏟아지는 별들의 은하수 광경, 나비 떼나 반딧불이 떼를 보며 느껴지는 경이로움. 사람에게는 자연계에 끌리는 성향이 존재한다. 


이것을 저자는 바이오필리아(생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표현하는데, 모든 생물이 그 자체로 존엄하다고 주장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세균부터 고등동물까지 각각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인간의 도구적 가치 판단을 넘어선 본질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경제적 효용성을 넘어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사랑이 자연 보호의 근본적 동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종교적 관점에 대해서도 설명하지만, 꼭 종교적 신념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대하는 경외감과 책임감을 키우고 소비 위주의 생활 방식을 성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자연 보호가 단순한 환경 운동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왜 야생이 필요한가?


2019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예시가 매우 흥미롭다. 그렇다, 대성당의 화재가 났을 때도 그렇고, 2008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숭례문 화재 때도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매일 매 순간 파괴되는 자연 학살과 생태계 파괴에서는 그런 안타까움을 겪지 못하는 것일까? 인간이 만든 문화재는 복원할 수 있지만 한번 사라진 자연 생태계는 되돌리기 어려운 더욱 치명적인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우리 생활의 무감각한, 불감증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토양 손실, 물 부족,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농업의 위기와 함께 전 세계 토양의 3분의 1이 이미 황폐화되었음을 경고한다.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의 전환과 재생 농업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미래에는 많은 종들이 고온을 견디지 못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탄소 중립 사회로의 전환과 함께 생태계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사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분야가 얼마나 될까 싶다. 고기의 양을 줄이고, 일상에서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나머지는 기업과 정부, 경제적인 부분이라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안타깝다. 


그럼에도 인간의 지성과 공감이 모여 생물을 보호할 권리는 만들어낸다면, 개인이 미세하게 분투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바이오필리아를 실천하는 판타지 같은 세상을 꿈꾸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